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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Oct 29. 2024

운전 못하는 트럭운전수와 단풍

문어선생님이 되고 싶어

  뒤죽박죽 타임라인 여행기는 여행을 좋아하던 과거의 나와 집순이인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하나의 이음새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골이 띵하도록 달디단 대추야자와 홍차를 마시던 오후라던지 사막에 쏟아지던 별이라던지 이제는 기억에만 존재하는 그 시간들을 엮어두면 나중에 더 나이 들거나 심심할 때 꺼내먹으면 좋겠지라는 것이 연재의 이유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분히 앉아서 지난 여행을 들춰볼 겨를이 있어야 하는 데 하루를 두세 시간 남겨두고 노트북 앞에 앉거나(혹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 부랴부랴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계속되다 보니 애초에 염두에 두었던 여행지는 거의 쓰지도 못했고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글을 쓰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지 않고 천천히 그날그날 떠오르는 글을 써보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오늘을 한 시간 남짓 남겨두고 여행일기를 쓰기 위해 아무리 뇌를 검색해도 떠오르는 재물이 없다. 어제 잠이 들기 전에 단풍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어쩌다 보니 새빨갛게 물든 단풍을 보게 된 것을 써보도록 해야겠다. 물론 눈으로 봤는지 코로 봤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오늘 1종 수동 도로연수를 받기 위해 운전면허학원에 갔다. 2종 보통 면허가 있기는 하지만 주의력이 산만하여 옆에 누군가를 태우지 않고는 혼자서 운전해 본 역사가 별로 없다. 그런데 1종 수동면허가 필요해 지난주 임시면허증을 발급받고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을 했다. 전방을 주시하고 신호의 흐름을 보면서 브레이크나 핸들, 액셀 등을 조작해야 하는 운전은 나에게는 상당히 난이도 있는 미션이다. 면허를 딴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운전하는 일은 결코 편안해지지 않는다. 거기에 클러치를 밟으며 기어를 조작해야 하는 트럭은 내가 (손발이 엄청 많으신) 문어선생님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어려운 과제일 거라 예상은 했다. 오늘도 간신히 시간에 맞춰 출석카드를 찍고 연수선생님을 만나 트럭에 탔다. 아니 그런데 왜 핸들의 기어는 6개씩이나 되는가 핸들의 그림을 노려보며 승용차보다 높은 차체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의 설명은 언제나 그렇듯이 왼쪽귀로 들어갔다가 오른쪽으로 잘도 빠져나갔다. 오늘 꺼트린 시동은 아마 모으면 쌀 한 가마니는 될 것이다. 시험료나 연수비가 꽤나 비쌌으므로 정신을 차리려고 아무리 애써봐도 자꾸 엉뚱한 생각만 났다. 정지할 때 브레이크를 슬슬 밟고 클러치를 밟으며 기어를 중립 해두고 클러치를 떼고 브레이크만 밟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선생님, 길이 막혀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가야 할 때는 기어가 중립인가요 아닌가요?

선생님, 클러치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선생님, 1단이랑 2단 기어는 왜 왼쪽으로 한번 꺾어야 할까요, 그리고 왜 이렇게 왼쪽으로 꺾는 게 잘 안될까요?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


  운전선생님은 귀에서 아마 피가 났을지도 모른다. 클러치나 기어변속 같은 운전조작 미숙은 그렇다 치고 좌회전, 유턴이나 정지 신호 보는 것도 어리바리했으니까.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이쪽 언덕너머에는 빨갛게 단풍이 들어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네에 있는 나무 이파리는 아직 녹색이거나 단풍물이 들지 않고 갈색으로 말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에 비해 트럭에 앉아 바라본 단풍나무들의 색이 선명한 빨강이라 깜짝 놀랐다(그래서 시동을 몇 번 더 꺼뜨린 것도 있다). 집순이는 단풍을 좀 보러 언덕을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내일은 좀 더 열심히 운전 기능을 익혀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내일은 또 어떤 단풍을 보게 될까. 나는 기대감을 가지며 잠에 들 것이다. 하지만 오늘 연수 선생님은 연수가 끝나고 내가 트럭에서 내릴 때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내일 고생 좀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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