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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Sep 23. 2024

쇼 타이베이 탈출 : 훠궈와 바다 찾아 삼만리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18

눈물 젖은 훠궈


“아, 미쳤다.” 


테이블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훠궈 냄비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 상추 같지만 상추 안 같은 잎채소와 얇게 썰어진 선홍빛 고기들, 내 콧속에 가득 채운 마라 냄새. 내가 지금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니, 이게 꿈은 아니겠지?


2021년 7월 30일. 이날은 평생 기억해야 한다. 대만에 입국한 지 두 달 하고도 28일 만에 식당에서 첫 외식을 한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통제 가능한 정도로 감소하자 대만 정부가 드디어 식당 내부 취식을 허용하는 아량을 베풀었다. 단, 내가 지내는 타이베이와 그 옆에 있는 신베이, 이른바 쌍베이 지역은 제외였는데, 수도권인 만큼 인구 밀도가 높아 감염 우려가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타이베이를 탈출해 지롱(基隆)이라는 도시로 왔다. 타이베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이 도시에 순전히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무려 '시외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타이베이도 며칠만 기다리면 식당 내부 취식 금지가 풀릴 듯했지만 길어진 코로나 사태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지롱은 타이베이에서 제일 가까운 취식 가능한 도시이자 사랑하는 바다가 있는 도시이기에 안 올 이유가 없었다.


먼 길을 달려와 드디어 만난 훠궈는 심지어 무한리필(吃到飽)이었다! 훠궈는 기대한 것만큼 맛있었지만, 솔직히 맛은 중요치 않았다. 지금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코로나 때문에 아쉽게도 셀프바가 아니라 직원분이 재료를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니, 그래서 좋았다. 중국어를 한 마디라도 더 말할 수 있었으니까. 


비록 메뉴판에 무슨 조개니 어떤 상추니 하는 알 수 없는 중국어가 가득해서 주문할 때마다 파파고를 돌리느라 좀 귀찮았지만 그래도 모든 게 재밌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브이로그를 열심히 찍었었기에 밥 먹으랴 카메라로 찍으랴 우당탕 하는 것도 그저 즐거웠다. 멋 내려고 입은 꽉 끼는 원피스의 지퍼를 내려가며 2시간 동안 고기 7판을 먹었다. 나의 한풀이 의식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살아있길 잘했다


말도 안 되는 풍경이었다.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바다와 이어진 수영장. 수영장?!! 두 눈 비비고 다시 봐도 정말 수영장이었다. 분명 수영장에서 많이 봤던 쇠로 된 그 손잡이가 바다 속에 있었다.


배 터지게 훠궈를 먹고 허핑따오(허평도, 和平島) 공원에 왔다. 이왕 지롱까지 왔는데 밥만 먹고 돌아가기 아쉬워 바다도 볼 겸 왔다. 마음 같아서는 이 쪄 죽을 것 같은 더위를 피해 당장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수영장을 이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깊은 물과 끝없는 수평선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만에 온 이후로 쌓여 있던 답답함이 싹 사라졌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셀카봉을 꺼내 혼자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디선가 직원 아주머니가 나타나셨다.


“사진 찍어줄게요(我幫你拍).”


갑자기 훅 들어오는 중국어에 놀랐지만, 먼저 찍어주시겠다고 하니 사양할 수 없지! 폰을 넘겨드리고 쑥스럽게 포즈를 취하는데 아주머니께서 야외니까 마스크 내려도 괜찮다고 하셨다. 아주머니의 말에 용기를 내서 마스크를 벗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웃어보았다. 아주머니께서 이쁘다고 칭찬해 주시며 열심히 찍어주셨다. 역시 대만 사람들은 친절하다.



아주머니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산책로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더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수업 시간에 보았던, 아니 그보다 아름다운 해안 지형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두부 모양의 파식대*와 초코송이와 코끼리 모양의 암석들. 생전 처음 보는 지형들이었다. 하나 같이 다 다르게 생긴 지형들에서 오랜 세월의 힘과 파도의 힘이 느껴졌다. 이런 곳인지 모르고 왔기에 더 감동적이었다. 88일 동안 대만에서 버틴 나를 위한 선물일까?


*파식대: 파도가 깎아 만든 평평한 바위 지형


아름답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풍경을 보니 한국에 두고 떠나온 것들이 생각났다. 나의 지형, 나의 지리, 그리고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 이런 지형을 보고 이렇게 감동받는 건 내가 지리를 좋아해서일까 아니면 누구나 이런 느낌을 받을까? 지리 교사로 살고 싶지 않아서 이곳에 왔는데 나는 왜 '한국 가면 애들한테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걸까? 가까운 대만에만 와도 이런데, 이 지구상에는 경이로운 장소가 얼마나 많을까?


살아있길 잘했다. 대만에 오지 않았더라면, 지쳐서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이런 곳이 있는 지도 몰랐겠지.

그리고 살아야겠다. 이 멋진 세상을 다 못 보고 죽으면 억울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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