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3가-안국 여행
비가 메트로놈소리처럼 똑. 똑 머리 위로 떨어진다. 전봇대에서 길게 늘어져있는 전선 위에 새가 다섯 마리 앉아있다. 머리에 떨어지는 것이 혹시 새똥일까 걱정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인사동 횡단보도 앞 광장에서 바이올린과 기타와 트럼펫은 이동형 앰프를 하나 놓고 연주를 시작했다.
여러 마리의 비둘기가 무리 지어 쉴 새 없이 날아올랐다가 구구거리며 걷다가 뛰는 모습이 정신없다.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즐기러 거리를 가로지르며 부지런히 걸었다. 행인들은 걷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끌리면 잠시 연주를 듣거나 버스커를 배경으로 본인의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으로 현재를 조금 기록하기도 한다. 바이올린님이 인사동에서 버스킹을 하자고 제안을 해서 평일 오후 기타를 메고 지하철을 탔다. 앞의 일정이 살짝 늦게 끝난 것도 있지만 고질적인 지각병 탓에 5분 정도 늦게 역에 도착했다. 오늘의 다른 멤버들은 이미 일찌감치 만나서 마음에 드는 장소를 물색해 두고 내게 지도를 보내줬다.
지도앱을 켜고 역에서 그곳으로 걸어가는 데 이상하게 지도가 제대로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는 것이 기타는 무겁고 선선한 날씨에도 땀이 났다. 타고난 길치는 지도앱과 같이 빙글 뱅글 종로바닥을 돌다가 결국은 그 가까운 거리를 택시를 잡아 타고 이동했다(기타를 멘 채로 택시에 올라타서 문 못 닫아서 낑낑댄 건 비밀이다). 결국은 약속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다. 컴핑셔틀(반주)을 해주기로 한 기타가 안 오니 멜로디 악기인 트럼펫과 바이올린은 백킹 트랙을 틀어놓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앰프에 기타를 연결하고 첫곡 Bye bye black bird라는 곡을 연주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이 잔뜩 찌푸려있는데 젖은 공기 사이사이로 바이올린과 트럼펫 소리 입자가 들어가 자리 잡는 것 같았다. 한 외국인은 트럼펫터에게 다가와 연주를 잘 들었다며 꼬깃꼬깃한 달러를 쥐어주고 갔다. 나는 그 돈으로 미국 주식을 사라고 했고(ㅋㅋㅋㅋ), 바이올린연주자는 그 돈을 벽에 붙여두고 음악을 하는 것이 힘들 때 바라보라고 했다. 네 곡정도 했을 때 조금씩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점점점 굵어지는 것 같다. f 블루스를 끝으로 일단 악기를 정리하고 아쉬운 마음에 건너편 공원으로 건너갔다.
공원에는 짙고 어여쁜 색을 뽐내는 가녀린 꽃들이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비를 머금은 공기에 풀냄새가 굉장히 깊게 느껴졌다. 비가 더 이상 오는 것 같지 않길래 벤치에 앉아서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아까 광장에서의 연주는 트럼펫의 말처럼 지구 종말 같은 회색빛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차분하고 고요한 공원의 분위기에 무조건 조용한 곡을 고르게 됐다. 공원에서의 첫곡은 Darn that dream이었고 연주를 하며 공원을 천천히 산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응축된 어떤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었다. 손 잡고 걷는 연인, 토끼귀 모자를 길게 늘어뜨린 아이와 엄마와 엄마의 엄마, 친구들끼리 산책 나온 부인들, 한복을 입고 꽃사이에서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과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이 빚어내는 얼마 남지 않은 쌀쌀해진 10월의 넷째 주. 나는 정말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고백하고 말았다.
늦가을을 그리고 음악을(물론 머릿속으로).
*쌀쌀해진 거리(혹은 베란다, 아니면 창문을 열고)에서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꼭 들어보세요. Darn that dream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