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야기 - 넷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내가 왜 그걸 하기로 하고 선택했는지 다시 상기하자. 학교엔 공부하러 갔는데 공부는 하기 싫다. 회사에서는 성공하고 나를 성장시키고 경제적 수단을 얻기 위하여 들어가는데, 그걸 얻어내기 위하여 필요한 성과를 만들어 내는 기초가 되는 “일”은 하기 싫다. 이게 오해이고 젊었던 혹은 아직 젊은 우리가 빠지는 덫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잘 꾸려 나가고 우리의 꿈에 다다르기 위하여 어떤 일(회사 일)을 자발적으로 하기로 하고 심지어 열심히 노력하여 회사를 선택하고 나를 위한 모든 것을 이루어내기 위하여 필요한 활동을 하기 위한 장으로 그곳을 사용하려고 한다. 이것이 회사에 다니는 이유이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 글은 내가 재직시에 젊은 직원들과의 일대일 개인 면담에서 자주 한 이야기를 일부 포함하고 있다. 지난 봄에 해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지에서 취업한 나의 딸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조언을 한 적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의 딸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직장인 혹은 예비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부분이 있을것 같아서 이 공간에서 공유하려고 한다.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이야기로 들릴 가능성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한 개인으로써 독립하기 위해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고뇌를 피할 수 없을 운명인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득이될 만한 사항이 발견되길 바란다.
대학 이전의 학창 시절에 쓴 시간을 배제하고, 대학 시절만 생각해도 이땅의 젊은이들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여 공부를 하고, 그 이후 대부분 직장을 잡는다. 대학 졸업 후에 유학 등 진학을 더 하거나, 혹은 가업을 잇기 위하여 가족 회사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학을 졸업하는 대다수는 보통 취업을 한다. 그들은 공무원, 일반 기업, 창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에서는 절대 다수가 선택하는 일반 기업에 취업을 하는 경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말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들에게 먼저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나는 비교적 큰 규모의 중견 기업에서 주요 관리직을 맡으면서 많은 면접을 경험했다. 서류 검토는 물론 1차 면접부터 최종 면접까지 아마도 십 수 년간 수 없이 봤을 것이다. 긴장한 모습으로 면접장에 입장하여 지정된 자리에 착석하는 청춘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단정해 보이기 위함이겠지만 획일적인 면접 복장(정장)을 하고 앉아서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는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 너무 귀엽기도 했었다. 신입 사원의 경우 내 딸아이 보다도 어린 경우도 있어서 세월이 참 빠르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들은 그 어려운 수학의 기간을 통과하고 무수히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취업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긴장된 최종 면접까지 통과하면 어엿한 직장인이 된다. 그들은 바늘 구멍 만큼 좁아서 뚫기가 정말 어려운 대입 과정을 힘들게 지나고 합격을 하면 4년 내내 높은 학점을 따기 위하여 낮과 밤을 희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하여 인턴도 하고 이런 저런 경시 대회에도 참석하고 또 봉사 활동도 하면서 스펙을 쌓았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기록을 이력서에 기록해서 제출하고 몇 번의 면접을 통과한 후 드디어 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모든 과정이 어려웠겠지만 아마도 면접이 제일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축구 경기에서 연장을 치룬 후에도 결판이 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치루게 되는 마지막 승부차기처럼 말이다. 대면 면접이 어려운 것은 비교적 나이가 많은 기성 세대를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야하기 때문에 특히 더 어렵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어이없는 면접은 아마도 AI에 의한 서류 면접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아닌 기계를 일단 통과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그런 AI 면접을 통해서 상당수의 인원이 걸러진다. 수 년간 공부하면서 준비한 취업이 사람도 아닌 AI의 평가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은 참 서글픈 현실이기도 할 것 같다. 면접을 더 세밀하게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면접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AI라는 간편한 저비용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다. AI에게 날 뭘로 보고 떨어뜨렸냐고 따질 수도 없기 때문에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한 지원자들은 그저 황당하고 막막할 따름일 것이다.
이렇게 AI라는 비인간의 평가를 통과한 후에 비로서 진짜 인간에 의한 면접을 몇 차례 거치고 드디어 직장을 잡게 된다. 이제야 뭔가 이루어낸 것 같은 뿌듯함을 얻는 참으로 기쁜 순간일 것이다. 드디어 취직을 한 것이다!
보통은 이런 지난한 과정 후에 취업을 한다. 그리고 출근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느닷없이 여기서 시작된다. 즉 다 합격하고 나서는 정작 회사에 가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출근과 퇴근이라는 구속된 삶의 패턴을 따르려니 그동안 누리던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래도 입사 초기에는 새로운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럭저럭 시간이 흐른다. 그런데 짧으면 입사 후 수 개월 혹은 늦어도 2~3년이 지나면 내가 여기서 뭐하는 것인가? 하는 자조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에 들어와서 노동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으면서 수 개월, 혹은 수 년간 일해온 후에 왜 그러한 무력감, 재미없음, 하기 싫음, 짜증, 부담, 스트레스, 등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도 입사 초기에 그런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왜 그런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이 늦은 것이 단점이겠지만 아무튼 그래도 내 과거의 모습이 왜 그랬는지 이해한 것만으로도 조금은 의미가 있고 그러한 나의 이해를 이 땅의 젊은 청춘과 공유하고 싶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위와 같은 다양한 부정적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는 본인이 왜 직장에 들어 왔는지를 잊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다가 문뜩 내가 정말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잊곤 한다. 너무나 어려운 과정을 힘들게 통과하고 취업을 한 경우에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완 설명을 위하여 학생 시절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학창 시절에 학교에 가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일단 공부가 그 첫 이유다. 법적인 의무 교육 기간도 있지만 아무튼 공부를 해서 어엿한 사회인도 되고 성인으로써 갖추어야 할 적절한 소양도 쌓기 위하여 학교에 간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은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고 그냥 때가 되서 떠밀려서 남들이 가니까 학교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 나이에는 학교말고 갈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아무튼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면서 인격도 쌓고, 성적도 쌓아서 결국 대학에 진학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학문에 매진하기도 하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 취직하기 위하여 집중적인 취업 공부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학교에 가는 이유는 뭔가를 공부하여 나를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즉 공부해서 좀 더 나은 사람 그리고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사회에 기여 할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평범한 학생들의 경우 학교에 가면 보통 공부가 하기 싫다. 수업에 집중도 어렵고, 선생님과 친해지기도 싫다. 왠 과목은 그렇게 많은지 머리가 돌 지경이다. 그런데 일부 학생들은 수업에 집중도 하고 선생님께 많은 질문을 하면서 학업에 정진한다. 그들은 머리가 돈 사람인가? 아니다. 그런 학생은 대부분 자기가 왜 학교에 와서 앉아 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공부가 그리 재미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재미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공부가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굳이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공부를 잘 해서 문제도 풀고 성적도 오르면 뿌듯한 만족감을 주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아지는 매우 긍정적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그래서 그에 맞는 목적에 충실한 사람들이 결국 좋은 성적을 얻고 상위 수준의 대학과 학과를 선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평범한 학생들은 공부가 하기 싫기 때문에 억지로 그냥 저냥 학교를 다니다가 (물론 나름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에 맞는 결과(성적)를 만들어서 그에 어울리는 대학에 진학하고 그에 맞는 직장을 잡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자는 옳고 후자는 그르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꼴등도 자리가 하나 밖에 없어서 아무나 할 수 없지만, 상석 또한 소수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수가 점할 수 없다. 그리고 온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과 일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 거기에 맞는 사람들이 분야별로 존재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학교의 경우 의무 교육까지는 국비가 지원되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일단 학비를 내야 한다. 즉 내 돈(대부분 부모님의 지원이겠지만)을 내고 대학을 4년간 혹은 2년간 다녀야 하는데 그렇게 비용을 지불하고도 그 비용 지불을 통하여 받아야 할 적극적 서비스(공부)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서 요금을 지불하고 밥을 먹는다. 대부분 밥을 먹고 돈을 내지만, 아무튼 식당에 들어가는 목적은 식사를 하기 위해서 이고 그래서 돈이 들어간다. 사람이 많이 붐비는 기사 식당 같은 일부 선불 식당에 갔다고 가정하면, 들어가자 마자 돈을 내고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 그리고 나온다. 그러면 그 식당에 들어간 목적에 맞는 행위를 한 것이다. 너무 극단적 비유이긴 하지만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들어가서 충분히 공부하지 않는 것은 선불 식당에 돈 내고 들어가서 밥은 먹지 않고 잡담만 하다가 나오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럼 나중엔 배가 고플 것이다. 그러면 곧 어디선가에서 뭔가를 먹어야만 허기가 좀 가실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대학에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 이후 뭔가를 익히고 배워야만 향후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분, 즉 지식 혹은 실력을 채울 수가 있다.
이렇게 역량 혹은 지식의 허기를 채우지 않으면 나중에 삶을 살아가는데 불편함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먹은게 없으니 배가 고프고 힘도 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코인이 떡상을 하던가 복권에 당첨되면 최소한 경제적인 측면의 문제는 많이 해결된다. 그러나 이런 예외적인 경우는 배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확률이 극단적으로 너무 낮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교를 예로 들어서 설명을 했는데, 이제 회사로 눈길을 돌려보자. 회사에 입사를 한다. 앞서 기술한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여 회사에 들어왔다. 왜 회사에 들어갔을까? 그 회사의 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입사한 것인가? 대한 민국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나의 젊음을 불사르기 위하여 들어간 것일까? 다 맞지만, 그에 앞선 더 분명하고 타당한 나만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사회인 그리고 한 명의 독립인으로 기능하기 위한 경제적 혹은 금전적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얻어서 나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어 나가기 위해서 직장을 잡았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니 부모의 지원을 많이 받는 금수저는 예외로 하고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란 절대 다수의 젊은이를 기준으로 생각 해보자. 그들은 경제적으로 어떻게든 독립을 해야 한다. 부모가 언제까지 그들을 챙겨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는 수단이 필요하고 그 수단은 돈이며, 그 돈을 얻어 낼 수 있는 방식 중의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 노동을 통한 부의 획득인데, 그것을 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이고 접근 가능한 방법이 취업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그런 명확한 목적을 위하여 취업을 한다. 피와 땀을 흘려서 그리고 나의 영혼과 체력을 갈아 넣어서 말이다. 최소한 14년에서 16년간의 공부를 한 후에 그렇게 우리는 취업을 한다. 대다수의 우리가 말이다. 그러면 취업후에 해야 할 것은 경제적 독립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한 활동이며 그것은 자기가 맡은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직장에서는 일단 일을 잘 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독립이 좀 더 원활할 수 있다. 물론 직장에서 일만 잘한다고 승진하고 성공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일을 잘하는 것은 직장 생활에서 최소한의 성공을 만들어 내기 위한 가장 원초적으로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일 뿐이다. 대인 관계도 잘 해야 하고, 태도도 좋아야 하고, 유머도 가끔 필요하고, 건강해야 하기도 한다. 아무튼 직장을 잡았고, 거기로 간 나의 목적(경제적 독립을 위한 토대 확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임은 분명하지 않을까?
그런데 역시 직장인들 중에 일을 그렇게 열성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주어진 일을 그냥 하는 정도가 일반적일 것 같다. 남들 보다 더 많은 역할을 맡아서 도전하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자양분으로 만들기 위하여 정열을 쏟는 직장인은 극 소수이다. 일부는 심지어 입사하자마자 퇴사를 외치면서 회사를 욕하기에 바쁘다. 물론 욕먹을 만한 회사도 상당히 많이 있다. 하지만 불평하고 욕을 하기에 앞서서 자기가 선택해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들어온 그 곳에 자기가 왜 왔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직장을 잡아서 그곳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승진도 하고 좋은 평가도 받고, 그리고 능력도 향상을 시켜서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여 직장을 잡았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하는 결과를 얻어내려면 먼저 그 회사에서 자신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잘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그게 바로 일인 것이다. 맡은바 일. 흔히 하는 말로 ‘네가 맡은 일이나 잘하고 이야기하자’ 라고들 한다. 맞다. 내 할일이나 먼저 잘 하자. 그리고 나서 뭔가 요구하고 불평을 해도 늦지 않는다.
왜 이런 불평과 불만을 일삼는 일이 생길까? 이런 상황은 대부분의 취업한 청춘들이 여지없이 겪게되는 성장통 같은 것인데 도대체 왜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일까? 내 생각엔 그들이 “왜 입사를 했는지”를 까먹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학교에 간 이유를 까먹었듯이 말이다. 그들은 왜 그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해야 하는지를 잊은 것이다. 적게 잡아도 직장인의 8할은 입사 후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신이 왜 그 회사에 들어갔는지를 까먹는 것 같다. 나도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그 이유와 목적을 이해하고 있다면 일에 매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여기에서 큰 오해를 사는 부분이 있는데, 사람들(회사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그 회사를(혹은 회사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큰 착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회사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순서가 좀 바뀐 것 같다. 뭐냐면, 나를 위해서 일을 했는데 그 결과 회사에도 좀 도움이 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를 위해서 그 회사에 들어간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서 일을 해서 그 결과물을 토대로 평가받고 보상받는 것이다. 그 직장인이 일을 정말 잘 했다면, 그 회사는 일을 잘하는 직원이 있는 셈이고 따라서 그 직원은 그 회사에서 받은 이상으로 기여했다고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직원은 자기를 위해서 일했지만 그 결과물은 회사도 함께 나누게 된 것이다. 이래서 결과적으로 그 직원은 회사를 위해서 일한 꼴이 되지만, 그 전에 그 직원은 오로지 자신을 위하여 일을 했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회사를 위해서 취직을 하지도 않았고, 회사를 위해서 우리의 정열을 불사른 적도 없다. 심지어 당신을 그 회사에서 먼저 오라고 초대하지도 않지 않았는가? 아주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회사의 구인 형태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회사를 찾으면서 진행되지 회사가 직원을 먼저 찾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는 우리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회사를 위했다면, 그래서 충성을 다 했다면, 월급을 일부 반납을 했던가 해야지 보통 우리는 사양하지 않고 다 받지 않았던가? 많던 적던 간에 내가 한 만큼(물론 보상은 늘 부족하겠지만)말이다. 그래 놓고서 회사를 위해서 일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큰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회사를 위해서 일한 적이 없다. 너무 강하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해서 약간 회사원들로부터의 후환이 두렵긴 하다.
그리고 반대로 회사 역시도 개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대 개인은 회사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회사와 개인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종의 ‘망각’ 혹은 ‘착각’이 회사원들로 하여금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제일 큰 요소라고 생각된다. 본인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착각말이다. 희생은 정말 어려운 것이다. 나라를 지킬 때 피를 흘려가면서 희생한다. 나의 가족도 지켜야 하고, 그야말로 우리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희생을 한다. 희생은 '회사' 같은 곳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회사는 '국가'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월급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상사들은 왜들 그렇게 한결같이 모자라고 못되었는지? 이렇게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온갖 일들은 내게로만 몰려 오는 것 같고 난 그것을 해야만 한다. 내 등에 너무 많은 빨대가 꽂힌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분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일을 적게 하고 남에게 떠넘길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 우리가 직장을 잡고 일을 하는지, 내가 왜 일을 하는지, 내가 왜 그 회사를 선택했는지를 다시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부분을 이해할 때 나의 일은 이제 정말 나의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올바른 방향을 정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 하나를 이야기 하고 글을 마치려고 한다. 학교는 내 돈 내고 다니면서 그 대가로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서비스(공부)를 오히려 받지 않으려고 하는 모순의 장이다. 그러면, 회사는 어떨까? 학교와 달리 반대로 우리는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우리가 목적하고자 하는 것을 우리를 위하여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곳이 바로 회사인데 우리가 그런 점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는 정말 거대한 모순의 장이기도 하다. 뭔가 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돈을 주면서까지 내 삶을 잘 꾸려봐라... 하고 기회를 주는 곳이 회사인데(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개인을 비용을 들여서 사서 활용하는 것 뿐이다. 개인이 적극적으로 회사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돈을 받고는 그 기회를 살리는데 게으른 것은 그리 합리적인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통해서 '회사에 왔으니 게다가 돈까지 받았으니 정말 열심히 죽도록 일을 해서 성과를 내야 한다' 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 바란다. 왜 당신이 그 회사를 선택했고 거기에 왜 갔는지를 상기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곳을 잘 활용하여 leverage로 삼아야 하고 그때서야 비로서 자신이 거기에 간 이유와 목적에 부합한 뭔가를 실질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불평만 하기에는 젊음이 짧다. 왜 일을 하기로 선택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내가 왜 그걸 하기로 하고 선택했는지 다시 상기하자. 학교엔 공부하러 갔는데 공부는 하기 싫다. 회사에서는 성공하고 나를 성장시키고 경제적 수단을 얻기 위하여 들어가는데, 그걸 얻어내기 위하여 필요한 성과를 만들어 내는 기초가 되는 “일”은 하기 싫다. 이게 오해이고 젊었던 혹은 아직 젊은 우리가 빠지는 덫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잘 꾸려 나가고 우리의 꿈에 다다르기 위하여 어떤 일(회사 일)을 자발적으로 하기로 하고 심지어 열심히 노력하여 회사를 선택하고 나를 위한 모든 것을 이루어내기 위하여 필요한 활동을 하기 위한 장으로 그곳을 사용하려고 한다. 이것이 회사에 다니는 이유이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회사를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인지 나를 위하여 하고 있는 일인지 명확해 진다. 이젠 왜 '일단' 일을 잘 하고 봐야 하는지 이해가 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난 절대로 회사를 위해서 일하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회사는 나 한명 없어도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연예인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나는 회사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걱정할 시간에 내 일을 더 잘하는 것이 회사와 나를 위해서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