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고려인 디아 스포라 12
노보시비리스크에서 소나기를 피해 타슈켄트향발 지선을 갈아탔다. 길 잃은 새가 차창에 마빡을 찧듯 빗줄기의 절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잠시 안도의 숨고르기 끝에 지평선 저 멀리 무지개가 떴다. 경계에 놓인 하늘 그 어디쯤 국경이 있을 거란 짐작 뿐, 자꾸만 시베리아로 되돌아가는 착시현상이다.
객실구조가 바뀐 탓일까, 당시 고려인들에겐 잠시 위로가 되었을지도, 밤이 지나고 여명이 밝아올 쯤 국경에 닿을 거란 전언이다. 여권과 출입증을 준비하는 동안 열차는 서서히 멈추었다. 허허벌판에 달랑 슬러브집 한 채, 아침부터 이글거리는 햇살이 이방인을 맞았다. 죽은 듯 널브러진 스텝에서 용변은 물론 한나절동안의 수감자 신세다.
곤고한 기다림의 누수현상이 곳곳에서 아우성칠 때, 그림 같은 출국심사요원 한 쌍이 들이닥쳤다. 술렁이는 기류를 단칼에 날려버릴 듯, 남자의 눈빛레이저가 의외의 반전을 일으켰다.
짧은 심사가 아쉬울 따름, 그간 숨죽였던 시간을 토막 내느라 분주한 입방아들, 곧 카자흐스탄 입국심사가 기다리고 있단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공동묘지가 제일 먼저 달려오는 황망한 땅, 통나무 전봇대가 앙상하게 줄지어 이 땅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지평선 너머로 하루해가 또 붉게 저물고 있다.
(시작 노트) 시베리아를 벗어나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으니 메마른 스텝이 끝 없이 펼쳐졌다. 정차하는 역마다 간식거리를 사고 대원들과 안부 인사도 나누었다. 무엇보다 일정의 끝무렵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가 내려다 보이는 3,200m 고지(케이블카) 천산 산맥 투어가 빡빡한 일정에 숨통을 틔어 주었다.
노보시비리스크 발 ㅡ>카자흐스탄. 쌍무지개가 떠서 환호성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