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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Sep 30. 2024

레벨 테스트에 왜 이렇게 진심인 건데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20

대만 워홀의 목적 중 하나는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4박 5일의 단기 여행으로 올 때는 중국어를 하나도 못 해도 전혀 상관없었지만, 1년이나 살아야 하는 워홀은 중국어를 모르면 생존하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사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31살이나 먹었으면서 하던 일(도 없지만) 다 내팽개치고 대만으로 도망가는 만큼 여기 와서 중국어를 배우는 척이라도 해야 그나마 양심에 덜 찔릴 것 같았다. 특히 부모님 앞에서.


이런 이유로 잘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대만 사범대 언어중심에 등록을 했다. 언어중심(語言中心)이란 대만의 주요 언어인 중국어를 교육하는 센터(대만에서는 고객 센터나 문화 센터 등의 서비스 제공 기관을 ‘ㅇㅇ중심’으로 지칭한다)로, 우리나라 대학교들의 한국어학당처럼 대만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주는 곳이다. 계획대로라면 대만 입국 후 곧바로 6월부터 수업을 들을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수업으로 변경됨에 따라 9월부터 시작하는 가을 학기로 연기를 해둔 상태였다. 


8월에 접어들어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자 가을 학기 수업의 오프라인 진행이 확정되면서 8월 말에 반 배정을 위한 레벨 테스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레벨 테스트는 중국어를 어느 정도로 구사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그저 지금의 수준을 보여주면 되는, 말 그대로 ‘테스트’였다. 이미 레벨 테스트를 한 번 치르긴 했었다. 6월 학기가 온라인으로 바뀌기 전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을 때 온라인으로 듣기와 읽기 시험을 치렀었다. 그때도 긴장되긴 했지만 이번 레벨 테스트는 그보다 수십 배는 더 걱정됐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실제로 언어중심에서 수업하시는 대만인 선생님과 '면접(面試)'으로! 선생님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아니 질문조차 못 알아듣고 'ㅇ_ㅇ..?' 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을 내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장면보다는 "혼자 공부했는데 이렇게 잘한다고?"라는 칭찬을 듣는 장면이 펼쳐졌으면 했다. 그렇다, 고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레벨 테스트에 진심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죽기 전 마지막 도전인 만큼 더욱 진심을 다한, 그 와중에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혼자 중국어를 공부했던 나의 지난 노력들을 누구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3달에 112만 원이라는 비싼 학비를 낸 만큼 기왕이면 더 높은 레벨의 반에 들어가서 더 많이 배우고 싶기도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조차 자신감 있게 말하지 못하는 이 답답함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려면.



코로나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누릴 틈도 없이 레벨 테스트 전날까지 계속 공부했다.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혼자서도 동생 J와 둘이서도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같은 언어중심에 다닐 예정인 J 역시 레벨 테스트를 치러야 했기에 같이 카공을 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공부하다가 한국어로 수다를 떨 수 있는, 공부하고 나서 같이 밥 먹으러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다. 더욱이 나나 J나 중국어를 배운 얼마 되지 않아서 중국어 초심자의 어려움을 같이 토로하며 중국어 공부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J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약 보름간의 레벨 테스트 대비 벼락치기 공부를 마친 2021년 8월 24일, 드디어 레벨 테스트의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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