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아 주세요
결혼 전, 학창 시절에는 막연하게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이는 네 명을 낳고 싶었다.
딸 두 명 아들 두 명 내가 바라던 아이들의 성별은 골고루.
첫째를 낳고 나서 둘째의 생각이 쉽사리 들지 않았다.
막상 낳아 키우다 보니 친정엄마가 늘 나에게 했던 말이 뇌리에 스쳤다.
“네 명은 무슨 하나 나 낳아보고 말해.” “하나도 키우기 힘들다고 난리 칠걸.” 그땐 그 말이 되게 야속하게 들렸다.
대체 딸을 뭐라고 생각하기에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었다.
정말로 하나를 낳아 키우다 보니 엄마가 나에게 했던 그 말이 생각이 나면서 둘째는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신랑의 시그널조차도 너무 질겁하듯 싫었고, 덜컥 둘째라도 생길까 싶어서 걱정 가득한 날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둘째 임신을 확인했다.
둘째라서 한번 임신출산을 해봤다는 그 생각에 너무 긴장감이 없었던 게 문제였을까?
아직 병원 한번 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하혈을 하기 시작하면서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동네 산부인과를 급히 갔는데 아기집은 보이긴 하지만 극초기고 일단 하혈하는 양을 봐서는 마음의 준비도 어느 정도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피검사를 하고 나왔다.
그 이후로도 피는 멈추지 않았고 내 눈물도 멈출 줄 모르고 흘렀던 것 같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다시 떠올려도 가슴 한구석이 저릿저릿한 느낌은 여전하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둘째를 그때 처음 이별을 했다.
그로부터 또 두세 달이 지나서 또다시 둘째가 될 아이가 찾아왔다
너무도 선명한 두 줄을 보며.
이번에는 당연히 잘 품어서 낳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의 인연이 아니었던 건지 아기집을 확인하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서 다음번 검진까지 크기가 2배 이상 커지지 않으면 이별을 또 준비하라는 말을 듣고 왔다.
아니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자꾸만 일어나는 건가 싶어서 하늘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둘째 생각도 없는 나에게 둘째를 마음대로 보내고 마음대로 데려가는 게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봤지만 또 미친 듯이 하혈을 하며 또다시 유산을 겪어냈다.
연달아 두 번 그렇게 일이 있고 나니 내 삶 전체가 송두리째 날아가버리는 느낌이었다.
주변에 말하기도 힘들고, 워킹맘으로 일도 해야 하는데 내 정신건강은 제대로 챙기지도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또 3개월 정도가 지나서 또다시 아이가 찾아왔다. 이제는 그런 마음이었다. 둘째를 내가 원한다고 혹은 원하지 않는다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는 걸 깨닫고 나니 그저 생기는 아이를 건강히 잘 출산하는 것 또한 복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것 같았다.
세 번째는 유산하면 안 되니 더 각별하게 신경 썼다. 병원도 유난스럽다 싶을 정도로 많이 가고 그렇게 지키고 지켜내서 건강하게 잘 출산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내 옆에서 코를 골며 잘 자고 있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다.
둘째를 출산하고 나서 우리 식구는 네 식구가 되어 완전체 느낌이 강해졌다. 무얼 하더라도 즐겁고 뭔가 꽉 채워진 느낌이었다. 딸 아들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아들 둘 형제맘이 되었었다.
그렇게 또 네 식구가 단란하게 잘 지내던 와중에 만우절날 거짓말 같이 셋째 임신을 알게 된다.
곧 신랑과의 주말 부부가 시작되는 시점에 나의 임신 소식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두 아이 독박육아도 모자라 임신까지 나는 어떻게 이걸 버텨 낼 수 있을까 하고 수 없이 고민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의 유산을 겪으면서 한 생명도 그냥 떠나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분명 우리 가정에 무슨 계획이 있고 뜻이 있으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나는 용기를 내 ‘다둥이맘’이 되기로 선택을 했다.
지금은 세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잘 키우고 있다.
한 명 한 명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아이들이 세명이나 생겼다.
떠나보낸 아이들도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지금 우리 다섯 식구는 다섯 명이서 적응하며 하루하루 좌충우돌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지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세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내기 사실 쉽지 않지만 또 그만큼 말로다 형용하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간절한 존재들이기에 그 존재들을 나는 세명이나 허락되어 이렇게 곁에 두고 낳아 키우고 있다는 게 어쩌면 축복이지 않을까 싶다.
선택도 내가 한 거고 책임도 내가 지는 건데, 불쌍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기보다는 응원하고 지지하는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너지지 않아야 하고 단단해져야만 이는 이유들을 만들어주는 존재들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걱정과 불쌍함은 넣어두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