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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미 Oct 26. 2024

당근 거울 보기

굿윌이 필요할 때

당근 거울아! 거울아! 내 모습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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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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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진짜? 이게 나라고?  [쨍그랑]      


당근 거울로 내 민낯을 마주할 때 몇 번이고 거울을 깨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머릿속 내가 아니라서 당황스러웠다.

     

당근마켓, 여기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한 번 보고 더는 안 볼 사람들이다. 익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 공간이라 내 진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시선을 의식한 정제된 것이 아닌, 날것 상태로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솔직하고 진솔하게 털어놓고 싶어 ‘당근 일기장’ 쓰게 되었다. 지난봄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을 받고 시작한 첫 책이기도 하다. 솔직함에 공감까지 얻는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마음이다.      

당근마켓을 시작한 지 4년 차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사이 나는 네 살을 더 먹었다. 작년에 ‘만 나이’로 통일되면서 깎인 나이에 기분이 잠깐 좋았지만, 체감 나이는 그대로다. 얼굴에 나잇살이 늘어 주름이 짙어졌고, 얼굴 살이 빠진 데다 툭 튀어나온 턱뼈에 얼굴각이 살아났다.


그사이 우리 집은 살이 쪘다. 1인 가구가 사는 10평짜리 집이 달박달박하다. 이사하듯 짐을 줄이려고 당근마켓에 발을 들였는데 어찌 된 게 혹이 더 붙어버렸다. 짐이 훅 늘었다. 다이어트 실패다. 이렇게나 많은 짐을 이고 지고서 잘 버텨주는 집이 고마울 정도다. 만약 집 무게로 월세가 정해진다면 지금 금액에서 껑충 올라 따따블은 더 내야 할 판이다.      


우리 집에 짐이 늘어난 데는 내 물욕이 한몫했다. 물욕이 엄청나다. 괜찮은 물건을 눈으로 보기만 해도 시동이 걸린다. 필요를 따질 새도 없이 블랙홀처럼 거침없이 빨아들인다. 그렇게나 나는 1차원적인 사람이다. 특히나 공짜를 엄청 밝힌다. 무료 딱지가 붙으면 헤벌레 해져서 ‘무조건 앞으로’다. 머리가 듬성듬성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였을까? 

    

‘거절을 못 하겠어.’라는 생각도 착각이었다. 얼굴을 보고 말하기가 부끄러웠을 뿐이었다. 당근 마켓에서는 ‘죄송해요’라는 말로 거절 의사를 잘도 표한다. 생각보다 매몰찬 구석이 있다. 그래도 나의 권리를 제대로 확인하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어서 조금 편해졌다.   

  

당근 마켓은 새로운 소비 CHANNEL이 되었다. 여기서 돈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 후덜덜한 가격표가 달린 물건은 구경도 못 했는데 당근마켓의 주선으로 만남이 성사되었다. 덕분에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브랜드 옷이나 가방도 걸쳐봤다. 돌고 돌아 거쳐서 왔지만, 브랜드 제품이라 그런지 ‘소유자’라는 게 너무 좋다. 소비 경험이 자부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근마켓에서 확인한 내 그릇은 크지 않았다. 작은 종지 정도다. 소소한 즐거움 한 숟가락이면 금방 채워진다. 땡그랑 한 푼, 두 푼 떨어지는 소리에도 낄낄거리며 좋아한다. 확실히 큰 사람과 거리가 멀다.      


그런 쪼잔한 사람이 안 하던 일 하나를 해보려 한다. 당근 일기장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뭐라도 하나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해보면 느끼는 바가 있을 테고. ‘이렇게 달라졌어.’라고 생색도 내고 싶었다.    

 

그냥 주기. 제일 하기 어려운 일을 지난번에 암암리에 진행했다. 쉬쉬하며 나눔으로 올렸던 물건을 ‘끌어올리기’해서 공개했다. 결과가 크게 다르진 않지만, 문의가 몇 건 생겼고, 나눔이 진행되었다. 예상했던 것만큼 크게 좋지는 않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 되다’는 말씀도 있는데 기쁨이 물밀듯 밀려오는 거 같진 않다. 밀린 숙제 해치운 정도다. 내가 아끼던 물건이 아니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내 것을 포기하고 다른 이에게 건네는 용기는 아직 없다. 본전 생각에, 아까운 마음에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한번 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얼핏 들었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라 굳이 붙잡지 않아도 되지만 잡아봤다. ‘그래, 이거 해보자!’      


집에서 나와 큰길 사거리를 지나면 중고품 상점이 있다. 간판에는 ‘굿윌스토어’라고 쓰여 있다. 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들고, 자립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세워진 가게라 한다. 여기에서는 중고 물건을 사기도 하지만 물건을 기증받는다. ‘기증’이란 단어가 왠지 멀게 느껴졌다. ‘장기기증’처럼 묵직한 것을 줘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내가 기증자가 될 여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막상 가게에 가서 둘러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안에는 ‘이런 것도 사갈까?’ 싶은 자질구레한 물건이 많았다. 내 물건도 받아주겠다 싶어 용기가 났다. 그래서 당근마켓에 내놓은 거 말고, 상태가 괜찮은데 크기는 맞지 않고, 손이 잘 가지 않았던 원피스 다섯 벌을 꺼냈다. 아직 예쁜데, 두고 입어도 될 텐데, 이거 꽤 비싸게 샀었는데. 여러 이유가 내 발목을 잡았다. 아쉬움에 섭섭함이 더해진다. 결심이 서도 걸음을 옮기는 게 쉽지 않다. 받고, 끌어당기는 방향으로 관성이 생겨 반대로 보내는 게 두 세배의 에너지가 든다. 좋은 마음을 품었으니, 의지를 다지고 가보자. Goodwill Store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고 하더라도 돌아오는 길은 가뿐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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