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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드림 May 19. 2024

백파이프 선율은 글렌을 따라 흐르고 ②

세계여행 에세이: 스코틀랜드 (2화)

역사


에든버러 성의 게이트는 정시에 열렸다. 정문을 통과하기에 앞서, 양 옆으로 우뚝 서서 성으로 드는 낯선 이를 유심히 내려다보는 두 명의 스코틀랜드 수호자들에게 먼저 경의를 표하였다.


아이들 뒤쪽으로, 좌측엔 로버트 1세, 우측엔 윌리엄 월레스


스코틀랜드의 역사다.


좌측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2세에 맞서 배넉번 전투(1314년)에서 승리한 로버트 1세(로버트 더 브루스). 교황으로부터 마침내 스코틀랜드를 독립국가로 인정받았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럭비 매치를 시작하기에 앞서 선수와 관중들은 'Flower of Scotland'(스코틀랜드의 꽃)을 다 같이 합창했다. 7백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배넉번 전투의 승리는 스코틀랜드의 정신으로 남았다. "... 거만한 에드워드의 군대에 맞서 싸웠노라. 집으로 쫓아버렸고, 후회하게 만들었노라." 어린아이도 울컥하며 노래를 불렀고, 선수들은 표정으로 필승을 약속하였다.



우측엔, 영화 'Braveheart'(브레이브하트)에서 멜 깁슨이 연기했던 윌리엄 월레스. 올려다보는 순간 '영화 속' 그의 생애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Freedom!"(자유!).



권위


마지막이 있기 위해서는 시작이 필요했다. 브레이브하트 영화는 소년 윌리엄에게 엉겅퀴(Thistle) 한 송이가 건네지면서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의 꽃.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영혼의 보물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에든버러 성이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왕가의 보물들을 지켜내려던 가슴아린 역사 이야기에 갈 길 바쁜 여행객의 움직이는 속도는 자꾸만 느려졌다.


로열 팰리스(The Royal Palace). 메리 여왕(Queen of Scotland)이 1566년 제임스 6세를 낳은 곳.(메리여왕은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 의해 참수당했다.) 스코틀랜드의 왕과 여왕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살았고, 죽었다.



이곳 보물 중의 으뜸은 '운명의 돌'(Stone of Destiny). 사진 촬영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신성한 돌.


좌측, 1996년 에든버러 성을 방문한 앤드루 왕자와 운명의 돌


2023년 5월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열렸다. 때맞춰 에든버러 성에 있던 무게 152kg 사암 ‘운명의 돌’이 런던에 도착했다. 운명의 돌은 찰스 3세가 앉는 왕좌의 바로 아래에 놓였다.


9세기부터 스코틀랜드 왕들은 이 돌 위에 앉아 대관식을 치렀다. 1296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빼앗아 잉글랜드로 가져갔다. 스코틀랜드의 권위를 빼앗아갔다. 1950년 스코틀랜드의 대학생 4명이 몰래 스코틀랜드로 가져왔고, 영국 왕실은 ‘대관식 때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가져온다’는 조건을 달고 1996년에야 에든버러 성에 돌을 두는 것을 허락하였다.


Great Hall. 또 다른 권위의 상징. 잉글랜드의 올리버 크롬웰이 에든버러 성을 점령(1650년) 한 후 군인들 막사로 사용토록 했다는 모욕적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었다. 중세 무기들을 빼곡히 전시해 두었다.


"Can I have a look at the sword?"(검 좀 봐도 돼요?)


"Sure-"(물론이지)


작은아이의 똑 부러지는 요구에 안내원은 둔탁한 스코티시 악센트와 환한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다. 꼬마 손에 3kg이 넘는다는 검을 들려주었다. 내친김에 기사들이 착용하던 갑옷의 장갑까지 끼고선 어퍼컷이라도 날려 볼 기세였다. 무거웠길래 망정이지.


지나던 관광객들은 그런 모습이 또 귀여운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여행객이 또 다른 여행객의 마음을 훔치는 것, 때로는 그것도 여행의 흥미로움이겠다 싶었다.


Great Hall


사랑

 

“하느님, 제게 이토록 많은 불행을 견뎌낼 힘을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스코틀랜드의 성녀 마르가리타(1250년 시성).


마르가리타(마거릿)는 (그의 나라만큼) 거친 남편 맬콤 왕의 성격을 부드럽게 하고, 생활을 바르게 가르쳤으며, 덕을 갖춘 왕이 되도록 도왔다. 기도와 고행, 단식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덕을 실천하였고, 남편과 함께 당시의 사회, 교회 쇄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에든버러 성 안에서 가장 오래된(1130년경) 건물. 세인트마거릿예배당(St Margaret's Chapel). 우리 가족이 들어서면 그만 꽉 차 버릴 만큼 작고 소박한 예배당. 성녀이기 전에 어머니인 마르가리타를 위해 아들(데이비드 1세)이 바친 사랑과 존경의 징표 같아서, 그 안에 잠시 앉아 있는 동안 내게도 사랑이 충만해지길 염치없이 소망해 보았다.


"그만 나가자"


"벌써?"


민망했다.





발포


스코틀랜드 전쟁 박물관. 역시나 킬트를 입고 붉은 재킷을 입은, 배도 나오고, 허연 수염 덥수룩하기도 한 젊지 않은 스코틀랜드의 브레이브 한 전사들. 발맞춰 행군해 오더니, 관중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화약을 넣고 장전을 했다. 웃음기 싹 뺀 채로.



그 옛날 잉글랜드 군에 맞서 싸우는 자세인가 했다. 그러나, 어설프기 짝이 없어서, '어디까지 할 건데?' 그런 생각으로 넋 놓고 있는 사이에 발포를 했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모두들 화들짝 놀란 듯했다.


"장난 아닌데?"


갑자기 뒤돌아 서더니 이번엔 총구를 관중을 향해 겨누어왔다. 맨 앞 줄에 서 있던 작은아들 슬금슬금 형 뒤로 숨어 형을 앞으로 밀어내더니, 급기야 울먹울먹 거렸다.


"왜 우리를 죽이려고 해?!".  




마일(Mile)


16세기부터 스코틀랜드 왕가가 에든버러 성을 떠나 새롭게 터전을 잡은 곳이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에든버러에 오면 거처로 삼았던 홀리루드 궁전(Holyrood Palace). 에든버러 성에서 이곳까지 올곧게 쭉 뻗은 로열마일(Royal Mile). 일이 제대로 돌아갔다면, 볼 것 많고, 살 것 많고, 먹을 것 많아서 1.6km 짧지 않은 거리가 지겨울 틈이 없어야 했다.


에든버러 성을 떠나 로열마일로 내려섰을 때는 이미 다들 발걸음이 무거워질 데로 무거워진 후였다. 에든버러를 당일치기로 둘러보는 패키지 프로그램에 이곳 성은 외관만 보고 돌아서야 할 이유였다.


캐시미어 양모 제품 하나 사고 싶었지만, 쇼핑에는 별 관심들이 없었다.


"스카치위스키 박물관 좀 갔다 가자."


"배고파."


지나치고, 지나치고, 조앤 롤링이 에든버러 성을 바라보며 해리포터를 집필했다는 엘리펀트 하우스도 포기했다.




충전


피자헛에서 마르게리타 피자, 시저 샐러드 그리고 콜라로 때우는 점심에 다들 행복해했다. 얼굴에 생기가 살아났다. 거 참. 이게 아닌데 싶었다.


원기가 충전되었다.


"던전 들어가 볼래."


"저기 기사 미니어처 살래."



활보


갇혔던 곳에서 빠져나온 듯 활기차게 고풍스러운 도시를 활보하였다.


위로 쌓아 올리고 아래로 파고든 중세 도시의 거무튀튀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게다가 하늘은 왜 이리도 푸른지. 긴소매를 걷어올렸다.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에 들를 여유도 챙겼다. 어른들을 위한 힐링의 시간도 필요한 것이렸다. 물론, 아이들 입이 댓 발이나 나왔지만.  


에든버러에서 만나는 세잔과 고흐의 감흥은, 뭐랄까, 일본 하우스텐보스에서 만나는 네덜란드 감성이랄까, 뭐 그런 류의 것이었다.


"빨리 가자."


아이들이 보챘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청중 없는 앳된 소년의 백파이프 연주에 바삐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나마 열렬한 팬심을 표현해 보았다. 더 힘이 났으려나 싶었지만, 소년의 얼굴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엄마, 아까 그 인형 줘"


아까 에든버러 성에서 샀던 백파이프 부는 곰돌이를 백팩에서 다시 꺼내었다.




추념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었다. 시간을 어찌 사용했는지도 모르게 반나절이 지나고 또 한나절이 지나려 한다. 뉴타운(신 시가지)으로 자리를 옮겼다.


칼튼힐을 천천히 올랐다. 작은아이를 목마 태우고 오르는 그 짧지 않은 길에, 뜬금없이, 그 녀석 걸음마 서툴 때 목마 태우고 오르던 행주산성 길이 떠올랐다. 힘에 부치던 그 순간 울컥해졌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추억팔이.


저 멀리 바라보이는, 차마 오르지 못하는 Arthur's Seat. 아서왕의 전설 속에 나오는 카멜롯이 바로 이곳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음을 알기에, 아이들도 왕의 기개를 닮아주었으면 하는 욕심이 절로 났다. 막을 수 없는 욕심이라고 해야 했을까. 하지만, 아이들은 이곳 언덕에 오른 순간부터 모든 것을 그저 놀이터 삼아 놀기에 여념이 없을 뿐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전사한 스코틀랜드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그래도 에든버러 전경이 가장 멋지게 펼쳐진 장소에다 파르테논 신전을 본떠 Carlton Hill Monument(1826년 착공)를 만들었단다.(사실은 미완공) 에든버러를 지킨 수호자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라는 의견에 동의하였다.





추억


에든버러와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가 지기 전에 서쪽 끝 바닷가 더넌(Dunoon)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칼튼힐에서 바라보는 '절대 아름다움'이라는 에든버러 야경은 함께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많은 사진작가들이 그리했을 것 같이, 에든버러의 상징과도 같은 풍경 중 하나일, '듀걸드 스튜어트 기념비'와 어우러진 에든버러를 가슴으로 찍으려 애써 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도 떠들거나 장난질을 하지 않았다.


"얘들아, 이제 내려가야지. 배 시간 늦겠다."

"에든버러는 다음에는 니들끼리 와."




이별


에든버러를 벗어난 차는 서쪽 바다를 향해 두 시간 넘게 힘차게 내달렸다. 오늘밤을 쉬어 갈 마을 더넌(Dunoon)을 향해 바다 건널 페리선에 시간 맞춰 올라탈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하이랜드를 향한 원대한 꿈의 여정에 올랐다.


 


(진정한 스코틀랜드 풍경, 하이랜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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