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줄게! 열 번 해줄게!
나는 전업주부였다! 세 아이들과 하루 종일 놀아 주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다. 세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평소 이런 것들을 만들며 놀았다.
1. 코팅하기~
2004년생 첫째는 라이트닝 맥퀸을 좋아했다. 맥퀸에 등장하는 친구들이 참 많다. 좋아하는 캐릭터의 밑그림을 출력해 주면 색칠하고 오려서 두꺼운 박스종이에 붙이고 투명 테이프로 코팅(?)한다. 코스트코에서 투명 테이프를 대량(8개)으로 샀는데, 이 놀이로 거의 다 소진했을 것이다. A4용지와 색연필, 크레용만 있으면 된다. 참 잘 놀았다. 미니 자동차들도 있지만 이것은 꽤 큰 사이즈라 손으로 잡고 놀기에 좋았다.
"부릉부릉~ 라이트닝 맥퀸~"
이렇게 만든 친구들로 삼 형제가 역할극을 하며 논다. 어릴 때 우리가 종이인형놀이를 했던 것과 비슷하다.
2. 바느질하기
한국에서 또봇이 유행할 때 막내는 또봇과 연락하는 와치를 갖고 싶어 했다. 가끔 보는 한국 방송에서 또봇만 나오면 막내가 시무룩해졌다.
"와치? 내가 만들어 줄게!"
나는 펠트지로 기어이 만들어 주었다. 내 사전에 안 되는 것은 없었다. 막내는 시도 때도 없이 내가 만들어준 와치에 대고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린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때는 아이들 키우는 맛이 아주 쏠쏠했다.
핼러윈 때는 아이들의 코스튬도 직접 만들어 입혔다. The Very Hungry Caterpillar(배고픈 애벌레), Wild Kratts의 의상, The Cat in the Hat의 모자와 리본, The Wolf의 늑대 발과 꼬리, 꽃, 피터팬 의상 등.....
내가 어릴 때, 학교에서 준비해 오라는 준비물을 만들어 가면 뭔가 허접하고 허술하다는 느낌(?),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창피했다. 살 수 없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에 속상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직접 만든 것이 당연하고(학교 앞 가게도 없고 만들어진 준비물 같은 것은 없다) 정성과 개성이 들어가 더 높이 쳐 주는 것 같았다. 직접 만든 케이크나 쿠키, 포트 락 파티에 들고 갈 음식과 선물, 아이들이 입을 옷까지도.
학년 말에 한 담임 선생님은 몽당 크레용들을 녹여 50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도톰한 새로운 그레용을 만들어 선물해 주었다. 동그란 크레용 하나에서 여러 가지 색이 그러데이션 되며 그려지는 신기한 크레용이다. 감동이었다. 이런 걸 집에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감사했으며 아까워서 잘 쓰지 못했다.
3. 간식 만들기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밥과 밥 사이 간식도 먹여야 큰다. 어린아이들은 놀고먹고 싸고 읽고 생각하고 말하면서 자란다. 나는 떡볶이, 호떡, 바나나 빵, 핫도그, 샌드위치, 과일이나 팥 아이스크림, 튀김, 찹쌀 도넛 등..... 정말 계속 만들었다.
밥은 매일 반복이다. 나도 질리거나 지치지 않게 내가 먹고 싶은 것, 남편이 먹고 싶다는 것, 아이들이 원하는 것 등 다양한 메뉴들을 찾아 만들려고 노력했다. 당기는 한국의 간식들이 그곳에는 없었기에 만들어야 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빈접시를 내밀 때 나는 행복했고 뿌듯함으로 벅찼다. 매일 먹어줄 아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 그때가 참 행복했다. 지금은 대학생, 고등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 얼굴 보기가 힘들다.
“엄마, 방과 후에 아트 클래스(미술수업) 한대. 나 이거하고 싶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큰아이가 흥분해서 분홍색 안내장을 내밀었다.
“아트 클래스? 어디 보자.”(수업료가 얼만 데?)
65달러(?) 여덟 번의 수업을 해준단다.
‘그 돈이면 마트에서 일주일 장을 볼 수 있는 돈인데? 방과 후 수업이면 내가 데리러 가야 하는데? 초등 미술수업은 (미술기법을 배운다기보다) 만들거나 그리고 노는 거 아닌가?’
그때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25달러, 피아노 레슨도 버거워 받지 못할 때였다. 게다가 나는 무조건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꽂혀 있었기 때문에 아이 마음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쓰였다.
“아트 클래스, 엄마가 해줄게! 나는 열 번 해줄게!”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 ‘하나, 둘, 셋. 종이접기 김영만 아저씨’를 따라 몇 년 동안 다져진 만들기 솜씨로 나의 아트 클래스를 직접 열어 보기로 했던 거다. 인터넷을 뒤져 비싸지 않은 재료로 재활용이면 더 좋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평소 번거로워서 아이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들을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엄마표 아트 클래스가 시작되었다.
엄마표 아트 클래스!
1. 모자이크 콩 그림 그리기
윅(WIC)으로 받은 콩이 많았다. 밥에 넣어 먹고 팥밥이나 팥칼국수를 만들어 먹어도 남았다. 그래서 다양한 색깔의 콩을 이용해 모자이크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뭐든 다 괜찮아~"
여러 가지 색깔의 콩을 이용해 무엇을 그릴 것인지 생각하고 궁리하는 것! 그 자체가 공부고 배움이었다. 나는 그저 가이드에 불과했다.
2. 동물 저금통 만들기
음료수를 먹고 난 빈 통으로 저금통을 만들었다. 빈 플라스틱 통과 아크릴 물감, 약간의 색지, 동물 눈, 만들기 스틱만 있으면 된다. 뭐든 다 만들어도 괜찮다고 했더니, 아이들의 눈동자가 길을 잃고 갈팡질팡 했다. 그래서 단서를 붙여 범위를 좁혀주었다.
"좋아하는 동물을 만들어보자~"
우리 아이들은 동물을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다 만들 수는 없다. 무슨 동물을 만들 것인지 각자 선택을 해야 한다.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하고 눈과 다리를 붙이니 치타, 청둥오리, 퓨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등에 구멍을 뚫어 동전을 모으는 걸 알려 주었다. 주둥이 뚜껑으로 동전을 뺄 수 있게 했다.
1센트 Penny(페니), 5센트 Nikel(니클), 10센트 Dime(다임), 25센트 Quarter(쿼터). 동전마다 이름이 다르다는 것도 설명해 주었다.
3. 찰흙 놀이
우리 아이들은 사람보다 동물을 좋아했다. 자연사 박물관과 아쿠아리움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물고기와 곤충, 거미, 새, 공룡 등을 특히 좋아했다. TV에서 방영하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도 대부분 동물들이 나왔다.
부드러운 흙을 조물락조물락 거리며 막내는 음영판을 이용해 찍었고 둘째는 청새치를 만들었다. 역시 첫째는 3차원으로 공룡을 일으켜 세워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연령에 따라 다양한 것들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4. 밀가루 풀 그림 그리기
밀가루 풀을 쑤었다. 원하는 색 물감을 떨어뜨리고 맘껏 치대고 질퍽질퍽, 쫀득쫀득 촉감으로 느끼게 했다. 바닥에 비닐을 깔고 허름한 옷을 입혀 묻혀도 괜찮다 했다. 쭉쭉 바닥에 펴 바르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 역시나 동물이다. 우주 로켓도 나온다. 지우고 다시 그려도 되고 뭉쳐도 되고 부드러운 밀가루 풀을 한껏 느껴보았을 것이다.
갯벌의 머드도 밀가루 풀도 만져도 된다. 손이 더러워져도 괜찮고 물로 깨끗이 씻으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경험을 주고 싶었다. 얼굴이나 옷에 뭐가 조금 묻었다고 매번 닦아주고 바로 옷 갈아입히고 너무 깔끔하게 굴면 엄마가 힘들어진다. 이런 경험이 없으면 아이들은 작은 뭐 하나가 묻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당장 닦으라고 떼를 쓰거나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고 놀이는 중단되고 만다. 어쨌든 촉감놀이는 정서에 아주 좋다.
5. 클레이로 니모 캐릭터 만들기
'Finding NEMO(니모를 찾아서)'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DVD 중 하나였다. 하도 많이 봐서 화질이 튀거나 지지직거릴 정도였다. 막내는 영화를 보며 대사를 읊어 댔다.
다양한 색깔의 클레이를 주고 나는 주문만 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봐!"
아이들은 Sting Ray(가오리)와 니모, 도리를 만들었다. 영화 속 캐릭터를 떠올리며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영화를 틀어 놓고 움직이는 화면을 보며 만들어도 좋고 봤던 영화를 떠올리며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보고 기억하고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6. 색종이 찢어 붙이기
밑그림을 그리고 색종이 찢어 붙이기를 했다. 첫째는 혼자 그리고 둘째, 셋째는 원하는 밑그림을 출력해 주었다. 막내는 색종이를 찢어 붙이다 결국 그냥 색칠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괜찮다. 맘껏 종이를 찢고 놀았으면 족하다. 끝까지 완성했으니 됐다.
첫째와 막내는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깊이 파고든다. 그 이름을 줄줄 외우고 다녔다. 나비, 새, 물고기 등등. 첫째는 특히 나비를 좋아했다. 나비 이름을 수도 없이 댈 수 있고 날아가는 나비를 한번 보고 알았다.. 막내는 새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는 새 이름을 일기에 적어보니 200개 정도 되었다. 둘이 만나면 나비 이름 대기, 새 이름대기 대결이 종종 펼쳐졌다.
지금도 첫째와 막내는 TV에서든 지나가다 보는 나비와 새의 이름을 알아맞춘다. 그리고 첫째는 그 대상이 자동차로 바뀌었다. 좋아하는 차는 시리즈별로 핸들이며 깜빡이, 기어, 브레이크 등의 모양까지 구별해 낸다. 기가 막히다.
어릴 때, 포켓몬도 그랬다. 아들 셋은 포켓몬 캐릭터들의 이름이며 특징, 변신 전후까지 외우고 다녔다. 비슷비슷한 캐릭터들을 외우려면 각각의 특징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 좋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억지로 시켜도 불가능하다.
7. 스크래치 그림 그리기
우리 국민학교 때 한번쯤 했던 거다. 스케치북에 알록달록 다양한 색을 구역별로 칠하고 그 위에 검은색으로 꼼꼼히 덮어 칠한다. 그리고 클립이나 뾰족한 나무젓가락, 꼬치 등으로 긁어내면서 그림을 그리는 거다. 크레용 가루가 뚝뚝 떨어져 난리가 나지만 손에 묻혀도 괜찮고 얼굴에 묻어도 괜찮다. 그 시간만큼은 다 괜찮다.
카펫 위라 치우려면 더 번거롭지만, 이런 걸 해 주겠다고 엄마표 아트 클래스를 열었던 거다.
8. 밀가루 반죽으로 음식 만들기
밀가루에 물만 넣고 반죽한다. 각자 원하는 색깔의 물감을 떨어뜨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세 가지 색깔의 반죽을 만든다. 이제 그 반죽들을 섞어가며 주황색, 초록색, 보라색, 검은색들을 만들어 본다. 쿠키도 만들고 만두도 만들고 김밥도 만들고 역시 노는 것이다.
빨강과 노랑이 섞이면 주황색이 되고 파랑과 노랑이 섞이면 초록색이 되며 빨강과 파랑이 섞이면 보라색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간다. 남색과 고동색, 검은색은 어떻게 만들까? 의문이 생기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것이다.
9. 크레용으로 그리고 물감으로 색칠하기
"크레용과 물감은 서로 섞이지 않아."
크레용으로 바닷속이나 해변, 동물원 등 그리고 싶은 풍경, 장면을 그리라고 했다. 넓은 바탕색은 물감으로 채운다. 물과 기름으로 경계를 알게 했다. 섞이지 않는 것들. 서로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았을까.
10. Tie Dye(홀치기염색)
우리 동네 그린벨트는 타이다이(홀치기염색)가 유명한 곳이라고 뒤늦게 알았다. 귀국을 앞두고 그린벨트에서 5년을 살았던 걸 기념하기 위해서 타이다이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JO-ANN(조안)에서 식구 수대로 무지 티셔츠와 타이타이 키트를 샀다. 만들고 싶은 모양이나 스타일 대로 티셔츠를 끈으로 꽁꽁 묶었다.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원하는 염색 물감을 원하는 방식으로 묻혀 타이타이 티셔츠를 완성했다.
JO-ANN이라는 원재료 마트가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원단, 털실, 아이스크림 스틱, 동물 눈, 글루건, 색지, 골판지, 크리스마스 장식 등.... 온갖 DIY 재료들이 넘쳐난다. 마트 형태로 가까이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곳을 아주 좋아했다. 한 번씩 가면 뭐든 만들 수 있고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에 젖곤 했다.
아트 클래스가 아니어도 우린 늘 이렇게 놀았다. 쓰고 만들고 그리면서. 자르고 붙이고 찍고 찢고 누르고 문지르고 만지고 느끼면서. 아이들과 교감했다.
*JO-ANN Stores : 직물, 예술풀, 공예품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전문 소매 체인으로 오하이오주 허드슨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미국 49개 주에서 8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