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01
약차를 달인다. 대추 생강 도라지 계피 향이 집안에 가득하다.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따끈하게 데우거나 차가운 채로 몇 알의 실백을 띄우면 금상첨화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어 한여름 냉방과 환절기 감기 예방에 좋다.
열이 많고 기관지가 약한 남편을 위해 인삼 대신 주말농장에서 기른 도라지를 함께 넣고 달인다. 약차뿐 아니라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각종 효소나 원액을 직접 내려 유리병에 보관한다. 정성스레 달인 약차를 흘리지 않고 용기에 담으려면 깔때기는 필수요건이다.
허드레 살림살이를 하다 보면 그 쓰임새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재료를 구해 다듬고 쪄서 말리거나 손수 공들여 기른 것들이다. 단 한 방울이라도 허투루 새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거 같아 깔때기에 동질감을 느낀다. 손만 뻗으면 ‘까꿍’하고 딸려 나오는 깔때기가 그래서 고맙고 친근하다.
알뜰하다는 말속에는 이런 깔때기 같은 삶이 내재 되어 있다. 요즘 같은 하이테크 시대에 그 말이 얼마나 촌스러운지도 안다. 고부간의 정도 돈으로 사고 파는 세상이다. 친구 사이에도 이제 알뜰하게 사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지지리 궁상떠는 것으로 치부되고 만다.
장차 시어머니가 될 입장에서도 그렇단다. 깐깐하고 살림 잘하는 며느리보다는 잘나가고 쿨 한 며느리를 더 선호한다니 참 많이 변한 현실이지만 남의 얘기로 들린다. 나의 시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다. 돌이켜보면 그 땐 두 분께 용돈 드리는 것에 참 인색했다.
조촐한 선물 정도가 전부였는데도 예뻐해 주셨던 시부모님이 새삼 고맙고 존경스럽다. 신혼 초기에는 적잖이 시집살이를 예상했다. 맞선을 본 혼사였지만 친정을 사돈으로 맞기엔 가세도 기울고 예단 문제로 시댁 식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였다.
게다가 노처녀에 키 작은 며느릿감을 흔쾌히 맞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몇 번의 흔들림이 있었지만 본인 만의 유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태생이 촌스러워서 그런지 맞벌이를 하면서도 나는 집안일을 온몸으로 때웠다. 육체의 편안함이나 물질보다 마음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쩌다 고향에서 서울로 시부모님이 다니러 오시면 옹색한 신접살림에 융숭한 대접은 못 해 드려도 두 분의 마음을 읽어드리고 알뜰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렸다.
셋방집 좁은 마루에서 며느리가 이불감을 끊어다 손재봉틀로 박음질을 하고 있으니 시아버지가 오도 가도 못하고 마당에서 어정쩡하게 서 계셨다. 그때 도움을 청했다. 의외로 반색하며 처음으로 환히 웃으시는 모습을 보았다.
서툴러서 멋쩍어 하면서도 박음질 속도에 맞추려고 이불 폭을 살살 잡아당기며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 마음의 깔때기를 통해 투명하고 얇은 페트병에는 따뜻한 시부모님의 사랑이 넘치도록 채워졌다.
장남은 아니지만 용돈 드리는 것보다 갑절의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몸으로 부대끼니 서로 마음이 열리는 거 같았다. 끙끙대면서도 손수 해 먹이고 챙겨야 마음이 수월해지니 어찌하겠는가. 그것이 나의 태생적 뿌리인 것을.
초저녁 주방 쪽창 너머로 별(금성)이 반짝이며 나를 반겨 주었다. 며칠 전 일간지에서 읽은 김 할머니에 대한 기사가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6.25 전쟁 때 달랑 이불 한 채 이고 남쪽으로 피난 와서 안 먹고 안 입으며 알뜰살뜰 벌어 모은 100억대의 전 재산을 모 대학에 쾌척했다는 기사다. 잠인들 따습게 잤겠는가. 혈혈 단신이었다니 그 외로움 또한 오죽했겠는가.
기댈 것은 오직 근면과 성실로 무장한 자신뿐이었을 것이다. 황혼을 맞아 그분의 삶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그 값진 삶을 완성 하기 위해 스스로 세상을 향한 삶의 향기에 깔때기를 꽂았기 때문이다. 허투루 세상을 살았다면 그 끝은 분명 어둡고 허망했을 터, 노을이 곱고 아름다운 것은 내일을 상징하는 희망이다.
오늘도 고층 아파트 모퉁이로 석양이 붉게 물든다. 싱크대 선반 모서리에 멀뚱하게 올라앉은 역삼각형의 깔때기, 그 출생은 잊은 지 오래지만 내게 무언가 한 마디 말을 건네려는 듯 주둥이를 삐죽 내밀고 있다. 작고 하찮은 도구이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깔때기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