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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ul 16. 2024

MZ며느리의 공황장애 극복기

결혼은 둘만 좋아서 하는 게 아니었다.(4)


코로나 전화 사건이 있고 나서 나는 시댁에 절대 먼저 일절 연락하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다.

나름 살가운 며느리는 아니더라도 많이 노력했고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사람인 걸 나 자신이 잘 알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부모님이기에 우리 부모님처럼 정말 잘해드리고 싶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늘 그렇듯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첫 결혼기념일을 맞이해서 홍콩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시부모님들 역시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나 평생 여행 한번 안 다니시고 사신 분들이라 우리 부부가 돈 쓰는 것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신 분들인걸 잘 알기에 그러면 안 되지만 여행은 비밀로 하고 다녀오기로 하고 우리는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도착 후 얼마 되지 않아 내 로밍된 휴대폰으로 문자 한 통이 왔다. 시아버님이었다.

"아줌마 결혼기념일 축하"

아... 아줌마?????? 이건 친근의 표현인 건지 뭔지 모르겠는 단어였다.

그러고 나서 바로 남편 휴대폰 전화가 울렸다. 결혼기념일이라 시댁으로 밥 먹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나는 홍콩 디즈니랜드에서 온갖 눈물은 다 쏟았다. 남편은 심각성을 느끼고 디즈니 할리우드호텔 칵테일바에서 이 상황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내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장난이라도 며느리에게 아줌마라고 부르실 수 있는지, 평소에 친근하게 대해주셨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닌데 왜 그러시는지, 결혼기념일인데 왜 시댁으로 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물었다. 남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행복한 듯 찝찝한 첫 번째 결혼기념일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설 명절

나와 남편은 직업 특성상 명절, 주말 할 것 없이 근무하는 회사 특성상 명절에 가족들과 보낸 게 손에 꼽는다.

이번 명절도 부득이하게 명절 전날 저녁까지 근무를 하고 명절 당일 새벽 시댁으로 향했다.

새벽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고 형님은 나의 인사를 또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불편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나는 설거지라도 도와드리고 친정에 가려고 했으나

시어머님의 극구 빨리 가라는 말씀에 주방에는 얼씬도 못하게 되었는데 형님이 날이 선 목소리로

"미안한 줄 알면 다음부턴 빨리빨리 다녀요."라고 얘기했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늦게 와서 혼자 음식을 한 줄 알았는데 형님네도 전날 저녁 늦게 도착했고 아침에 자고 직전에 일어나서 씻은 것 밖에 없는데 나한테 왜 이렇게 날이 서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는 시어머님, 나, 남편, 그리고 형님이 같이 있었는데 옆에서 한마디도 못한 남편이 너무 미웠다.

시댁 밖을 나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눈이 너무 충혈되어 친정 가는 시간을 좀 미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명절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랑 오랜만에 함께 쉬는 주말.

오후에 나른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데 휴대폰이 또 울린다. 시아버님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너 나한테 서운한 게 있냐?"라고 말씀하셨다.

왜 전화도 안 하고 서운한 게 있으면 말로 하라고 하셨다.

결혼하고 나도 쌓인 게 너무 많아 아버님께 대뜸 "오빠는 결혼하고 2년 동안 저희 집에 전화 한 통 안 했어요 아버님."

맞는 말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내가 한만큼의 노력을 남편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전제로 깔려있어서 서운함이 더 해 진 것도 있었다.

아버님은 당황하시더니 그건 내가 얘기할 테니, 또 서운한 걸 얘기해 보라고 하셨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대뜸 전화하셔서 서운한 걸 얘기하라고 윽박을 지르시니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버님, 제가 이런 말씀드리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저 코로나 걸렸을 때 전화로 형님이랑 비교하신건 너무하셨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아버님은 구구절절 그런 뜻이 아니라며 얘기하셨지만 이미 내 눈물샘은 폭발을 했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당황하셨는지 아버님은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전화해 둘 다 당장 시댁으로 오라고 하셨다. 우는 걸 들으시더니 본인 때문이 아닌 우리가 부부싸움을 하신 줄 오해하셨다. 전혀 아닌데...


남편이 시어머님께 연락드려 A부터 Z까지 전부 말씀드리니 일단 비가 많이 오니 오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하셨다.

그날 나는 네 시간을 울다 탈진했고 이날부터 정신이 혼미해지고 과호흡, 소화불량, 구토 등 공황 증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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