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덥지만, 기어코 여름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여름 산속을 뛰어다니느라 나는 조금 까맣게 탔습니다. 몸무게가 약간 늘었고 근육이 붙은 어깨가 몽돌같이 반질거리는 것을 쇼윈도에 반사된 모습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의심 없이 튼튼해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신이 나한테만 등지고 있다고, 하늘을 보고 가운뎃손가락이나 자꾸 펼쳐버리고 싶던 마음이 화산처럼 분출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무죄인 하늘을 향해 욕하는 대신 산을 달리고 요가하며 매일 일기를 씁니다.
오늘 오전에는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산에서 달리기를 시작하고는 오전 여섯 시 전후로는 꼭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직은 해가 늦잠을 자지 않는 계절이어서 여섯 시면 어스름한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옵니다. 어쩐지 오늘은 여섯 시에도 밖이 어두웠습니다. 그러고 잠시 후 토도독하고 천장에 도토리가 구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비가 옵니다. 가을비인가 하여 와락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몸이 무겁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비가 오는 날에는 물에 젖은 생쥐처럼 축 처져 있는 아이였습니다. 비가 오면 몸도 무겁지만, 기분도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가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 전까지 이불속에서 꼼짝하지 않기로 합니다. 부지런 떨고 싶지 않은 날도 있으니까요. 며칠 운동을 무리해서 근육통도 여기저기입니다. 쉬라는 계시라고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대 봅니다.
수련 시간이 다 되어 다분히 의욕 과소로 요가 수련을 갔습니다. 쉬엄쉬엄해야겠다는 마음과 달리 도착하면 늘 땀을 폭풍같이 흘리며 열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오늘은 정말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날에 요가 수련이 잘될 때가 많습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그저께는 가능하지 않았던 핀차 마유라 아사나 접근이 조금 더 수월해졌고 후굴의 각도가 조금 더 내려갔습니다. 오늘 선생님께서 마음을 비우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늘 조금 더 욕심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 것,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나는 오늘 열심히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고 왔는데 그게 오히려 득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수련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기분은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일기를 매일 작성하고 늘 무탈한 하루에 감사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나는 사실 기질적으로 긍정적인 편은 아닙니다. 늘 흠을 더 빨리 찾아내는 것이 흠인, 조금 예민한 사람입니다. 오늘은 예민 보스인 날인가 봅니다.
샤워하고 내 방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어보기로 합니다. 어제까지 읽고 있던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다 읽고 새로운 책을 펼쳐보았습니다. 천명관 작가의 「고래」라는 장편소설입니다. 작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다시 이목을 집중받게 된 소설이어서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소설의 도입부를 50페이지 정도를 읽어보았습니다. 나는 주인공 ‘춘희’에 대해 묘사한 부분에 압도당합니다. 백팔십 센티미터의 백이십 킬로가 넘는 거구의 춘희, 갓 서른이 된 춘희, 부모님의 벽돌 공장에서 벽돌을 나르며 얻은 근육으로 단단하고 탱탱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춘희. 그 춘희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다가 문득 지금, 책으로 둘러싸인 내 방에서 소설에 빠져들고 있는 이 순간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기분이 어느새 나아져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돌아보면 마음이 힘들 때마다 다시 찾아 읽는 책들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면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일상의 틈을 소중히 하고 싶으면 최승자 시인의 즐거운 일기를 읽고 젊은 청춘이 그리우면 헤세의 데미안을 읽어봅니다. 핸드폰도 잠시 내려두고 온전히 독서에만 열중하고 있으면 어느새 멀리 떠나갔던 마음이 진정해서 내 곁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책은 외부로 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던 내성적인 나에게 늘 곁에 있던 친구니까요. 제일 편합니다.
작년과 올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건강의 상실과 마음의 상실을 반복해서 치러내며 자꾸 넘어지고 혼자 몰래 숨죽여 울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날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들이 있습니다. 산을 달리는 일, 요가, 독서 그리고 다정한 사람들입니다. 가슴이 답답하면 나를 일으켜 세워 산으로 가서 달렸고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나를 의심할 때면 요가의 정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흘러가는 구름 곁에 마음 상하는 사람은 나 혼자 같을 때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 중 몇 권 골라 읽어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감사한 건 반 푼 같은 나를 자꾸 안아주는 주변의 다정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나는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사람입니다. 좀 더 정돈된 나를 마주하고 싶은 일에 매일 실패합니다. 세 걸음 나가는 듯하다가도 이내 다섯 걸음쯤 뒤로 가는 듯한 날들도 많지요. 하지만 계속해 보겠습니다. 여전히 바보 같은 나 때문에 다치는 일이 많지만, 점차 정돈되는 호흡을, 힘이 생기는 내면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려 합니다. 여전히 나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달리고 힘이 부족한 요기니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읏샤, 하고 엉덩이 털고 일어나 씩씩하게 어려운 한 걸음 가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