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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Jun 06. 2024

7. 사군영인로 세월홀이만

  -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 (〈고시십구수〉의 제1수)

7.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 思君令人老(사군영인로) 歲月忽已晚(세월홀이만)(〈古詩十九首(고시십구수)〉의 제1수)

   멀리 떨어져 있는 그대(君)에 대한 시적 화자의 그리움과 걱정은 도무지 해소될 기미조차 없이 점점 더 깊어만 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기다려도 그대한테서 시적 화자한테로 소식이 올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시적 화자가 자기 소식을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그대에게 전할 도리도 없으니까요.

   시적 화자는 그리움과 걱정으로 하루하루 피가 마릅니다. 이제는 허리띠가 헐거워질 만큼 몸도 야위었고, 나날이 수심만 거듭하여 깊어 갑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즈막에는, 마음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아마 십수 년쯤은 훌쩍 늙어버린 몰골이지 않을까요. 그래서인가, 시적 화자는 속절없이 여기서 ‘늙을 로(老)’자를 쓰고 맙니다.

   이 구 ‘思君令人老(사군영인로) 歲月忽已晚(세월홀이만)’은 ‘사군/영인/로 세월/홀/이만’ 정도로 끊어 읽으면 되겠고, 번역도 뜻도 그리 까다롭지 않습니다. 딱히 어려운 글자도 없고, 내용도 쉽게 공감할 만하니까요.

   우선 한 글자 한 글자 곧이곧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은 정도가 되겠네요.

   ‘그대를 생각함이 사람으로 하여금 늙게 하는데, 세월은 문득 이미 저물었네.’

   맨 끝의 ‘晩(만)’자는 ‘늦다’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그에 못잖게 ‘저물다’라는 뜻으로도 곧잘 쓰이는 글자지요? 여기서는 앞에 ‘歲月(세월)’이라는 말이 있어서 그와 잘 호응하는 느낌인 ‘저물다’로 번역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세밑이 되면 어김 없이 ‘올 한 해도 저물어 간다’라는 식의 표현을 많이들 쓰니까요.

   의미는 어려울 게 없습니다.

   시적 화자가 그대를 그리워하면서 세월만 보내노라니, 나이만 자꾸 먹어 속절없이 늙어간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참 가슴 아프고 딱한 정황입니다.

   세간에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떠나서 몇 해가 흘러가도 소식 한 점 없는 야속한 임 따위 일찌감치 잊어버리고 새 사랑을 찾아 나서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시적 화자는 그대(君)를 잊을 생각도, 포기할 뜻도 없는 모양입니다.

   세상에는 멀쩡한 임을 곁에 두고도 딴마음을 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눈물겹도록 갸륵한 일편단심의 소유자들도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 시 전체를 통틀어 임을 향한 시적 화자의 일편단심을 가장 절절하게 드러내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번역문은 어떻게 다듬으면 좋을까요?

   맨 앞의 ‘思君(사군)’은 그대로 번역하면 ‘그대를 생각하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 ‘생각할 사(思)’자를 ‘그리워하다’라고 번역해야 정서적으로 시적 화자의 마음을 더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사랑하다’라는 말과 ‘생각하다’라는 말이 어원의 차원에서 서로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니까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이 바로 그리움일 터이니까요. 그래서 ‘그대를 그리워하다’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다음의 ‘하여금 령(令)’자는 사역(使役)의 구실을 하는 글자라서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면 앞 구 전체는 ‘그대를 그리워함이 人(인)으로 하여금 老(로)하게 하다’라는 정도가 됩니다.

   ‘늙을 로(老)’자는, 많은 한자가 그렇듯이, 명사, 동사, 형용사로 다 쓰일 수 있는 글자이므로, 여기서는 ‘늙는다’ 또는 ‘늙어간다’ 정도로 새기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번역문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그대를 그리워함이 人(인)으로 하여금 늙게 하다.’

   물론 ‘하여금’은 지금도 더러 쓰이는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 말법에 맞는 표현은 아니니까 ‘그대를 그리워함이 人(인)을 늙게 하다’ 정도로 하는 편이 좋겠지요.

   문제는 ‘사람 인(人)’자입니다.

   그냥 ‘사람’이라고 번역하면 문의(文意)가 잘 살아나는 느낌이 아닙니다.

   여기서 ‘人(인)’은 시적 화자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맞지 않겠나 싶어요. 하긴, 이 시 속에서 그대를 그리워하다가 늙어가는 사람이 시적 화자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물론 현대시(現代詩)에서라면 ‘이 사람’ 정도로 처리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그대를 그리워함이 이 사람을 늙게 하다’라고 하여 ‘이 사람’이 화자 자신임을 알아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는, 대놓고 ‘人(인)’을 ‘나’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대를 그리워함이 나를 늙게 하다’ 정도가 되겠지요.

   어쨌든, 깊은 그리움과 근심 걱정에 오래 시달리다 보면 ‘누구나’ 아무래도 때 이르게 겉늙은 몰골이 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실제로 세월까지 많이 흘러버렸다면 그 누구는 더더욱 늙은 모습이리라는 것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사정일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뒤의 구는 아예 ‘歲月(세월)’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맨 앞의 ‘歲月(세월)’은 ‘해 세(歲)’자와 ‘달 월(月)’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지금도 널리 쓰이는 단어니까 그냥 ‘세월’로 하면 되겠지요. 물론 범위를 약간 좁혀서 ‘올 한 해’의 뜻으로 보고, 그냥 ‘한 해’ 정도로 번역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느껴집니다.

   뒷부분을 이루는 글자들은 ‘문득 홀(忽)’자, ‘이미 이(已)’자, ‘저물 만(晩)’자니까 ‘忽已晩(홀이만)’은 글자 순서대로 ‘문득 이미 저물다’라고 번역하면 되겠지요.

   그래서 ‘歲月(세월)’과 ‘忽已晩(홀이만)’을 합하면 ‘세월이 문득 이미 저물다’ 또는 ‘한 해가 문득 이미 저물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앞의 구인 ‘그대를 그리워함이 이 사람을 늙게 하다’와 뒤의 구인 ‘세월이 문득 이미 저물다’를 합하여 시제 정도만 맞추어서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그대를 그리워함이 이 사람을 늙게 하는데, 세월마저 문득 이미 저물었다.

   하지만 역시 한문의 번역문이 첫 단계에서는 대체로 그렇듯, 이 번역문도 어딘가 어색합니다. 그래서 산문이 아니라 운문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조금만 더 세련되게 다듬으면 이런 정도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대를 그리워하다 나는 늙어가는데, 세월만 어느덧 이미 흘러가 버렸다.

   또는 이렇게요.

   ‘그대를 그리워하느라 나는 늙어가는데, 한 해가 문득 벌써 저물었다.

   그대를 향한 그리움과 하염없는 기다림에 지쳐버린 시적 화자의 슬프고 딱한 초상이 한 치의 에누리도 없이 돌올합니다.

   도대체 이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까요? 아니, 위로할 수나 있을까요?

   드디어 맨 끝의 딱 한 구만 남았습니다.

   앞서 제기한 의문들이 얼마나 해결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제 생각에 이 끝 구는 이 시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절창(絶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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