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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즐기는 법

by 사랑


생리 예정일 하루 전. 무언가 지루한 느낌에 임신 테스트기에 손을 댔다. 그리 기대하지 않았지만, 막상 선명한 한 줄 뿐인 임테기를 보고 나니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벌써 연말이 다 되었는데 왜 아직 소식이 없을까. 이번 달 생리를 하면 나팔관 조영술을 한 번 해볼까 싶다.


마트에서 사 왔던 감자 한 박스. 먹지 않고 두었더니 싹이 나려고 해서 전부 다 껍질을 벗겨 삶았다. 절반은 냉동실에 얼려 다음에 먹기로 하고, 남은 것은 백종원 선생님 유튜브 보며 감자 수프를 처음으로 만들어봤다. 오늘은 참 오랜 시간 주방에 머물렀다.




잠시 짬을 내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이미 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한 번 더 빌려온 책. 설렁설렁 읽다 보니 마음에 꽂히는 구절이 있었다. '무엇이든 얻고 난 뒤의 마음보다 갈망하던 마음이 더 풍요롭다. 그때의 마음이 더 빛났다'는 말.


생각해 보니 정말 맞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설레던 때. 텅 비어있는 신혼집에 입주할 생각 하며 기쁘던 때. 여행을 준비하며 두근대던 때. 모든 기다림은 설레고, 기대에 찼었다. 지금은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실망도 많이 하지만, 언젠간 이 기다림 또한 끝날 날이 오겠지. 아가를 기다리는 이 순간도 풍요로운 마음으로 보내야겠다. 나에겐 가장 좋은 때 가장 예쁜 아기 천사가 찾아올 거니까.





간만의 약속으로 맛있는 가지솥밥을 먹고, 따뜻한 카페모카 한 잔 하면서 약간의 회포를 풀었다. 근 2년 간 지인들과도 멀리 지냈는데, 요즘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다시 가까이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가벼워진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냥 오늘처럼 주어진 하루를 부지런히 나를 챙기면서 살아보자. 그럼 어느 날 좋은 일이 불쑥 찾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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