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맞이한 당신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그렇듯 편지를 씁니다. 당신을 마주한 날부터 만난 시점의 운이 좋아서라고 해야 하는 지, 곧 해가 바뀌어 당신을 보게 된다면 당신의 몇 년간을 제가 보게 되는 것이겠네요. 짧지만 당신의 얼마간의 모습들을 볼 수 있음에 저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곧 새로운 해를 맞이할 우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생각해 보면 참 기대가 되는 일입니다. 몇 년 사이 당신은 살이 조금 붙었고, 나는 주근깨가 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당신과 나이가 같은 것이 또 좋아져요. 우리는 동시대를 함께 보내고 또 주름이 늘어감이 비슷하고 같은 시대의 문화를 지나 살아가네요. 얼마 전 당신이 보내주신 당신의 초중고 생기부를 읽다가 조금 웃기기도 하고 조금 슬프기도 했습니다. 나는 왜 그리 당신의 유년 시절을 상상해 보면 마음이 자꾸 아릴까요. 장난기 많았다던 당신의 어린 시절로 찾아가 당신의 모든 장난을 받아주고 노을이 지는 거리를 손잡고 걸으면서 따뜻하고 안전하게 집으로 들여보내 주고만 싶어져요. 애기야, 오늘은 행복한 날이었지. 늘 이렇게 밝고 장난스럽게 살아가길 바라. 하고 말해주면서요.
오늘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 전에 당신의 부재 동안 써왔던 글들을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온통 바람과 염원이 가득한 글들을 읽다가,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지요. 의도가 선하더라도 당신에게는 늘 너무 과하고 무거운 저의 마음이 때론 힘겹게 느껴졌을 때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당신의 삶은 생각보다 여유가 더 없었기 때문에 사랑과 낭만 타령을 할 수 있는, 있었던 저보다 더 힘들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사람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하고 비굴해지기도 하는, 인간성 이전에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외면할 수는 없는 존재니까요.
오늘 썼던 글들을 천천히 읽던 중 이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어리광을 부리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가 아주 어려져서 자기 멋대로 울고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듯이 사랑을 내놓으라고 떼도 쓰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그의 곁에 있을 때 모든 응석을 다 받아주려 했지만, 그는 다시 늙어버렸어요. 그의 시간이 거꾸로 갔으면 좋겠어요. 부디. 약하고 여린 그가 잘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아이처럼 해맑고 감사하면서요.’
저는요, 늘 그렇게 생존만을 생각하며 사는 당신이 아주 어려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 나가서는 다시 어른스럽고 차분한 당신으로서 살겠지만 내 품에서는 아이처럼 나를 찾고 힘들면 비논리적인 어리광도 좀 피우고요. 아이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완전해서 어떤 짓을 해도 사랑받아 마땅하고 또 그런 사랑을 잘 받아야 좋은 어른으로 자라나지요. 세상은 너무나도 매정해서 나의 투정과 내가 살아온 길에는 관심이 없죠.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영원한 사랑을 찾고 지고의 사랑에 희망을 품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에게 나는 먼지 같은 존재라도 당신에게는 내가 전부라는 그 믿음으로 다시 열심히 일하러 나가곤 하는 것이 온전한 행복인가 싶기도 합니다.
다시 만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적으로 많이 힘든 것 같아서 걱정도 되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당신이 강해서 안심도 되었습니다. 일을 버텨내는 것에서 느낀 것이 아니라 나와 헤어지고 불편했을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생각의 전환도 해보는 작업을 해왔다는 사실 때문이었지요. 당신을 떠나보낸 뒤 당신이 잘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 앞에서 늘 잃어버릴 것들에 대한 겁으로 앞으로의 생을 자신을 소진하면서 달려 나갈까 봐 늘 우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나에게 지는 노을을, 산의 운무를, 낮과 밤의 경계에 걸린 초승달을 찍어 보내요. 당신이 늘 ‘잘 살아감’ 때문에 외면했던 꽤 낭만적인 자신을 찾아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벅차요. 제가 제일 당신을 크게 오해했던 것이 당신에게는 낭만이 별로 없을 거란 생각이었단 것을 당신이 부재하는 동안 알았거든요. 알죠? 당신, 낭만주의자이자 박애주의자인 것을요. 낭만과 사랑 타령을 하게 된 그런 당신에게 제가 어찌 다시 안 반할 수가 있겠어요. 또 흠뻑 반해버렸죠. 뭐,
우리요, 너무 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겁이 많아서 불안해하고 겁이 많아서 경계를 그었지요. 그러지 말고 살아요. 사랑도 하고요. 요즘 한 번뿐인 삶이라고 생각하니 순간이 너무 벅차요. 생활이 지쳐도 당신이 같은 하늘에서 같은 별을 보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퇴근길이 힘들지 않아지죠. 애써 좋은 것들을 보고 부로 낭만을 찾아가 봐요. 같이요. 그래도 제가 꽤 좋은 안내자니까 당신이 이렇게 잘 따라온다고도 생각할래요. 그러니까 우리 손잡고 또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건강하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온 마음을 다해봐요. 그러면 언젠가 훌쩍 낭만이 상실될 나이가 되어서도 지금의 챕터를 다시 보면서 행복할 수도 있겠지요. 좋은 영화는 결말을 알아도 다시 보고 싶어지곤 하니까요.
생일 축하해요.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언제나 당신은 그 자체로 제겐 온전한 존재입니다.
당신의 당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