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냥, 여행

그냥, 여행

by 지민규


무엇을 위해 떠나는가?


모든 여행에는 목적이 있다. 누군가는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떠난다. 다른 누군가는 자신을 찾기 위해 순례길에 오르며, 누군가는 여러 나라의 사람과 문화를 마주하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모든 이들은 여행이라는 하나의 범주 안에서 각자의 목적이나 목표를 가지고 다른 여행을 떠난다.


그렇다면 내 첫 여행은 어땠을까... 순례길이나 문화를 배우러 가는 것처럼 거창한 이유는 당연히 없었다. 내 첫 여행은 오히려 보잘것없고 단순했다. 단지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하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나도 한번 가보자!라는 이유가 전부였다. 그래서 여행지와 코스도 간단했다. 런던에서 시작해서 파리와 뮌헨을 거쳐 로마로 이어지는 코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유명한 그런 흔하디 흔한 여행이었다.


로마와 뮌헨 사이, 베네치아에서


그렇게 뚜렷한 목표 없이 희미하게 시작된 첫 여행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선명해졌다. 친구와 여행의 모든 것을 공유하며 함께 나누는 것도 좋았다. 게스트하우스나 한인민박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다. 이런 사람과의 관계는 여행을 기분 좋고 선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 여행을 가장 선명하게 만든 것은 풍경이었다.


물론 대부분 도시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대단한 것을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나라, 그 도시, 그 위치에서만 볼 수 있는 그 모습들은 낯설고도 아름다웠다. 예를 들면, 첫 도시 런던이 그랬다. 런던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흐려지거나 비가 내렸다. 그래서 런던의 건물이 아무리 밝아도,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어둑한 분위기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어둑한 분위기 속에서 뜬금없이 빨간색의 물체가 나타나곤 했다. 런던의 2층 버스. 분위기에 맞지 않아 어색해 보이면서도 색다른 포인트를 주는 것 같아서 독특했다. 그렇게 빨간색의 버스와 어두운 분위기의 거리를 시야에 모두 담으면 런던만의 특별한 모습이 완성됐다.


런던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여행지는 각자만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이 너무 아름다웠고, 점점 더 내 여행의 목표가 됐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를 여행으로 이끌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표는 단순하지만 명확해졌다. 여행하는 시간 동안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하는 것. 그것이 10년 동안 이어진 내 여행이었다.

물론 이 여행에는 국내도 포함된다. 울릉도의 밤




나의 여행


얼마 전 안시내 작가님의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이라는 책을 읽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추억하며,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여행은 행복해 보였다. 대단한 풍경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호화로운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여행은 너무나도 특별하고 대단했다.


틀리다와 다르다는 차이가 있다. 틀리다는 정답이 있는 문제에서 잘못된 선택지를 고르는 것을 의미하지만, 다르다는 정답이 없는 수많은 갈래에서 각자가 나아가는 방향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여행은 작가님의 여행과는 달랐다.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고 작가님이 대단해 보였지만, 만약 내가 작가님의 여행을 직접 하게 된다면 그만큼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내 여행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나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물론 내 여행이 별거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유명한 장소에 놀러 가서 잠깐 감상하며 시간을 때우고 돌아오는 게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맞다. 주저리주저리 말을 써놨지만 그게 전부다. 대단한 이유도 없다.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그런 스토리도 없다. 근데 그게 중요한가? 틀린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가고 싶은 여행을 가는 것뿐이다.


나홀로 뉴욕




그냥, 여행

그렇게 첫 여행으로부터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다양한 나라와 도시를 다녔다. 여행을 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떠났다. 때로는 유럽의 좋았던 도시를 다시 가거나 새로운 풍경을 찾아가기도 했고, 때로는 로키 산맥의 풍경을 보기 위해 무작정 산을 걷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의 감상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날의 색감과 풍경, 날씨, 바람의 세기와 분위기 같은 여행의 모습들이 잊혀 갔다.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해서 스마트폰에 저장해 두고 가끔씩 돌려보기는 하지만 사진만으로는 기억을 온전히 남기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글을 남겨보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풍경부터 사람들을 만나면서 있었던 다양한 일들까지 여행에서 기억나는 부분은 전부 적어 보기로 했다. 무엇을 위해 여행을 가는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냥... 여행에 대해서 모두.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여행을 떠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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