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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요 Sep 19. 2024

멋없는 나랑 마주 보기

산다는 것은 멋없는 나를 자꾸 만나는 일 같습니다. 의뭉스러운 나를 흘겨보곤 ‘어쩔 수 없지 뭐’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입니다. 미워도 자꾸 데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인 것 같은 데 가장 어색하다고 여겨지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과거의 어디선가 부끄러운 내가 자꾸 회귀하여 자주 방문합니다.     



이번 주 초입부터 아침 기온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떨어졌습니다. 좋아진 공기가 코로, 몸으로 느껴지니 달리는 것에 재미를 부쩍 들였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무리하게 달렸던 것 같습니다. 주말쯤 되니 양 무릎이 욱신거립니다. 당분간 산을 가지 않기로 합니다. 계속해서 몸을 이용하여 요가 수련을 하고 산을 달리면서 알게 된 것은 더 잘, 더 멀리 가는 것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주말인 토, 일 양 이틀간 요가 지도자 과정 수련이 있었습니다. 시험을 눈앞에 두고 있어 이론 수업과 실기 수업의 강도가 높아졌습니다. 평일 동안 무리해서 몸을 움직여서인지 햄스트링과 허벅지 안쪽의 근육에 통증이 있었습니다. 통증 탓에 역시나 수련이 원만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욕심부렸던 과거의 내가 미워집니다.

    


실습수업은 몇 개의 자세를 부드러운 호흡과 함께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수리야나마스카라, 태양 경배 자세로 시작을 합니다. 태양 경배를 하면 언제나 처음 요가를 접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동이 미처 다 트기도 전, 어둑한 새벽 시간에 태양 경배를 하면서 기도하듯 간절했던 마음도 함께 말이에요. 태양 경배가 시작되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하늘을 향해 뻗어냅니다. 다음엔 몸을 그대로 앞으로 곧게 뻗으면서 숙입니다. 가만히 호흡을 세지요. 왼쪽과 오른쪽 다리를 번갈아 움직이며 천천히 호흡합니다. 수많은 새벽, 물 흐르듯 연속되는 동작을 약간은 몽롱한 기분으로 하고 있으면 나는 기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미래와 못난 나를 생각하면서 몇 번의 울음을 참아냈습니다.

‘부디, 내가 나를 버리지 않게 해 주세요. 부디 세상을 너무 미워하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요.     



요가를 하면서 나는 점차 잃어버렸던 마음을 찾아갔습니다. 나는 작은 믿음 같은 것을 마음에 걸어두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타고난 것은 변하지 않지만 조금씩 노력하면 조금은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 같은 것을요. 그러면 넘어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나의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요.



나는 키가 작고 팔이 짧고요, 근력도 남들보다 훨씬 부족합니다. 그런 내가 과연 고난도의 아사나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이 들면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속도대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말 한마디를 부적 삼아 매일 똑같은 지점에서 넘어지고 멈추는 일을 자꾸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수련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날들 가운데 되지 않던 아사나를 어느 날 갑자기 선물처럼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 날이면 다시 한번 요가에 흠뻑 빠지게 되는 날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날은 하루도 없다고. 막다른 골목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날이 다른 풍경을 달리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늘 주변에 휩쓸리고 마는 나약한 나를 다그치듯이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몸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아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막막하지요. 나는 요가를 배우게 된 뒤로 몸을 믿는 것을 통해 마음을 믿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변하는 것들을 믿지 말고, 자신을 믿으라고. 나를 믿고 계속 수련을 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최근에 가게 아르바이트생이 나에게 ‘누나, 이효리 같아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술도 좋아하고 맛집 탐방을 하는 것이 더 즐거운 사람이었거든요. 연애도 끊임없이 했던 것 같아요. 아침에는 숙취로 머리를 붙잡으며 두통약을 찾고 애인과 다투고 나빠진 기분으로 하루를 온통 망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런 내가 점점 술을 줄이다가 술을 끊어버리고 오전에는 찾을 필요도 없이 산이나 요가원에만 있으니 아르바이트생 눈에는 화려한 서울 생활 끝에 제주에 내려가 요가하며 살던 이효리처럼 보이는 건가 싶어서 조금 웃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괴랄하고 차분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싸구려 농담을 즐기고 자주 비속어를 쓰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사람 본성이 어디 가나요.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어디 가긴 가더라고요. 같은 길을 걷기는 하지만 내 손으로 가는 길의 풍경을 좀 다르게 만들 수는 있더라고요. 나무도 좀 심어 놓고요, 낭만도 좀 하늘에 뿌려 놓고요, 친절과 다정도 좀 떠다니게 하면 가는 길이 훨씬 즐겁다는 것을 마음과 몸의 운동을 통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도 애씁니다. 멋없는 나를 마주 보는 일에요. 자꾸 보고 조금 멋있는 모자도 씌워보고 사랑도 주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은 멋있어 보이지 않을까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또 겁 없이 자꾸 넘어지는 연습을 부상 없이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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