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대륙, 9번째 나라, 3번째 도시
세비야 대성당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에스파냐 광장이었다.
배우 김태희씨가 플라멩고를 추면서 찍은 핸드폰 CF가 기억나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길거리 플라멩고 공연을 보게 됐다.
플라멩고 공연장을 가지 않았는데 이렇게 우연히 무료 공연을 보게 되다니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연주자의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여인이 굉장히 우아하고 선이 고와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근사한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공연이 끝난 후 팁을 담을 모자를 돌렸을 때 우리도 기꺼이 팁을 넣었다.
춤추는 여인의 플라멩고 공연이 아니더라도 스페인 광장은 스페인 들어가서 가장 "스페인" 하다고 느껴졌는데 광장 건물 1층의 둥근 벽면에 스페인 각 지역의 지도와 타일 모자이크가 있어 크게 한 바퀴를 돌면서 어느 지역을 표현한 것인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광장 건물도 올라가 봤는데 2층에 올라가서 분수대를 포함한 광장 전체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름다워 왜 이 광장이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유명한지 알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곳에 크리스마스 조명이 켜져 있고, 이날이 무슨 날이어서 축제를 즐기러 나온 건지, 불금을 즐기러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인파의 현지인들이 트램이 다니는 길까지 막아 트램이 계속 경고 벨을 울리면서 지나가야 할 정도였다.
스페인 대성당 앞쪽에선 무대를 설치하며 공연을 준비 중에 있었는데 가수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밴드와 함께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고 방송국에서 촬영하는 것 같은 큰 카메라들이 그들을 찍고 있었다. 그 앞에는 공연을 관람하는 현지인들이 삥 둘러싸고 있었는데 우리도 합류해서 잠시 그 축제 같은 시간을 만끽했다.
다음날은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는 날이라 보통의 경우 큰 짐을 숙소에 맡겨놓고 가벼운 몸으로 도시를 더 구경하다가 버스 시간에 맞춰서 짐을 찾으러 가는데 세비야의 숙소에서는 그냥 빨리 나오고 싶어 마음의 편안함을 위해 몸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주인은 영어를 전혀 못하시는 세비야 중년 아주머니로 에어비앤비 메시지로는 대화가 문제가 없었던걸 봐서는 아마도 자녀가 어머니 집에 남는 방 하나를 에어비앤비 숙소로 등록하고 관리를 도와주는 듯했다.
정작 같은 공간에 지내는 아주머니는 영어를 못하시고 우리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대부분의 대화는 몸짓 발짓으로 하고, 중요한 얘기는 그 자녀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대화를 했다.
사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건 영어권 국가가 아닌 경우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걸로 인해서 아주머니의 짜증을 듣는 건 별개의 문제라서 숙소에 머무는 동안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주방을 쓸 수 있는 숙소였는데 저녁을 해 먹으려고 프라이팬을 쓰는 중에 들어온 아주머니가 갑자기 탄식을 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또띠아 또띠아 하는 게 그 프라이팬은 아마 또띠아 용이었던 듯하다.
보통 에어비앤비 사용할 땐 사용 매뉴얼이라든지 주의 사항을 써놓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매뉴얼을 잘 따라서 주인과 함께 지내는 공간에서 서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여긴 그런 안내도 없었는데 갑자기 들어와 스페인어로 화만 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씻을 때도 앞에서 물소리를 듣는지 남편이 한참 씻고 있을 때 우리 방문을 두드리더니 나한테 몸짓으로 남편을 그만 씻고 나오라 하라고 하는데, 씻는 시간이 길지 않은 남편을 두고도 저러는데 내가 씻을 땐 어떨까 싶어서 너무 눈치가 보여 매일 저녁 대충 씻고 나와야 했다.
그런 아주머니한테 굳이 아쉬운 소리를 하며 짐을 맡기고 쉽지 않았던 우리는 큰 짐을 들고 나와서 세비야 메인광장에 있는 스타벅스, 버거킹에서 음료와 저녁을 천천히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에스파냐 광장의 지역별 타일 모자이크가 있는 곳에 앉아서 버스를 좀 더 기다린 후 리스본행 야간 버스를 타러 갔다.
이런 경험을 통해 여행에 대한 기억에는 볼거리와 먹거리, 이동의 편리성 같은 것의 영향도 크지만 결국 만나게 된 사람이 그 여행지의 인상을 결정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