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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비밀.

말과 말사이의 여백만으로도 눈치챌 수 있다.

by 김로기

퇴근 무렵 한결같이 전화를 걸어오는 남편의 하루가 어땠는지는

아주 잠깐이면 알 수 있다.

아무리 내색하려 하지 않아도 목소리에 그의 하루가 담겼다.

이제는 말과 말 사이의 여백만으로도 그것을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의 시간은 서로에게 그 정도 눈치를 자라게 했다.

그런 그의 목소리가 나의 목소리 또한 물들이고 있음을

아마 그도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하루를 숨기려 더 애써보지만

여전히 내게 들키고 만다.

우리에게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서로에게 내 슬픔까지 짊어지게 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상대에게서 전달되는 슬픔을 피하려는 마음보다

그저 줄어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다독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그의 하루에 대해 묻고 함께 느끼려 하는 것이다.

결국 못 이긴 척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날의 하루는 꽤나 씁쓸했다.

역시나 내 마음 또한 그의 하루로 금세 물들고 말았다.

하지만 이어서 듣게 된 그의 마지막 말이

내일도 모레도 여전히 그의 하루에 대해 묻게 할 것 같다.

"털어놓으니 조금 나은 것 같아."

금세 밝아진 그의 말 한마디가

어둡게 마무리될 것 같던 우리의 저녁을

다시 빛나게 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내일을 다시 맞게 했다.

우리는 여전히 좋기만 한 하루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 한

언제나 밝은 저녁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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