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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앞두고 우리는 두리안을 먹었다

커스터드 애플 두 개

by 루미상지


둘이 마주 앉아 두리안을 먹는다. 두리안을 먹고 나면 우리는 공항으로 떠날 것이다.

일 년 전, 우리를 초대해 준 프래우 교수님만 믿고 방콕으로 왔다.

어느덧 일 년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며칠 전부터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살림을 정리했다. 태국 교수님들에게 받았던 살림은 깨끗하게 씻고 닦아서 한 곳에 모아두었다.


우리 짐은 태국에 도착했을 때와 똑같다. 골프 백, 22kg 큰 캐리어, 10kg 기내용 작은 캐리어 그리고 각각 백 팩을 메고 왔다.

잠들기 전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집에게도 감사기도를 했다.

“태국 집아 고마워. 지난번 지진 때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어. 이곳에서 행복하게 잘 지냈어. 우리는 이제 떠나지만 너는 남아서 또 누군가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겠지? 잘 있어.”


마지막 아침 식사로 이곳 생활을 기념하기 위해 두리안과 파파야를 먹었다.

일 년 전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을 때, 프래우 교수는 밤 12시가 다 된 시간에 작은 포터 트럭을 몰고 마중 나오셨다.

그리고 오늘 태국을 떠나는 날 교수님은 똑같은 포터 트럭을 몰고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낯선 곳에서 남편은 강의하고, 연구하고, 논문을 썼다. 나는 혼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방콕 생활에 적응해 갔다. 물론 이곳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의 도움이 가장 컸다.

일요일에는 한인 성당에 가서 한국 사람들도 사귀었다. 시간이 지나자 방콕의 한인회 등 커뮤니티 활동에도 참여하며 점점 좋은 사람들을 알아갔다.

한국에서는 내가 꼭 해야 할 일만 하고 살아도 바빴다. 이곳에서는 모든 걸 잊고 취미생활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었다.


태국 대학생들, 석박사 학생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해 새로운 문화를 경험했다.

마히돌대학에서 대학과 태국을 홍보하기 위해 외국인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상대로 진행한 세 번의 캠퍼스 여행에도 참여했다.

우리가 방콕에 머무르는 동안 여섯 팀의 손님들을 맞았다. 딸과 사위, 입시를 끝낸 딸을 데리고 온 친구, 군에서 제대한 아들을 데리고 온 여동생, 내 친구 부부, 남편 친구 부부, 남편의 직장 동료들이 골프 여행을 다녀갔다.

우리는 여행지도 함께 가고, 한국 사람들이 자주 가는 음식점에도 가고, 미슐랭 맛집(태국 미슐랭은 값도 싸고 맛있는 집이 많다)도 찾아다녔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두리안, 바나나, 파파야, 코코넛, 망고, 고무나무도 보았다. 망고나무는 우리나라의 감나무처럼 집집마다 아주 흔하게 있었고 망고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열대 기후로 일 년에 삼모작을 하는 들판에서는 추수를 막 끝낸 논 옆에 모내기를 하는 논,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논, 벼들이 초록으로 한창 자라고 있는 논이 함께 있는 신기한 광경도 봤다.

우리나라 들판의 사계절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본 것이다.

시골길을 달릴 때 보았던 코끼리 조심 사인도 낯설었다. 소 떼들이 길을 막아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리고 헤어지는 달 8월이 왔다. 신부님은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현정은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로, 은정은 싱가포르로 떠났다.

우리는 송별파티만 여섯 번을 했다.

마히돌대학에서 송별회를 해주었다.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사계절 연꽃이 피어있는 야외 식당이었다. 일 년 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사진 액자로 만들어 주셔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 많은 사진 들 속에서 우리 사진을 골라 액자를 만드셨는지 그 정성에 감동받았다.


LV The Place Le cafe Louis Vuitton 루이뷔통 카페에도 가봤다. 숙이와 현이가 나를 위해 요즘 핫한 카페를 예약했다는 것이다. 카페는 외관부터 다이아몬드를 형상해 화려하게 보였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실내는 프라이버시를 보장한다며 여섯 개의 테이블만 있었다. 점원은 아메리카노보다는 시그니처 메뉴가 고급스러워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고 권했다. 먹기엔 아까운 예술 작품 같은 디저트와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커피는 모노그램 아트를 해주어 정말 근사해 보였다. 머리에 히잡을 쓴 아랍계통 여자들이 많았고 모두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Le cafe Louis Vuitton


처음 방콕에 왔을 때 누군가 말했다.

“오래 살 사람 아니고 금방 떠날 사람에게는 정 안 줘요.”

하루 한 시간을 만나도 마음이 통하고 정이 가는 사람이 있고 30년을 만나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다. 보고 싶은 사람은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만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면 된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사는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계속할 것이다. 방콕에서 만난 태국 친구들, 한국 친구들은 우리들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은퇴 후에도 꼭 다시 방콕으로 오라고 했다.


프래우 교수님과 공항에서 마지막 포옹을 했다. 교수님은 태국에서 생활이 아주 달콤하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커스터드 애플(슈가 애플)을 우리 손에 하나씩 쥐어 주셨다. 공항에 앉아 커스터드 애플을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과일이었는데 정말 달콤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달콤한 맛을 떠올리면 교수님과 방콕이 그리워진다.


기념앨범과 슈가애플





"방콕 안 사는데 방콕 사는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제 글을 구독해 주시고 재미있게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른 연재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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