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D-7,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4#27

by 끼미


자이에서 타이베이로 돌아온 저녁, 타이베이역 앞 골목에서 거의 울 뻔했다.


‘역시 이거야. 너무 맛있잖아...’


깨찰빵처럼 쫀득한 식감에 고구마와 매실가루의 환상적인 단짠 조합을 자랑하는 나의 최애 대만 간식, 띠과치어우(地瓜求, 고구마볼). 타이베이를 떠나 있었던 한 달 동안 이게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숙소에 짐 풀자마자 달려왔다.


고구마볼의 감동적인 맛을 음미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대만의 명동이라는 시먼딩(西門町)이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거리에 들어서자 옛날 생각이 났다. 코로나가 한창이었을 땐 이 거리도 유령 도시 같았는데. 그것도 벌써 일 년 전의 일이었다.


세월 참 빠르다고 생각하며 나에게 남은 시간을 떠올렸다.


D-7.

이제 딱 일주일 남았다. 나의 대만 워홀.


대만에서의 마지막 고구마볼과 시먼딩


대만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은 혼돈 속에서 흘러갔다. 가장 큰 혼돈은 출국까지 며칠 안 남기고 받은, 해당 항공편이 하루 앞당겨졌다는 메일이었다. 이미 남은 기간의 숙소 예약을 다 마친 상태라 취소 수수료 물 생각에 피눈물이 났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공항 도착했더니 비행기가 이미 한국 가고 없는 것보단 나았다.


코로나 검사도 대혼돈의 잔치였다. 한국처럼 그냥 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미리 예약을 해야 되고, 검사 당일엔 무슨 기계로 셀프 접수해야 되고... 중국어는 잘 못 해도 직원분에게 물어볼 용기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코로나 검사 못 받아서 한국 못 갈 뻔했다. 결과지 받으러 가던 날도 엉망이었다. 병원 앞에서 넘어져서 무릎이 또 까졌던 거다. 지난번에 가오슝에서 자전거 타다 엎어졌을 때처럼. 정말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처리해야 할 돈 문제도 있었다. 두 번째 쉐어하우스에서 방 뺄 때 덜 돌려받은 보증금이 있었다. 한화로 약 4만 원 정도의 적지 않은 금액이었는데, 관리인한테 아무리 연락해도 답이 없어서 결국 찾아갔다. 옆방 할머니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던 그 쉐어하우스로.


내 사정을 들은 할머니는 곧장 관리인에게 전화해 롱롱한테 빨리 보증금 돌려주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땐 이런 할머니랑 같이 있기 싫어서 맨날 집 밖으로 뛰쳐나갔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뭐가 그렇게까지 싫었던 건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별일 아니었던 건지.


고작(은 아니지만) 4만 원 때문에 거길 또 가야 하나 싶었지만 역시나 잘한 선택이었다. 나머지 보증금도 무사히 돌려받았고, 인상 찌푸리며 끝냈던 할머니와의 마지막을 어색한 미소로나마 다시 덮어쓸 수 있었으니,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좌) 보증금 받으러 다시 간 두 번째 쉐하 / (우) 멘붕이었던 코로나 검사 접수


점점 줄어드는 대만에서의 시간. 아쉬움을 달래는 데는 맛있는 음식이 최고였다. 한 번은 비싸서 벼르고만 있었던 우유 훠궈를 먹으러 갔다. 평소 먹던 훠궈의 딱 두 배 가격이었는데(그래봤자 한화 2만 원 정도였다), 확실히 더 맛있었다. 그래서 슬펐다. 그놈의 돈 걱정하느라 이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살았다니. 때로는 돈보다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몰랐던 지난날이 후회됐다.


그래도 가장 맛있는 건 역시 추억의 맛이었다. 타이베이역 앞의 홍콩식 삼겹살 덮밥, 공관(公館)역 인근의 지파이 삐엔땅(鷄排 便當, 치킨 도시락), 팔방운집의 김치 군만두... 타지 생활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던 소울 푸드들은 마지막까지 내 영혼을 든든하게 채워줬다.


이제 번역 어플이 없어도 자신 있게 주문할 수 있는데 이게 마지막이라니. 줄어드는 음식이 아까워 한 입 한 입 천천히 먹었다. 한국 가면 무척이나 그리울, 내가 찾아낸 대만 최고의 맛들을.


돈 아끼느라 못 사먹었던 비싼 우유 훠궈 영접한 날
저렴하지만 맛있었던 나의 소울 푸드들 (삼겹살 덮밥, 지파이 삐엔땅)


아쉬움으로 가득한 마지막 일주일에는 시작의 설렘도 함께 했다. 바로 펑리수(鳳梨酥) 만들기 체험. 이 체험은 워홀 초반부터 버킷 리스트에 있었는데, 그 사이에 다음 진로를 제과제빵으로 결정하고 나니 펑리수 만들러 가는 길이 더욱 설레었다.


신청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덕분에 선생님과 편안하게 중국어로 담소 나누며 펑리수를 만들었다. 과정은 간단했다. 반죽 안에 파인애플 잼 넣고 잘 싸매준 다음 네모난 틀에 넣어 꾹꾹 눌러주면 끝.


간단하지만 생각보다 예쁘게 만들기가 어려웠다. 잼은 자꾸 튀어나오고 표면도 울퉁불퉁 제멋대로였다. 이 쉬운 것도 제대로 못 하는 똥손이 과연 빵집에 취직할 수 있을지, 설렜던 마음이 금세 불안해졌다.


이런 마음을 펑리수 신이 듣고 계셨던 걸까? 펑리수가 구워지는 동안 대만 전통문화 전시실 구경하다가 점괘 뽑기를 했는데, 결과 종이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늘의 뜻을 알고, 조급해 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자신의 때가 다가오기를 여유롭게 기다려야 합니다.’


서른 개나 되는 점괘 중에서 하필 이게 나오다니, 뭔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며 점괘 종이를 지갑 안에 조심히 집어 넣었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제빵왕 도전기에 펑리수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라며.




틈틈이 기념품도 구입하고 단수이에서 노을도 보다 보니 대만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이 흘러갔다.

이제 남은 할 일은 단 하나.

대만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이었다.


(좌) 처음 만들어본 펑리수 / (우) 펑리수 신이 내려준 점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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