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고려인 디아스포라 14
여드레를 달려온 열차가 서서히 플랫폼에 멈춰 섰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하바롭스크 카림스카야 울란우데 이르쿠츠크의 바이칼호수를 지나 노보시비리스크에서 시베리아의 울창한 자작나무 숲과 강물과 늪지대를 놓아버리고, 메마른 땅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 노선을 갈아타고 국경선을 넘었다. 여드레가 한 달 같았다. 귀를 찢는 카자흐스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경비병들의 호루라기 소리와 공포탄을 쏘며 군홧발로 갈기던 폭거대신 놀이패의 풍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을 부둥켜안고 환희의 찬가와 사탕세례를 흩뿌리며 뜨거운 심장에 꽃다발을 안겼다. 새벽 한시 삼십오 분의 일이다.
희미한 불빛에 어른거리는 그녀의 실루엣 “가로등 불빛이 아련한 포시에트항구에서 처음 그를 만나 사랑을 싹틔운 어부의 딸 예카테리나, 사범학교 재학생인 빅토르와 함께 강제이주열차에 올랐던, 열여덟 처녀가 평생 그 아픈 세월을 견디고 여든 여덟의 여름, 못다 이룬 그녀의 애틋한 사랑이 잠든 바슈토베 공동묘지에서 가져온, 한줌 흙을 품에 안고 고향 연해주로 돌아가기 위해 내려선 플랫폼, 칠십년 전 그녀가 바라보았던 붉은 맨드라미와 장다리꽃, 해바라기를 타고 올라간 나팔꽃들이* 어둠에 묻혀 환영으로 어른거린다. 왠지 불길한 예감, 그녀의 최후가 심상치 않다.
*김윤배 시인의 장시집 ‘시베리아 침묵’에서 줄거리 인용.
(시작노트) 여행 일정이 잡히면 스텁진이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서적들을 추천하기도 하고 스스로 탐구하기도한다. 김윤배 시인의 장시집 "시베리아의 침묵"을 읽는 순간부터 나는 역동적인 서사적 영화 한 편, 거대한 스케일의 오페라 무대를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오페라 대본도 써 보고 영화 시나라오도 꿈 꿔보고 한 동안 오래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까 불가능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우슈토베역만큼은 지나칠수가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슈토베역 프렛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서 있을 그녀를 만나는 심정으로 말이다. 질풍노도의 삶을 완성하고 고향으로 떠나는 88세 그녀의 심경은 어때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녀만큼만 살다 갔으면 좋겠다고, 아니 그녀만큼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을 완성시키고 싶다고, 끝내 그녀는 고향 연해주를 불과 얼마 남기지 않고 힝단 열차 안에서 숨을 거둔다. 빅토르의 유골을 품에 꼭 안은 채.
우슈토베 고려인 학교를 둘러보는"세계 한민족 포럼" 이창주 이사장님과 28년간 카자흐스탄에서 기자와 작가교육자로 활동하며 고려인 역사 유물 14,000 여점을 발굴하고 수집하여 고려마을에 기증함으로 고려인 역사 박물관을 설립하게 되였다. 박물관 해설 및 관장님으로 추대 되신 김병학 선생님이 "고려인 학교" 재직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우슈토베 환영 만찬회와 축하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