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석화
지선 씨, 한국에 가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가요?
그럼 나는 항상 똑같은 대답을 한다.
외할아버지 댁에서 숯에 구워 먹던 석화가 먹고 싶습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는 늦가을부터 석화의 철은 시작된다.
기온이 떨어지고 살이 차오른 굴은 상상만 해도 군침을 돌게 한다.
하지만 진짜 석화가 맛있을 때는 따로 있다는 것.
언제일까?
초등과학에서 배운 아주 기본적인 과학 지식만 갖고 있다면 답은 금방 찾을 수 있다.
바다의 온도 변화는 지면에 비해 천천히 진행된다.
때문에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11월, 12월만 돼도 춥지만,
바다에서는 이제 막 수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하는 때인 것이다.
천천히 수온이 떨어지면서 소름 끼치게 추울 지경인 1월과 2월이 됐을 때 비로소 석화에게 바다의 우유로 불릴 자격이 생긴다.
매년 늦은 겨울 내 식구들, 큰삼촌 식구들, 그리고 작은 삼촌 식구들은 모두 순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에 모여 아빠는 마당에 숯불을 피우고 작은 삼촌은 석화를 구웠고 남은 숯으로는 큰삼촌이 삼겹살을 구워주셨다.
서로를 걱정할 땐 텅 빈 위로 대신 전라도 사투리를 튀겨가며 큰 소리를 내줬고
그 마당 안에서 만큼은 모두가 근심 걱정이 행복하게 웃었다.
서로에게 편이 돼주었다.
우린 항상 '가족'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내가 요리학교에서 유학을 하던 중
사랑하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비슷한 시기에 우리의 곁을 떠나셨고,
나는 두 분에게 마지막 인사를 꿈에서 밖에 할 수 없었다.
졸업하고 한국에 갔을 땐 항상 늦은 봄이나 여름이었으니,
사실상 나에게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 모두가 마당에 둘러앉아 함께 했던 석화는 내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추운 겨울이었다.
요식업계에서 일하면서 또 뉴욕에서 살면서
미국 각 지역의 여러 가지 생굴과 고급진 굴 요리까지 정말 많이 접했다.
한국에서 살면서 먹었던 굴 보다 더 많이 먹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에 가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같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음식에 자신의 사연을 보관한다.
그것을 꺼내어 내면 기억이 되는 것이고,
그 기억이 행복했다면 추억이 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익숙했고 당연했던 추운 겨울의 따뜻한 추억을 꺼내 먹고 싶은 것일까.
기억에 없는 어린 시절 이후 그저 모든게 다 부끄럽던 10대의 내가,
조부모님께 '사랑해요' 그 한 마디가 어려워 자주 말 하지 못했던게 아직까지도 가슴에 맺혀서 일까.
매년 겨울 바람이 불면 항상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있던 식구들과 마당에 둥글게 앉아,
목장갑을 한손에 나눠 끼고 다 같이 호호 불어가며 먹었던 석화 숯불구이.
내가 석화에 보관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