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19
훠궈를 먹기 위해 식당 내부 취식이 되는 지룽에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드디어 타이베이에서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2021년 8월 3일, 대만에 입국한 지 3달만이었다. 뉴스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J에게 카톡을 보냈다. 하메의 소개로 알게 된 한국인 동생 J였다.
J는 내 옆방에 살았던 하메의 대학교 동창으로, 대만에 와서 둘다 코시국에 대만으로 워홀을 온 같은 처지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잘 웃고 착한 명랑함을 지닌 J는 도망치듯 한국을 떠난 나와는 대만에 온 동기도 성격도 달랐지만, 코로나 시국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대구에 산다는 공통점으로 빠르게 가까워졌다(물론 J는 대구의 중심가, 나는 최변두리에 살았지만 어쨌든 둘다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게 중요하다).
대망의 첫 외식 메뉴를 어떤 걸로 할까 고민하다가 J도 나도 둘다 좋아하는 우육면(牛肉麵)을 먹으러 갔다. 포장해와서 먹으면 그 맛이 안 나 그동안 먹지 못했던 바로 그 우육면. 이왕이면 아주 맛있는 우육면을 먹자며 동먼(東門)역 근처의 '융캉 우육면'으로 달려갔다. 식당 안에는 우리처럼 이 날을 기다려온 대만 사람들로 가득 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대만 사람들 사이에서 밥 먹기'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두툼한 도삭면의 쫀득한 맛과 부드러운 소고기, 무의 달큰함을 머금은 육수는 대만에서 먹어본 우육면 중에서도 가히 최고의 맛이었다.
사실 우육면의 맛보다 더 좋았던 건 이 감동적인 순간을 J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J와 나 사이에 놓인 투명한 플라스틱 가림막이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긴 했지만 그것조차도 재밌었다. 마치 시트콤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 나는 단순한 우육면이 아닌 이 우육면을 한입 한입 먹을 때마다 그야말로 호들갑을 떨었는데(예를 들면 "헐, 무슨 무가 이렇게 맛있어?!"), 나처럼 F 성향이 강하지만 나보다 훨씬 착한 J는 나의 오버 액션을 맞장구로 다 받아주었다. J의 반응이 곁들여지니 우육면의 감칠맛이 배가 되었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행위가 '밥'만 같이 먹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어학당 수업이 시작되는 9월 전까지 근 한 달 동안 나와 J는 틈만 나면 만났다. 첫 망고 빙수를 J와 함께 나눠먹었고 대만 빙수인 빠오삥(刨冰)을 첫 영접하는 순간에도 J와 함께였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대부분 J가 먼저 연락을 해준 덕분이었다. 상대가 바쁘거나 귀찮아할까봐, 내가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먼저 연락을 잘하지 못하는 나에게 살가운 J는 먼저 "뭐하고 있어요?"라는 카톡을 보내주었다. 뭐 먹으러 가고 싶은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반가운 제안과 함께. 그런 J와 함께 대만에서의 본격적인 워킹 홀리데이가 드디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