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무리 차갑고 냉혹하다 해도 이렇게 모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가 나에게 야박한 날이 있습니다. 모두가 나를 응원하여도 조그만 구석에서조차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내몰고만 있는 날. 그런 날이면 나는 눈을 질끈 감아봅니다. 그러고는 길게 호흡을 세어 봅니다. 나는 나의 손을 잡는 것을 자주 실패하곤 합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도 종달새의 노래를 떠올릴 수 있는 밤이 있는가 하면, 싱그러운 꽃다발에도 시들어 가는 마음만 들여다보게 되는 낮이 있습니다. 나는 기질적으로 약한 밤들을 길게 끌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날이면 나는 그저 순순히 패배하기로 합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에게 패배합니다. 패자는 어깨를 늘어트리고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진 않았는지, 주변의 응원과 감사한 모든 것에 대해 누릴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빈 수레는 요란법석이지요. 그래서 나는 늘 시끄럽습니다. 나는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나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너무 자주 피어나다가 그새 말라서 버석거립니다. 어제는 만개한 기분이 오늘은 봉우리를 꼭 오므립니다. 몸이 조금 아픈 까닭일까. 혹은 사소한 생활적인 부분의 고민 때문일까, 싶다가도 어제와 오늘의 여건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렇다면 나의 나약한 마음 때문인 것 같아 나에게 조금 실망스러워집니다.
오전에는 산으로 가서 달리는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리의 피로도가 높았고 며칠 무리를 했는지 온몸이 근육통입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핸드폰이나 한참을 만지다가 겨우 일어나 집을 청소해 보기로 합니다. 나는 나의 마음 상태를 집의 컨디션을 보고 파악합니다. 내 마음이 힘들면 빨래가 의자에 시체처럼 쌓이고 먼지가 가구 위에 앉습니다. 몇 가지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이내 하기 싫어져서는 고구마와 커피 믹스를 먹으며 텔레비전이나 켜 봅니다. 친구가 오늘도 산에 갔느냐고 메시지가 옵니다. 나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했다고 장난스레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몸이 무거워서 건강식을 더욱 챙겨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합니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식욕이 더욱 당기고 꼭 군것질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만 오늘은 건강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망가트리는 건 내가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면을 하나 다 먹고도 또 주섬주섬 과자를 꺼내어 먹습니다. 식욕이 기분에 집니다. 그냥 오늘은 이 기분이 나아지기 위해 애쓰지 않기로 합니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모든 힘을 빼고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몸만 이리 무거우면 다행이지만 오늘은 나의 마음까지도 의심하게 됩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아주 집요한 형사처럼 의심합니다. 어제 내가 쓴 일기를 보다가 같은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억지로 긍정적일 필요는 또 없다고, 늘 파이팅 넘치는 사람은 없는 법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좋아하는 책을 몇 권 뒤적거리고 누워서 조용한 음악을 들어봅니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은 굉장히 연약한 존재인 것을 방증하는 건 아닐까, 조금 서글퍼집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침대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노래가 익숙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언젠가 좋은 계절, 조용한 동네에 있었던 작은 독립서점에서 들었던 노래 같습니다. 나는 내가 순간을 영원이라 기억하는 것이 늘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루가 나쁜 날 같을 때 기억을 환기해 주는 것이 있으면 다행인 일입니다. 어제의 일기를 다시 읽어봅니다. 어제의 일기에 요가원에서 핸드스탠드 연습이 조금 더 잘되어서 기쁘다고 적혀있습니다. 몇 달 전의 나를 떠올려보니 손을 바닥에 짚고 버티는 것조차 불가했던 내가 있습니다. 일기를 보다가 나쁜 하루 때문에 모든 날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에 대해서 다시 믿어보기로 합니다. 친구에게 했던 말을 말입니다. 오늘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