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니아대륙, 1번째 나라, 1번째 도시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짧은 체류를 마치고 또다시 좁은 좌석과 기내식 없는 저가항공 안에서 8시간 30분을 버텨낸 후 우리는 드디어 호주 멜버른에 도착했다.
멜버른은 나한테는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 도시는 나의 첫 해외여행지이고,
부모님과 떨어져 산 적이 없는 내가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됨과 동시에,
처음으로 해외에서 장기 체류를 하게 된 도시이다.
이미 큰 의미가 있는 멜버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이다.
유럽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가졌고,
길거리에는 여러 예술가들의 음악, 행위예술 등의 버스킹으로 볼거리가 많았고,
다양한 나라의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사람들이 상냥하고 여자 혼자 살기에도 안전한 나라였다.
대학시절 1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던 나는, 이 도시가 그리워서 다시 워킹홀리데이를 왔다.
심지어 두 번째 호주행은 엄마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 계략까지 짰었다.
아무 생각이 없던 여동생에게 어학연수 바람을 불어넣었고, 동생을 혼자 타지에 보내는 걸 불안해하는 엄마에게 내가 워킹홀리데이로 함께 가겠다 했다.
그리고 우리가 결혼한 해,
아빠의 환갑 가족 여행으로 나는 호주를 다시 왔는데, 남편은 결혼 등으로 휴가를 모두 소진해서 함께 오지 못했다.
호주 멜버른은 나한텐 4번째 방문, 남편에겐 첫 번째 방문인 도시였다.
내가 한국 다음으로 오래 살아본 나라, 도시에 남편과 함께 온 것이다.
지난번 부모님과의 여행 때는,
부모님 지원으로 나와 동생이 공부하고 살았던 도시에 우리가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여행을 왔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드렸었다.
이번 남편과의 멜버른 여행도 내가 아끼는 도시에 사랑하는 남편과 다시 왔다는 사실에 나는 약간 흥분상태가 되었다.
스스로 “호잘알”, “멜잘알”이라며 남편의 가이드가 되길 자처하며, 여기저기 내 추억의 장소에 남편을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호주에 도착해서 시내에 가까운 위치의 셰어하우스로 옮기기 전 삼 개월 정도를 묵었던 홈스테이 하우스가 있는 윌리암스타운(Williams Town)까지 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관광객 없이 호주 사람들만 모여사는 동네에서 그 당시 교회를 다니지 않던 내가 영어 공부를 위해서 일요일마다 다녔던 교회도 데려가고, 친구들을 불러서 내 생일파티를 했던 아름다운 해안가도 데려갔다.
내가 멜버른에서 처음 6개월간 영어 공부를 한 대학 부설 어학원이 있던 스미스 거리(Smith Steet) 쪽도 데려갔다.
주말 아침에 가면 감자 1kg에 호주달러로 1달러일 정도로 식재료와 과일을 저렴하게 살 수 있었던 빅토리아 마켓(Victoria Market)도 데려가고, 그 길 건너에 있어서 한국 드라마 비디오를 빌려올 수 있었던 한인마트도 데려갔다.
멜버른 시내의 랜드마크인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Flinders Street Station)도 데려갔고,
이제는 없어졌지만 내가 워킹홀리데이 할 때 일을 했던 회전 초밥집이 있는 거리에도 가봤다.
어학원 친구들이랑 수시로 다녔던 멜버른 센트럴 역 근처도 데려갔고,
크고 멋진 건물의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도 갔고,
내가 종종 들려서 영어로 된 한국 만화책을 빌리던 시티 도서관도 데려갔다.
산책하기 좋은 야라 강변을 걸어서 저녁에 가면 불 쇼를 볼 수 있는 크라운 호텔도 데려갔다.
내게 의미 있는 장소에 남편이 같이 와있다는 사실이, 이 도시를 다시 찾은 기쁨을 몇 배는 더 크게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