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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Jun 27. 2024

10.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 〈고시십구수〉의 제1수

10. 그대 기운 내서 잘 지내야 해요 / 〈古詩十九首(고시십구수)〉의 제1수

   먼저, 시적 화자입니다.

   실은 전체 내용에서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서로 사랑하는 남녀 가운데 어느 한쪽이 먼 길을 떠남으로써 그들이 이별하게 되는 상황에서 그 떠나는 쪽은, 당시(후한 시기)의 일반적인 성역할(性役割)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남자 쪽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내용상 이 시의 화자는 떠나는 쪽인 남자가 아니라, 남아 있는 여자 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제1수는 여성 화자가 멀리 떠나 소식이 없는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표현하는 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임은 남편일 수도 있고 애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적 화자가 여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 시의 작자도 여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남성 시인이 시적 화자를 여성으로 설정하여 그 여성의 목소리에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를 의탁하여 시를 쓰는 일은 전통적으로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예컨대, 우리나라에도 여성의 목소리를 빌려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 곧 ‘연군지정(戀君之情)’을 드러내는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라는 문학의 한 장르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처럼요.

   다음은 ‘胡馬依北風(호마의북풍) 越鳥巢南枝(월조소남지)’에서 누가 남쪽에 있고, 누가 북쪽에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시가 지어진 시기로 추정되는 후한(後漢) 때의 역사적인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후한 때는 바로 조조의 위나라, 손권의 오나라, 유비의 촉나라가 천하를 삼분(三分)하며 대립했던, 저 유명한 《삼국지》의 바로 그 삼국시대가 도래하기 직전의 시기 아닙니까.

   한마디로 당시는 ‘황건적의 난’과 같은 온갖 난리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나 백성들의 삶이 몹시 피폐했던 일대 혼란기였지요.

   그러니까 이 시 속의 여성 화자가 그리워하는 임은 바야흐로 전쟁터로 떠났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그 전쟁터는 저 머나먼 중국 남방의 월(越)나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물론 이 월나라는 지금의 베트남 쪽이겠지요. 저도 이렇게 배웠고, 실제로도 대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실제로, 《삼국지》에 나오는 저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듯이, 제갈량도 남만(南蠻) 정벌에 엄청난 공을 들이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남쪽을 안정시키는 것이, 북쪽의 흉노(匈奴)를 정벌하는 것만큼이나 중국에는 역사적으로, 또 전통적으로 중요한 문제였지요.

   그러니까 이 시 속의 시적 화자, 곧 여성 화자는 바야흐로 멀고 먼 남쪽의 전쟁터로 떠나 그 생사의 여부를 알 수 없는 임을 상대로 그립고 걱정되는 자기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이 시구에 대해서는 또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이 시구가 단순히 시적 화자가 자신은 북쪽에 있고 임은 남쪽에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자신과 임이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 그 물리적인 거리감을 강조하는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해석대로라면 ‘胡馬(호마)’와 ‘越鳥(월조)’는 각기 시적 화자와 임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텐데, 그게 아니라, 이것을 고향 땅을 떠난 뒤 돌아올 기약도 없이 그 머나먼 남방의 전쟁터에 하염없이 오래도록 머무르고 있으니, 임이 지금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겠는가, 하는 것을 ‘호마’와 ‘월조’라는 시어를 빌려서 표현하는 구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 해석에 근거하면, ‘북쪽’과 ‘남쪽’의 구분 자체는 이 시 속에서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胡馬(호마)’는 북방 지역의 말이니, 당연히 북풍을 맞고 싶을 것이고, ‘越鳥(월조)’는 남방 지역의 새이니, 당연히 남쪽 가지에 둥지를 틀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依(의지할 의)’자와 ‘巢(깃들일 소)’자를 모두 그리움, 구체적으로는 자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글자로 보는 것입니다. 호마에게는 북방 지역이 자기 고향일 것이고, 월조에게는 남방 지역이 자기 고향일 테니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호마나 월조 같은 자연계의 미물들도 다 그렇듯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임은 오죽하겠는가, 하는 의미인 것이지요.

   곧, 이것이 거리를 표현하는 구가 아니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호마’와 ‘월조’에 빗대어 표현하는 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해석도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또, ‘浮雲蔽白日(부운폐백일) 遊子不顧返(유자불고반)’도 만만치 않은 구입니다. 이 구에 대해서도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특히, ‘浮雲(부운)’, 곧 ‘뜬구름’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浮雲(부운)’은 뒷날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 같은 시인도 자기 시에 빌려 쓴 바 있는 유명한 시어(詩語)이기도 하지요.

   하나는 전통적인 해석인데, ‘부운’을 임금의 총명(聰明), 곧 성총(聖聰)을 가리는 간신배로 보는 시각입니다. ‘뜬구름’이라는 하나의 자연물을 정치적 함의(含意)의 차원에서 새겨 읽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고시십구수〉의 기본 성격에 비추어볼 때 적절한 해석은 아닌 느낌입니다.

   또 하나는 ‘뜬구름’을 일종의 첩(妾)과 같은 ‘다른 여인’으로 보는 해석입니다. 곧 임의 변심(變心)에 대한 걱정이나 의심을 표현하는 시어로 보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임과 오래도록 소식도 주고받지 못한 채 떨어져 있는 여인의 처지에서 이는 충분히 걱정하거나 의심할 법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해석도 임에 대한 시적 화자의 걱정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시의 전반적인 정조(情調)에 비추어볼 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은 아닙니다.

   마지막은, 그냥 하나의 자연물, 자연 현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구름이 해를 가려 사방이 어두워진 것처럼 임의 소식을 알 수 없어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시적 화자의 마음을 표현한 구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저는 이 해석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이것이 〈고시십구수〉의 기본 성격에도 가장 걸맞은 해석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이런 점들을 모두 염두에 두고 전체 번역문을 손질하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적 화자가 여성이니, 기본 말투도 그에 어울리도록 다듬어 보았습니다.     


   行行重行行(행행중행행) 與君生別離(여군생별리) / 가고 가고 거듭 가고 가시어, 그대와 더불어 생이별을 하였네요.

   相去萬餘里(상거만여리) 各在天一涯(각재천일애) / 서로 만여 리나 떨어져, 각기 하늘 한 끝에 있군요.

   道路阻且長(도로조차장) 會面安可知(회면안가지) / 길이 험하고 머니, 얼굴이나 볼지 어찌 알 수 있겠어요?

   胡馬依北風(호마의북풍) 越鳥巢南枝(월조소남지) / 오랑캐 말은 북쪽 바람에 기대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깃든답니다.

   相去日已遠(상거일이원) 衣帶日已緩(의대일이완) / 서로 떨어진 날들이 너무 오래되어, 허리띠만 날로 더욱 헐거워져 가요.

   浮雲蔽白日(부운폐백일) 遊子不顧返(유자불고반) / 뜬구름은 해를 가리고, 그대는 돌아올 생각을 않으시네요.

   思君令人老(사군영인로) 歲月忽已晚(세월홀이만) / 그대를 그리워하다 나는 늙었으니, 세월만 어느덧 훌쩍 흘러가 버렸어요.

   棄捐勿復道(기연물부도) 努力加餐飯(노력가찬반) / 버려졌다고 자꾸 뭐라 마시고, 기운 내어 밥을 드세요.


   물론 완전한 번역은 결코 아닙니다. 산문(散文)이 아니라 시(詩)니까 더더욱 그렇지요.

   그저 앞으로 이보다 나은 번역을 할 수 있을 만큼 제 공부가 한층 더 성숙해질 때까지 노력하며 기다려야겠지요.

   그래도 번역해 놓고 전체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시적 화자의 임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새삼 가슴 깊이 절절하게 울려오네요.

   고시 열아홉 수 가운데 이 제1수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습니다.

   짧지 않은 글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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