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뮤하뮤 Nov 14. 2024

유배된 여왕

댄스타임 7

  지민은 손으로 쓴 글씨를 읽기도 힘들었지만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윤은 지민에게 가까이 다가서더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홀로그램, 음성, 영상 모두 그들에 의해 감시되고 있어. 그들은 좀처럼 돔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인간을 통제하려 해. 내 생각에는 버츄돌 라키의 음악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

“그들이라니?”


  도윤은 손으로 쓴 글씨가 적힌 이 쪽지를 갖게 된 경위를 떠올렸다.


  도윤은 투룸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다. 투룸이라고 해봤자 싱글침대가 겨우 들어가는 방이 두 개이고 샤워부스와 화장실이 있는 작은 부엌 공간이 있는 집이다. 둘은 데면데면하게 공간을 나눠 쓸 뿐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다. 그래도 휴일이 겹치는 날이면 즉석 스낵을 먹으며 부엌 겸 거실에 앉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다. 도윤의 룸메이트는 특이한 구석이 있었는데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다소 음모론다운 자기 견해를 밝혔다. 예를 들어 이보나시티 방충망은 사람의 사고를 제어한다는 둥 대기업의 배달앱을 쓰면 스스로 조종당하기를 원하는 거라는 등의 얘기를 자주 했다.

또 ‘진진모’였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것 같았는데 도윤이 딱히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딱히 정기적으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는 일이 잦았지만 월세는 잘 냈다. 룸메이트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지? 도윤은 기억을 더듬어봤다. 도윤이 재활용센터에서 야간 조를 뛰고 집으로 돌아온 아침 7시, 룸메이트는 나갈 채비를 마치고 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자기가 한 주일 이상 돌아오지 않으면 자기 침대 시트를 갈아달라는 말을 하고 외출했다. 시트를 갈아달라니, 어이없는 부탁이었다.

  도윤은 룸메이트의 부탁대로 침대 시트를 갈아주기로 했다. 룸메이트의 방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작은 책상 위는 옷가지와 여성용품, 잡동사니 등으로 어수선했다. 오래된 시트를 벗겨내고 세탁된 시트를 씌우기 위해 매트리스를 살짝 들었다. 이때 손에 뭔가 만져졌다. 도윤은 손에 잡히는 것을 끄집어냈다. 소설책이다. 도윤은 천천히 제목을 읽었다. ‘무자비한 달의 소나타’

요새 종이로 된 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전자책도 안 읽는다. 정부에서 권장하는 읽고 쓰는 최소한 의무교육을 이수해야 하기는 하지만, 쓰거나 읽는 행위는 도파민 없는 노동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도윤은 책장을 휘리릭 넘겨봤다. 책을 읽다가 모기를 잡았는지 한 페이지에는 모기가 짜부라져 있고 검붉은 피가 조금 묻어있다. 그다음 장도 모기의 사체와 말라비틀어진 약간의 피. 도윤은 책장의 귀가 세모로 접혀있는 부분을 열었다.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감시, 인간 통제, 라키, 37.5973, 126.6384

도윤은 쪽지를 손에 쥐고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벽에 발라져 있던 정체 모를 물체와 모양을 시시각각 바꾸며 위협하던 비행체, 버츄돌, 스스로 돔 밖으로 나가 죽는 사람들. 도윤은 손에 들린 소설책의 낯선 무게감을 느끼며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도윤은 밤새 소설책을 힘겹게 읽어나갔다.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버려진 달의 뒷면에 유배된 여왕이 우연히 마법의 힘을 얻게 된다. 여왕은 자신을 배신한 달의 앞면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복수를 시작한다. 주인공은 폭주하는 여왕을 막기 위해 신비한 나무가 있는 달의 바다로 떠난다. 주인공은 나무의 열매를 먹고 얻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목소리는 여왕을 결박하고 피비린내 나는 복수는 막을 내린다.


  도윤은 책장을 덮고 단어를 차례로 떠올렸다.

‘신비한 나무의 열매, 노래, 라키, 음악’

도윤은 날이 밝자마자 며칠 전 어렵게 구해놓은 바이올린 줄 하나와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지민네 집으로 달려갔다.


이전 06화 눈을 감아, 혼돈은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