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대륙, 10번째 나라, 2번째 도시
사해에서의 신기한 체험을 마친 후 갈릴리 지방을 향해 올라갔다.
우리는 이번에도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예약했다. 주인이 사는 본관 옆에 별채로 만들어진 가건물로 방과 욕실이 있는 원룸 형태였는데 주방시설은 야외에 있는 걸 이용해야 했고, 렌트한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이스라엘의 중심부인 예루살렘보다는 물가가 저렴해서 더 나은 숙소를 더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었다. 정원에는 이동식 수영장에 물이 가득 부어져 있어서 편하게 이용하면 된다 했지만 그 위에 부유물이 많이 보여서 이용하지는 않았다.
로쉬 하샤나, 유대인들의 달력에 의한 신년으로 죄를 회개하기 위해 야각나팔을 부는 전통이 있어 나팔절이라고도 불리는 기간 동안 상점들이 문을 거의 닫고, 심지어 마트도 문을 닫는다는 걸 알고 도착한 첫날 식재료를 미리 사서 냉장고에 넣어놨다.
첫날 마트에 바로 갔음에도, 우리나라에서 대형마트가 휴무인 전날 가면 마트에 대부분의 신선제품들이 품절되는 것처럼, 마트 내 품절된 재료들이 많아서 선택의 폭이 많지는 않았다.
다행히 선교사님께서 주신 김, 라면 등의 한식 식재료(이스라엘, 예루살렘 근교1)가 있어서 갈릴리에 있는 동안 식사를 잘 해결할 수 있었다.
갈릴리에서도 예수님과 관련되어 성경 속에 등장하는 곳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베드로가 그물이 가득 차도록 잡았다는 물고기라 해서 베드로 물고기라 불리는 생선요리를 파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예수님의 첫 이적,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사건이 있었던 가나 혼인잔치를 기념하기 위한 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를 갔다.
나사렛 예수라 불린 예수님을 낳게 될 거라고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알려준 장소라 하여 세워진 수태고지교회도 방문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을 보였던 장소라 하여 세워진 오병이어 교회와 예수님이 8가지 복에 대한 설교했던 것을 기념해서 세운 팔복 교회도 가보았다.
예수님께서 주로 사역을 하셨던 갈릴리인만큼 가버나움, 가이사라 빌립보, 갈멜산 엘리야 기념교회 등 굉장히 많은 곳을 차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해당 장소가 나오는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했다.
갈릴리에서 맞이한 나팔절, 대중교통도 다니지 않아 우리가 차를 렌트하게 된 이유였던 이날, 에어비앤비 호스트 가족에게 저녁 초대를 받았다.
우리나라 설날에 가족들이 모여서 떡국, 전 등 명절 음식을 먹는 것처럼 이들도 나팔절에는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그날을 기념하는 음식을 먹는데 마침 자기네 별채에 머물고 있던 손님인 우리도 초대해 준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목사님께서 나팔절에 대해서 설명하시면서 이날 강가에 가면 많은 유대인들이 주머니에 든 것을 버리면서 죄를 털어내는 예식을 하고, 한 해의 순환을 뜻하는 원형의 사과를 달콤한 한 해가 되길 바라는 뜻의 꿀에 찍어 먹는단 얘기를 들어서 도착한 첫날 이들의 초대를 받았을 때 마트에 들러서 초대 선물로 꿀을 샀다.
이미 사과와 사과를 찍어먹을 꿀이 식탁에 올라와 있긴 했지만 현지인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는 특별한 경험을 할 뿐 아니라 의미를 제대로 알고 선물한 꿀이라서 가족들이 선물을 좋아하니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호스트 가족들이 거실에 있는 노래방 기계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몇 년 지나있었음에도 한국인인 우리를 초대했다고 갑자기 이 노래를 찾아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를 생각해서 일부러 한국 노래를 골라준 것도 고마웠는데 중학생 정도되는 호스트의 아들이 한국어를 전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의 가사를 외워서 랩부터 모든 파트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 그냥 부르고 싶어서 부른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유가 뭐가 됐든 같이 신나게 어울릴 수 있었다.
이렇게 갈릴리에서의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다시 다음 도시인 텔아비브로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
이번엔 렌트한 차로 도시를 이동하는 거라서 교통편에 대한 사전 공부도 예약도 필요 없었고, 짐의 무게에 대한 부담이 없어 남은 식재료를 모두 그대로 챙긴 채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서 호스트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