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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Nov 23. 2024

가지요리팝업

댄스타임 마지막화

  빛은 더 강렬해져 태초의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의 의식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지민의 의식은 안개에 갇히듯 우주의 심연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세상의 모든 형태와 소리가 거대한 솥에서 끓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솥에서 끓고 있는 입자 중의 하나가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지민의 바이올린 소리가 점차 가늘어지더니 멈췄다. 맥없이 흔들리던 모기 거인은 정신을 차리고 지민을 삼키기 위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민의 귀에 들려오는 딱딱 울리는 소리, 우주의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한 이 소리는 무언가 친숙하고 그립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캐스터네츠의 리듬감이 지민의 의식을 깨웠다. 영채는 지민을 트랜스 상태에서 빼내기 위해 작은 손바닥이 빨개질 때까지 왼손에 캐스터네츠를 얹고 오른손으로 리듬을 치고 또 쳤다. 지민은 영채가 보내는 파장을 이해하고 우주의 혼돈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썼다. 곡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반복되는 거친 리프를 소화하고 지민은 온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영채와 도윤이 지민에게 달려왔다.


“어떻게 됐어?” 지민이 물었다.

“끝났어.” 도윤이 말했다.

나노봇 모기는 무력화되어 땅으로 떨어져 있었다. 생존자들은 시계 폰을 들어 거의 폐허처럼 보이는 이보나시티의 거리와 이곳을 까맣게 뒤덮고 기어 다니는 모기를 찍어 피드에 올리기에 바빴다.



  아리, 친구들에게 긴급 문자 보내줘.

‘가지요리 팝업 오늘 저녁 저 우리 집으로’

지민은 자생식물 키트에서 수확한 가지를 손질했다.

“아리, 이 가지구이 말이야, 할머니 레시피대로 하자면 마늘이 필요한데, 요새 마늘 구하기가 힘들잖아. 좋은 방법 없을까?”

“마늘을 대체할 만한 것은 양파나, 파, 생강, 아사파에티다 등이 있습니다.”

“아사파 뭐? 파, 생강도 구하기 힘든데, 그냥 소금이랑 후추를 뿌리자. 아, 간장도 조금 남았지. 지민은 칼집을 넣은 가지를 오븐에 넣고 굽고 간장을 살짝 바르고 소금과 후추를 뿌렸다.

지민은 고구마 가루와 물을 반죽해서 고구마 빵도 만들어 오븐에 구웠다.


  일주일 정도 시끌벅적했을 뿐 사람들은 빠르게 나노봇 모기 사건을 잊어갔다. 자본이 몰려있는 이보나시티는 곧 정상으로 복구되었으나 어드레스는 여기저기 거대-모기-고양이와 거대-모기-거인에게 받은 피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방치되어 있었다. 최상위 인공지능과 네트워킹하여 집단지성을 가진 나노봇-모기는 해제되었으나 여전히 피를 빨고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는 존재했다. 이전보다 수는 많이 준 것 같긴 했지만.


  영채와 도윤이가 집으로 도착했다. 셋은 차가운 물에 고수잎을 띄운 고수 차를 곁들여 가지구이와 고구마 빵을 먹었다. 도윤이 가지구이를 한입 잘라먹으면서 말했다. “요리한 걸 먹는 게 얼마 만인지, 고마워.” “그런데 모기 나노봇 사건이 정말 끝난 건가? 그 정신 나간 과학자 더벅머리는 어떻게 됐지? 영채가 말했다.

“설마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었는데 지자체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건가?”지민이 말했다.

“내가 좀 찾아봤는데 그 사람은 나노봇 모기 사건의 용의자로 잡혀가 조사받고 있는 모양이야, 본인은 끝까지 모기가 집단지성을 얻게 된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도윤이 말했다.

“모기가 AI에 접속해 음악으로 인간을 꾀어내고 급기야는 인간을 지배하려 했다니, 내가 겪었지만 정말 황당무계한 소설 같다. 뭐 소설은 별로 읽어본 적 없지만 말이야.” 지민이 말했다.

“와, 근데 지민의 바이올린 연주 아직도 생각하면 소름 돋아. 듣는 내내 감동받아서 눈물이 났다니까. 할머니가 물려준 바이올린에 그런 힘이 있을 줄이야!”

“네 캐스터네츠 연주도 너무 좋았어, 연주하다가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빨려 들고 있는데 네 소리가 날 구해줬다니까.”

“도윤이가 바이올린 현도 구해주고, 앰프도 만들어주고. 고생 많이 했지.”

“우리가 지구를 구하다니! 말도 안 되지 않냐? 우리 짠 하자"

셋은 잔을 들어 건배하고 웃었다.


  지민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리는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가로등 보수가 되지 않은 어두운 어드레스 골목에 작은 체구의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그는 이보나시티까지의 이보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인 굴굴천에 병에 든 뭔가를 방류하고 있었다. 하천 근처에서 윙윙대며 낮게 나는 모기들의 날갯짓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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