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해서 다행입니다. 장기에 손상이 없어서 천만다행입니다. 아직 젊으시니 뼈는 금방 붙을 수 있습니다. 잘 드시면 회복도 빠를 겁니다.”
진짜 퍼즐을 맞추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내 남편 뼛조각을 퍼즐처럼 맞추는 수술은 정말 오래 걸렸다. 긴 대기 시간 동안 정신을 차린 나는 사고의 경위를 듣게 되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들이 펼쳐졌다. 이제 진짜 고통의 시작이었다. 누군가 나를 위로한답시고 ‘남편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힘내!’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많이 했다. 과연 내 정신적 고통이 남편의 육체적 고통보다 작다고 할 수 있을까? 남편의 사고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극강의 고난이 두 팔 벌려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두 팔은 나를 끌어안고 끝없는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15톤 덤프트럭과 부딪힌 SUV 남편의 차를 보는 순간 바로 눈을 찌푸렸다. 다시 눈을 뜨고 살펴보았다. 운전석 쪽이 스프링 접히듯 찌그러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덤프트럭에서 떨어진 찌그러진 쇳덩이에 남편의 몸이 눌려 뼈가 으스러졌다. 퍼즐 맞추는 듯한 수술을 하게 된 이유다.
의료진과 걱정 가득한 이야기가 마무리된 순간을 포착한 경찰들이 다가와 불편한 진실들을 전달해 주었다. 남편 과실로 일어난 큰 사고였다. 남편은 올 수 없으니 내가 대신 경찰서로 와야 한다며 명함 한 장을 주고 떠났다.
“갑연아,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무슨 벌을 받아요?”
“그건 모르지. 지은 벌에 따라 다르지. 아무튼 잘못하면 경찰서 끌려가서 철창 살에 갇힌 데이.”
어릴 때 아빠가 종종 내게 준법정신을 키우기 위해 하셨던 말씀이다. 경찰서 갈 일일 없이 무탈하게 살아왔다. 아빠 말이 틀렸다. 경찰서에 간 건 죄지은 남편이 아니라, 작은 죄 한 번 지어본 적 없는 나였다. 내 남편의 죄가 내 죄가 되었다.
‘울산 남부 경찰서’ 명판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다. 심장박동 소리가 내 귓가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병원에서 전달받은 담당 형사님의 명함을 들고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을 용기도 없었다. 그저 혼자서 발걸음을 이리저리 옮겼다. 10여 분을 헤매다가 드디어 찾았다. 조심스레 노크를 두 번 했다.
“네. 들어오세요.”
짧고 굵은 대답이었다. 문을 손 두 뼘 정도만 열고는 빼꼼히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형사님의 사무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소와는 사뭇 달랐다. 험악하거나 사연 있는 사람들이 들어앉아 있는 철창도 없고, 고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한 사무실이었다. 담당 형사님 자리로 갔다. 감히 의자를 빼서 앉을 용기도 없었다. 그저 쭈뼛거리며 서있었다. 분명 내 인기척을 느끼셨을 텐데, 바쁘신 건지 가해자 측에 관심이 없으신 건지 고개 한 번 들지 않으셨다. 그저 한동안 업무에 집중하고 계셨다. 나는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인사를 했다.
“저.. 안녕하세요. OOO 씨 교통사고.. 어..”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남편의 이름만 듣고 형사님은 곧바로 고개를 드시고 하던 일을 멈추셨다.
“아! 네. 그쪽으로 앉으세요.”
병원에서는 사고 직후라 경황이 없어서 형사님의 인상을 기억할 겨를이 없었다. 덩치가 컸고 눈이 부리부리했다. 목소리도 우렁찼다. 마주 앉아 형사님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겁에 질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형사님은 이내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꾸셨다.
남편이 크게 잘못했었다. 교통사고에서 잘 인정되지 않는다는 100% 한쪽 과실을 내 남편이 기록했다. 퇴근길에 차가 너무나 밀렸는데, 참지 못하고 중앙선을 넘었다. 다가오던 덤프트럭과 부딪쳤다. 반박의 여지도 없는 남편의 100% 과실이었다. 벌금은 1,000만 원 이상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1,000만 원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하늘이 노래졌는데, 그다음 말은 하늘을 무너트렸다. 상대방 차주와 합의도 봐야 하는데 1,000만 원을 훨씬 웃돌 것이라고 했다.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구속이다.
우리는 모아둔 돈 없이 한 달을 일하고 한 달 먹고사는 인생이었다. 적은 월급으로 네 식구 먹고 살아왔던 터라 눈앞이 캄캄했다.
방금까지 형사님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형사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여 호소했다. 병원비에 두 아이들 학업에 생계비 등등 가족도 듣기 싫어할 넋두리를 무서운 형사님 앞에서 실컷 했다. 닭 똥 같은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형사님은 나를 외면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냉정함을 유지하셨다.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조심스레 노크하고 두 뼘만큼만 문을 살짝 열었던 나와는 달랐다.
“쾅쾅”
형사님이 들어오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문은 벌컥 열렸다. 소리 나는 쪽으로 나와 형사님 모두 고개를 돌렸다. 딱 봐도 상대방 차주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양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110에서 120 정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신 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떨구며 말을 이어가다 또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차주는 곧 입을 열었다. 허리와 목이 아파서 일하기가 힘들어졌는데, 설상가상으로 차 수리는 언제 완료될지 몰랐다. 당분간 일을 하지 못해 수입이 뚝 끊겨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차분히 상황을 설명하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매정하게만 굴었던 형사님이 나섰다. 무뚝뚝한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차주에게 나의 사정을 짧지만 명료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베테랑 형사님은 다르다고 느꼈다. 그의 합의 실력이 상당했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원만한 합의를 진행했다. 물론 차주는 한참을 생각에 잠긴 듯 인상을 쓰기도 했고 땅이 꺼져라 한숨도 여러 차례 쉬었다. 한숨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심장은 땅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곧 차주는 ‘인정상’이라는 단어를 쓰며 마지막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쩝 소리를 크게 한 번 냈다.
“그럼 차 수리비만 주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책상 위에 놓인 갑 티슈 통에서 휴지를 두 장 뽑더니 내게 건넸다. 위로의 말도 전했던 것 같은데,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수리비만 물려드리면 된다는 말에 내 정신은 이미 안도와 기쁨에 지배되어 고삐가 풀린 사람처럼 끄억 끄억 소리 내며 울었다. 내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세상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합의가 원만하다고 해서 내게 쉽다는 뜻은 아니었다. 단 돈 백만 원에도 벌벌 떨던 시절이었다. 합의금과 벌금의 합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액수의 몇십 배를 훌쩍 넘었다. 게다가 남편 병원비는 얼마나 청구될지 알 수 없다.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남편에게 들어갈 돈은 예산을 짤 수도 없는 범주의 지출이 돼버렸다. 가계부에 적던 식비만 빼고 나머지 아이들 학원비, 유일한 여가 생활이었던 계모임 비 같은 단어들은 이제 적을 일이 없어졌다.
계모임비를 지우는 건 괜찮았다. 아이들 학비마저 지워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비참했다.
‘불쌍한 내 새끼들..’
닭 똥 같은 눈물이 멈추니 그 자리에 한숨 쉬기가 자리 잡았다. 5초마다 한숨을 쉬는 삶이 그날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