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던 것들, 늘어진 시간, 망가졌던 마음, 그리운 향수, 어디선가 머무른 눈물.
그리고 이미 젖어버린 손수건을 흔드느라 놓쳐버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누구야, 잘 지내니.라고 수신자 불명의 안부를 묻고 싶은 날에는 생을 가파르게 자맥질하는 지금을 움켜쥐어 봅니다.
월, 수, 금에 있는 정규 요가 수련이 끝나면 선생님께서 조금 더 깊은 수련이 필요한 사람들을 추가로 지도해 주십니다. 얼마 전, 원장 선생님께서 건강 문제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위해 서울로 가시면서 저를 위해 오전반 선생님께 추가 수련을 부탁하였기에 받게 된 귀한 시간입니다.
그렇게 진행된 추가 수련은 처음엔 혼자였지만 지금은 몸이 유려한 젊은 사람들이 몇몇 동참해 주고 있습니다. 함께 더 깊은 수련을 위해 함께 끙끙거리고 있노라면 더욱 열심히 하게 되는 긍정적인 시너지를 받게 됩니다.
오늘 수련에서는 뒤로 허리를 내려보내는 후굴 연습을 했습니다. 평소 생활에선 늘 앞을 보고 걷고 머리를 숙이고 책을 읽느라 몸을 아래로 굽히는 일이 더 많은 내가 후굴 동작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조금만 허리를 뒤로 젖혀도 숨이 턱 하고 막힙니다. 가슴이 열리지 않고 허리의 힘이 부족하여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선생님께서 불편하기 전까지 머물러보라고, 숨이 쉬어지는 곳까지 내려가 한참 호흡을 해 보라고, 아주 지루한 작업이지만 내면의 힘을 길러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이러다 죽을 것 같은데요.’라는 말이 목구멍 앞까지 차오릅니다.
나는 조금씩 머리를 뒤로 내려보고 또 손을 뒤로 보내보면서 뒤로 몸을 움직여 봅니다. 일 센티미터를 내려갈 때마다 땀이 후두둑 쏟아집니다. 참 신기한 것이, 요가를 하면서 아주 천천히, 눈으로 잘 띄지도 않을 만큼 움직이고 있는데도 산에서 달리는 것만큼의 땀이 쏟아집니다. 수련 시간 동안 나의 몸은 세상에서 제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나는 수련을 할 때마다 혼자 극기 훈련 하는 기분입니다. ‘어휴, 내가 이게 이렇게 안 될 일인가?’ 속으로 씩씩거리면서 나에게 용심이 솟습니다.
오늘도 말 안 듣는 나와 싸우면서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넋이 나가 있는 내게 선생님께서 작은 담화를 해주십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있다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눈동자가 눈꺼풀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가 음악을 끈다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또 다른 미세한 소음을 듣고 있는 것이라고. 마음 또한 그러하다고. 어떤 마음도 떠오르지 않는 동안에도 늘 어떤 복잡한 마음들이 머무른다고. 그런 마음을 나에게서 벗어나서 바라보고 다스릴 줄 아는 것. 그것이 수련과 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나는 오늘도 이른 새벽에 산으로 가서 달리고 왔었습니다. 처음 산으로 가게 된 계기를 생각했습니다. 작년, 고독을 안고 살다가 오래된 오동나무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했었습니다. 그런 그와 이별하고 그의 삶에도 작은 잎사귀가 피기를 바라며 산으로 가 그리도 울었습니다. 아마 누가 보면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였을 내 모습을 생각하다가 피식, 웃음이 납니다. 그 사이 계절은 몇 번의 다른 옷을 갈아입었고 나는 이제 산에서 벅찬 삶의 격동을 느끼며 달리고 있게 되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달라진 것은 나의 마음 하나뿐입니다.
지나고 나니 그를 위한 일도 ‘위한’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세계에는 당신이 피워낼 내가 모를 무언가가 있을 것이고 나의 세계에는 내가 피워낼 것들이 따로 존재하겠지요. 그때 서로가 애썼던 마음은 지나갔고 못내 그리워서 우는 일도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없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복잡한 마음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마음속 서랍에 남아 오늘의 나를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런 마음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 요가로, 달리기로, 매일 쓰는 일기를 통해 노력 중입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말씀처럼 오랜 시간 동안 지루하고 고된 수련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호흡이 가능한 부분까지 계속해 보려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내 마음도 내 말을 조금은 듣게 되겠지요.
말 안 듣는 내 마음아, 잘 좀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