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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미로 서점에 간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바치는 나의 헌정사

by 김로기

나는 취미로 서점에 간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책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집에서 지하철로 삼십 분쯤 가면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다.

서점에 도착하면 일단 '고객이 방금 팔고 간 책' 부분을 서성이며

한 권 한 권 살펴보다가

내가 관심 가는 분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천천히 책을 구경하며 서점을 돌다 보면

두어 시간은 금세 지나가고 만다.

그리고 알라딘 중고 서점은 일단 책이 싸다.

정가보다 싼 건 물론이고

어떤 책은 만든 이에게도 미안 할 정도로 값이 싸다.

미안하지만 그래서 부담이 덜 하다.

그리고 알라딘 중고서점은 깨끗하고 쾌적하다.

예전의 중고 서점들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한 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중고 서점이라기보다는 헌 책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그들이 담고 있는 오래된 책과 같은 모습으로.

물론 그 시절 헌 책방의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겠지만

알라딘은 그런 헌 책방을

쇼핑몰 느낌의 접근하기 좋은 중고 서점으로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오래된 종이책에서 느껴지는 고유의 향도

알라딘만의 특색 있는 향으로 바꿔버렸다.

이쯤 되면 알라딘 중고서점의 일일 마케터라도 된 듯 싶어

미리 말해두지만

이 글은 작심삼일 하루를 빌려 알라딘 중고서점에 바치는 나의 헌정사다.

그동안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거나

시간이 남아 갈 곳 없어 헤맬 때

주머니 사정의 여의치 않아도 나를 기쁘게 할 무언가에 돈을 쓰고 싶을 때

연중무휴로 나를 받아주던 곳이 알라딘 중고서점이었다.

그만큼 나와 의미 있는 시간을 오랫동안 함께 했다.

그래서인지 애정이 가는 곳이다.

이사를 가는 바람에 거리가 조금 멀어져서

예전만큼 방문하는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설레는 마음으로 들르곤 한다.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나는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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