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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하글 Nov 04. 2024

사랑 빼면 시체

도승하 수필

혹시 있나요? 너무 사랑해서 가슴 아픈 적이요. 여러분은 그런 기억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너무 사랑해서 사랑하고 있음에도 사랑받고 있음에도 가슴이 아팠던 적이요. 어쩌면 그때 내게 그 사람이 유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일하게 나를 그저 나 자체를 알아주고 안아줬던 사람이었기에 내가 그토록 사랑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저는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하루에도 수십 번은 감정 널뛰기를 했습니다. 미세한 목소리의 변화 눈동자의 떨림 말할 때의 몸짓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이 없었어요. 물론 그 사람도 그랬을지도 몰라요. 내가 너무 신경이 쓰여서 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줬을지도 모르죠. 그게 얼만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래도 저만큼은 아니었을 겁니다. 저는 정말 확신하거든요. 그 사람이 내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었든지 나는 그보다 더 큰 사랑을 그 사람에게 주었다는 것을요.  


왜냐면요. 사랑은 기다리게 하지 않거든요. 사랑은 기다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사랑은 망설이지도 않고 사랑은 숨기지도 숨겨지지도 않아요. 그래서였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단 1분도 기다리게 한 적이 없었던 이유요. 저는 언제나 약속장소에 먼저 나가 있었습니다. 항상 제시간보다 일찍 가서 그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시야에 들어오면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 손을 잡거나 와락 끌어안아 버렸어요. 숨길 수 없는 내 마음은 언제 어디서고 티가 났습니다. 내 시선은 언제나 그 사람에게 가 있었고 내 좁은 시야에는 그 사람이 가득 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그토록 그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이별이 다가오는 모든 순간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저는 죽어있었습니다.      


사랑의 척도는 기다림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기다릴 틈을 주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게 했거든요. 어떤 날은 약속장소에서 어떤 날은 내 방안 구석에서 어떤 날은 그 사람의 집에서 그게 어디서든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이별한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점차 죽어갔고 그 사람은 그런 내 모습에 미안함을 느꼈을 테니까요. 내 감정을 숨긴다고 숨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사랑 때문인 모든 감정은 절대 숨겨지지 않으니까요. 네. 그래서 우리는 이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끝을 맞이했습니다. 그 결과 나의 세상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지금까지도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있음을 알지만 살아있음을 느끼지는 않아요. 누군가 그랬잖아요. “사랑 빼면 시체”라고요. 그래서 저는 시체가 되었습니다. 내 사랑을 잃은 그 시간부터 오늘날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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