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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Apr 26. 2024

#5.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달콩아 미안해. 알콩이를 지켜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움직이던 달콩이가. 

아니,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 달콩이가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믿을 수가 없고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담당 교수님 역시 한국에 계시지 않았기에 그 누구도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심장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고, 혈압이 160으로 치솟았다. 

첫째를 임신중독증 고혈압 증상으로 응급출산을 했던 터라, 

위험해질 수 있어 바로 출산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진행되었다. 


아직 29주. 

출산하기엔 너무 일렀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만 했다.

온갖 검사 도구들이 배에 붙여졌다.

배 속 태아들의 장기는 모두 생겼지만, 성숙이 되지 않았다. 

출산 후, 아기가 호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곧바로 폐성숙 주사를 맞았다. 


그날 밤. 

고위험 산모 병동 1인실은 그 어떤 곳보다 두렵고 외로운 곳이었다.

달콩이에 대한 슬픔과 알콩이에 대한 걱정에 밤은 유독 길었다. 

울다 지쳐 잠깐 잠이 들다 깨면,

다시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불안감에 사로잡혀 울기를 반복했다. 




날이 밝고 아기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실로 향했다. 

늘 갔었던, 외래를 보는 산부인과에 있는 초음파실이었다.

남산만 한 배를 가지고, 두 눈과 얼굴은 퉁퉁 부은 채 침대에 실려 초음파실로 들어가자 

생기가 돌았던 산부인과 대기실은 순식간에 새파란 정적이 되었다.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한 산모님과 눈이 마주친 이후, 눈을 감고 이불을 얼굴까지 덮었다. 

나의 슬픔과 걱정과 불안을 남에게 들키기 싫었다.

나중에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 뱃속에서 아이를 잃은 산모와 대기실에 있던 산모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때 그 장소에 있던 산모들도 같은 마음이었겠지. 


정말 감사하게도 알콩이의 심장은 생명력 강하게 뛰고 있었고 혈류, 양수, 움직임 모두 문제없었다.

혈압도 점차 내려와 안정을 찾았고, 우려했던 긴급 출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담당 교수님이 안 계셨기에 다른 교수님이 오셔서 설명을 해주셨다. 

임신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가 나중에 출산하면 된다는 이야기였고, 

자세한 상황설명은 담당 교수님이 오면 그때 들으라고 하셨다. 

너무도 애매모호 한 설명에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교수님이 오시기까지 4일.

그동안 수많은 검색을 했던 것 같다. 만삭 사산을 경험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쌍둥이 중 한 명은 심장이 멈추고 한 명만 심장이 뛰고 있는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혹여 찾게 되더라도 출산했을 때 생기는 여러 위험한 상황에 관한 내용이었다.

출산하기 전 불안한 마음으로 작성한 글들이었고, 출산 이후의 상황까지 글이 이어지지 않았다.

나 역시 6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걸 보면, 

그 사람들도 나와 똑같지 않았을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교수님이 오셨다. 교수님은 오시자마자 90도로 인사를 하셨다.


   “아이를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교수님의 행동이었다. 

해외에서 소식을 듣고 마음을 쓰셨을 교수님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교수님 잘못이 아닌걸요. 살아있는 사람도 몇 분 숨 안 쉬면 죽는데 달콩이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하며 교수님이 안 계신 동안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수없이 생각하고 나 혼자 결론 내렸던, 이 결론이 여야지만 살 것 같았던 대답을 했다.

교수님과 레지던트, 간호사, 나, 신랑 그 공간에 있던 모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지에 담아 모두 물어봤다. 


달콩이 심장이 멈췄다는데 왜 달콩이의 태동이 느껴지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언제 출산을 하게 되는지. 

알콩이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달콩이의 움직임이 느껴진 것은 하나의 아기집에 알콩이와 달콩이가 함께 있기에 알콩이의 움직임으로 인한 달콩이의 움직임이라고 했다.

달콩이의 심장이 멈추긴 했지만, 알콩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고 자궁 상태가 나쁘지 않았기에 알콩이는 단태아 기준으로 기다렸다가 출산하면 된다고 했다. 

알콩이의 건강상태는 지금은 알 수 없고, 출산해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일란성쌍둥이는 하나의 태반을 공유하고 있기에 한 아이가 잘못될 경우, 

그 충격으로 다른 아이에게 다양한 문제들 특히 뇌 손상이 생길 수 있고 그 확률도 25%가 넘었다. 


교수님께서는 

    지금은 걱정하지 말라고, 

    지금은 배 속에서 잘 자라고 있으니 건강하게 태어나길 기도하자고, 

    혹여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잘 치료받으면 괜찮다고, 

    출산할 때까지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생각하고 그때 만나면 된다고 하셨다. 


외래 산부인과에서 다른 산모들을 마주치는 것에 대해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초음파도 고위험 산모 병동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교수님을 만난 후, 심리적인 안정과 함께 나의 몸은 급속도로 좋아졌다. 

이제는 퇴원해서 집에 가도 된다고 하셨지만, 병원을 떠나는 것이 무서웠다. 

또 잘못될까, 봐.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계속 입원하고 싶다고 매달렸다. 

하지만 병원에서 특별히 검사할 것은 없었고, 입원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늘 그랬듯이 따뜻했다.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 첫째는 얼마나 내가 그리웠는지 

그동안의 일을 조잘거리며 껴안고 뽀뽀하며 쉬지 않고 사랑을 표현했다.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집은 깨끗했고, 예전보다 더 좋은 음식들을 차려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이 공간. 이 느낌


모든 것은 그대로였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모두 나만 쳐다봤다. 

내가 평상시처럼 웃고 편안해하면, 다들 안심했다

내가 슬퍼하면, 다들 어떤 위로를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이 충혈되며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곤 했기에

최대한 눈 마주침을 피했다. 


달콩이를 생각하면 숨이 멎을 만큼 힘들었고,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배가 뭉쳤다.

   ‘배 속에 아직 알콩이가 있는데. 어쩌면 알콩이가 지금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스치자 더는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느껴지는 달콩이의 움직임. 

    그래. 

    아직 달콩이는 떠나지 않았어. 


매일 기도했다. 그리고 부탁했다.


    “달콩아. 엄마 배 속에 있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알콩이를 지켜줘. 너무너무 사랑하고 미안해.”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생일이 가까워진 그때. 우리는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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