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타임 12
그 많던 사설 용병들은 어디 갔을까? 돈보다는 목숨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는지 살아남은 상당수의 인원이 사라졌다. 보충 인력조차 오지 않았다. 지휘관은 오합지졸 용병들 앞에 서서 용기를 쥐어짜 냈다.
“인간이 이따위 벌레한테 쉽게 죽을 것 같아?” 지휘관은 화염방사기를 손에 쥐었다.
“불지옥을 보여주마. 아아아악! ”
그는 소리를 지르며 화염방사기를 발사했다.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선두에 있는 모기들을 녹여버렸다. 모기 거인은 낱낱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더니 지휘관을 몸 안에 가두며 다시 거인 형태를 이루었다. 스위치가 켜진 채 난사되고 있는 화염방사기만 바닥에 떨어져서 애꿎은 시민과 건물을 태우며 녹였다.
이제 모기 거인은 쭈그리고 앉아 돋보기로 개미를 태우는 어린아이처럼 모기 채를 들고 인간들을 지지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민과 영채 도윤은 별다른 방해 없이 드디어 모기 거인 앞에 섰다. 모기-거인은 귀찮다는 듯 천천히 일어섰다. 왠지 끙차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염주 알에 평화의 상징이 달려있는 펜던트를 착용한 도윤은 왼쪽에서 포터블 앰프를 작동시켰다. 오른쪽에 선 영채는 타이-다이 머리띠를 휘날리며 캐스터네츠를 손에 들고 섰다. 꽃무늬 자락을 펄럭이며 지민은 가운데 조금 앞으로 섰다. 지민은 낡은 바이올린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아리가 알려준 대로 현도 갈았겠다 이제 연주만 하면 된다. 지만은 헬멧까지 벗고 입에는 고수 담배를 물었다. 물론 불은 붙이지 않았다. 기왕 하는 김에 분위기를 잘 잡아야 한다. 나 지금 좀 멋있으려나? 지민은 잠깐 생각했다.
도윤이 버튼을 누르면서 외쳤다. “지금이야!”
지민은 손에 든 낡은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리며 숨을 골랐다. 금속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모기떼의 윙윙거림이 코끝까지 다가왔지만, 지민은 머릿속에 흐르는 멜로디를 떠올리고 첫 음을 연주했다. 포터블 앰프에서 증폭된 첫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라, 이게 되네? 지민은 내심 놀랐지만, 자기 손가락과 활, 나무와 현이 만들어내는 퍼플헤이즈(purple haze) 연주에 집중했다. 이내 주변이 조용해지면서 이 혼란스러운 공간이 은하수가 흐르는 검은 우주로 변했다. 무수한 별이 빛나는 우주의 숲에 영험한 빛을 뿜어내는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지민의 몸은 무중력상태에 있는 듯 가볍기 짝이 없다. 지민은 가까이 날아가서 나무를 본다. 나무의 결을 만져본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몰입의 순간이다. 거인을 이루던 모기떼들은 지민의 곡에 휘말려 파동 속에서 맥없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소리가 모기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