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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소리

내 삶의 계절풍 13

by 정숙



충무로역 어디선가 발진하는 전동차의 괭음이 사라지기도 전 폐수처럼 흘러드는 찬송가 소리, 평생 울궈먹고도 남을 253장이여, 사내는 범람하는 하수관을 따라 용케도 희망을 건져 올린다.


빛, 혹은 소리를 잃은 그 사내는 빛이 소리가 되며 소리가 빛이 되기도 하는 걸까? 바람으로 일어서는 그의 촉각 속으로 세상은 또 얼마나 많은 위선으로 그의 가슴에 쨍그랑! 동그라미를 그리며 꿈을 흥정하고 있을까?


전동차의 긴 통로 끝에는 의례 빛과 소리가 밀려 오지만 그들의 필름은 영사기가 없이도 무시로 상영되었다가 검은 화석의 자막 속으로 흡수되고 만다. 다만 눈 뜬 자들의 무거운 눈꺼풀만이 보색 잔상에 갖혀 지친 일상의 소음 속에 소멸되기 일쑤다.


소리, 그리고 빛을 감지하면서도 우리는 곧 잘 미궁에 빠져 이 거대한 블랙홀에서 허우적 거린다. 뒤엉킨 표지판 앞에서 되돌아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들, 거리마다 혼탁한 기류에 쓸려 절벽을 뛰어 내린 검정구두 한 켤례흥청거리는 불꽃 시위를 따라 둥둥 떠 내려가고 있다. 빛, 소리 그리고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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