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 달콩
두 아이가 배 속에 있다는 사실에 신랑과 나는 당혹과 설렘을 담은 표정으로
사진 한 번, 서로의 얼굴 한 번, 배 한 번 쳐다보길 반복했다.
둘 다 “옴마야. 왠일이야.” 할 수밖에.
양가 집안에 쌍둥이가 없었기에 더더욱 ‘어떻게 쌍둥이를 임신할 수 있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계획했던 미래의 모습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든 더 행복할 것이 분명했다.
우연의 확률로 찾아온 우리 아기들이 ‘선물’처럼 느껴졌기에 그 행복은 두 배, 아니 열 배는 더 컸었다.
양가 부모님에게도 임신 사실을 나중에 알리고 싶었는데, 일찍 알리게 되었다. 이 상황에 대해 축복도 받고 싶었고, 무엇보다 앞으로 어떤 상황들이 펼쳐질지 몰랐기에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임신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도 입덧이 심했었는데, 뱃속에 두 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그 입덧은 상상을 초월했다. 평상시대로 일도 했고, 집에 가면 녹초가 되어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다행히 친정 부모님이 첫째를 돌봐주셨고 집안일, 저녁 식사까지 준비해 주셨기에 그야말로 호화스러운 임산부였다. 친정 부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어쩔 뻔했나 눈앞이 까마득했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체력은 급속도로 떨어지기를 반복했고,
첫째 딸은 “엄마 왜 맨날 누워있어?” “나랑 놀아줘.” 라며 의아함과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동생 둘이 생기게 된 첫째의 숙명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쌍둥이 임신을 알게 된 순간부터 대학병원으로 전원 되었다. 이란성 쌍둥이는 그 사례도 많고 각각의 아기집에서 태아가 성장하기에 엄마의 건강상태가 좋다면, 건강한 출산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는 달랐다.
하나의 아기집에서 두 아이가 자라야 하기에 임신하는 순간부터 초고위험 산모로 구분되었다.
뱃속에서 태아들이 성장하는 과정, 출산할 때 과정 모두 세심히 관찰해야 하고 그만큼 위험성이 컸다.
쌍둥이 전문 교수님이 계신 병원으로 가야지라고 생각했었지만, 첫째를 출산했었던 집 바로 앞에 있는 대학병원에 다니기로 했다.
익숙한 곳이었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했고, 안심되었다.
알콩이 달콩이. 쌍둥이의 대표 태명은 ‘알콩달콩’이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 역시 알콩이 달콩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병원은 성별을 22주 정밀검사 때 비로소 알려주는데, 그보다 이른 시기에 초음파로 성별을 알게 되었다.
한 명만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다른 아이의 성별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일란성 쌍둥이기에 성별이 같았다. 아들이었다. 딸 하나에 아들 둘.
세상 그 누구도 부러운 것이 없는 엄마의 삶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보다 더 커진 배를 보며 두렵기도 했지만, 매일 행복했다. 우리 다섯 식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평수를 넓혀 이사를 계획했고, 첫째가 만삭이었을 때부터 매년 방문하여 기록을 남겼던 곳으로 가서 만삭 사진도 찍었다. 겨우 임신 중기였지만 배는 이미 만삭 임산부였기에 휴직에 일찍 들어가기를 요청했고, 순탄하게 인정이 되었다.
1월, 2월 겨울을 잘 보내고 봄이 오면, 우리 아기들을 무사히 만나기만 하면 되었다.
일란성 쌍둥이를 품은 고위험의 그림자를 나 역시 피해 가지 못했다.
쌍둥이를 임신한 사람들을 알겠지만, 두 아이의 성장 속도가 차이 나는 것은 안 좋은 신호였다. 우리 아이들 역시 임신 중기를 지나면서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가 잘 성장할 수 있게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챙겨 먹었지만, 둘의 차이가 좁혀지기는커녕 점차 커져만 갔다.
교수님도 위험성을 감지하셨다.
처음 출산 계획을 태아의 폐성숙이 완성되는 36주쯤으로 계획했었는데, 점차 벌어지는 격차를 보고 이르면 32주쯤 출산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주 2회 검진을 했던 횟수도 주 1회로 늘어났다. 초음파 역시 초음파 담당 선생님이 아닌 교수님이 직접 봐주셨다.
27주.
알콩이는 건강하게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성장했지만, 달콩이에게 전달되는 혈류가 불안정했다.
두 아이의 몸무게는 알콩이는 고작 1300g, 달콩이는 겨우 850g.
출산으로 두 아이를 꺼내기엔 너무 이른 주 수, 너무 작은 몸무게였다.
이른 출산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알콩이의 건강 역시 장담할 수 없었기에 교수님이 해외 학회를 갔다가 온 2주 후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다행히 초음파로 확인되는 달콩이는 혈류가 불안정한 것 외에는 건강했고, 움직임 역시 활발했다.
교수님이 계시지는 않았지만, 검진 횟수도 늘려 주 2회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제발 2주만 더 버텨다오 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걱정은 애써 감춘 채,
‘다 잘될 거야.’ ‘우린 건강하게 만날 수 있을 거야.’
커다란 배를 어루만지며 배 속 아이들에게 수없이 말해주었다.
그럼 알콩이 달콩이도 꿈틀거리며 열심히 태동으로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첫 번째 주말이 지나고, 두 번째 검진 날.
그날.
매서운 추위도 사그라들었던.
유독 따뜻했고, 유독 내가 예뻐 보였던 그날.
달콩이의 심장은 멈췄고, 내가 꿈꾸던 미래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