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캐나다, 조프리 레이크 캠핑

캐나다 - 조프리 레이크

by 지민규


친누나와 함께 캐나다 여행을 했을 당시의 이야기다.


2017년, 캐나다에서 워홀을 마친 누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캐나다와 미국을 여행하고 싶어 했고, 시간이 맞았던 나는 그 여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나는 누나가 일을 그만두는 시기에 맞춰 밴쿠버로 넘어갔고, 그렇게 40일간의 캐나다, 미국 여행을 시작됐다.


그중 첫 여행지였던 캐나다는 밴쿠버에서 출발해서 로키산맥을 지나 캘거리를 찍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아주 단순했지만 열흘동안 보았던 풍경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수많은 설산과 그 사이로 만들어진 계곡과 호수는 정말 완벽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다뤄보기로 하고...


캐나다 여행을 끝내고 미국으로 내려가기 전에 우리는 마지막으로 누나가 좋아했던 장소에 가기로 했다. 누나가 쉬는 날이면 이따금씩 방문하는 장소. 그곳은 밴쿠버의 북쪽에 위치한 조프리 레이크였다.


캐나다 여행 중. 로키산맥에 위치한 모레인 레이크


조프리 레이크는 산을 따라 로우어, 미들, 어퍼 총 세 개로 나눠진 호수였는데, 호수가 예뻐서 밴쿠버 여행 중 당일치기 투어로 많이 방문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코스는 투어도 아니고 당일치기도 아니었다. 우리의 목표는 어퍼 조프리 레이크까지 올라가 캠프그라운드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투어와 당일치기 대신 자유여행과 캠핑이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우선 캐리어를 끌고 등산을 할 수는 없으니 캠핑용 등산 배낭이 필요했다. 구매는 어렵지 않았다. 캐나다 자체가 캠핑이 많은 곳이라서 캠핑 용품점은 넘치고 넘쳤다. 그렇게 함께했던 내 여행용 캐리어는 떠나가고, 새롭게 75리터 등산 배낭이 나를 찾아왔다. 등산 배낭뿐만이 아니었다. 캠핑에 필요한 침낭과 캠핑 장비들도 추가됐다. 많은 물품들이 새롭게 생겨나자 기존의 짐과 합쳐져 무게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상하다. 분명 좋은 곳 간다고 했는데? 그런 곳은 편하게 가는 거 아닌가? 아... 좋은 곳이 아니라 좋아하는 곳이라고..."


짐이 계속 추가되면서 앞선 결정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지만, 여행의 실권자였던 누님의 말에 반기를 들 수는 없었다. 결국 새로운 캠핑 도우미들을 배낭에 넣고 여행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휘슬러에 들러 장을 보면서 모든 준비를 끝냈다. 이제 남은 일은 어퍼 조프리 레이크까지 올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구글맵으로 봤을 때 난이도는 쉬웠다. 거리는 약 4킬로미터, 출발점과 도착점의 높이 차이는 340미터에 불과했다. 새로 산 캠핑 장비들이 어깨를 누르고 있었지만, 무리가 가는 정도는 아니었다.


조프리 레이크 가는 길에 잠시 들린 휘슬러, 약간 숲 속 동화마을 같았다.


시작은 좋았다. 출발점인 주차장에서 로우어 조프리 레이크까지 굉장히 가까웠기 때문에 등산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첫 번째 호수가 나타났다. 로우어 조프리 레이크. 울창한 숲과 그 사이로 만들어진 맑은 호수였다!라고 하고 싶어도 사실 여기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출발 시간이 늦어서 감상보다는 어두워지기 전에 어퍼까지 도착하는 게 중요했다. 여름이라서 시간이 넉넉하기는 했지만 혹시 모르니 해가 지기 전에 캠프그라운드까지 올라가는 것을 우선으로 두었다. 그래서 로우어는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만큼 빠르게 산을 오르지 못했다. 이유는 내 뱃속에 있었다. 정확히는 점심에 먹은 음식이 문제였다. 점심에 먹은 음식이 제대로 소화가 안 됐는지 등산과 소화불량이 시너지를 일으켰다. 그로 인해 숨은 차고, 머리는 어지럽고, 배는 소리를 질렀다.


어쩔 수 없이 등산을 멈추는 일이 자주 생겼고 속도는 늦어졌다. 유제품을 먹으면 그런 일이 가끔 있었는데, 휘슬러에서 마신 카페라테가 문제를 일으킨 것 같았다. 광활한 조프리 레이크의 등산로와는 반대로 내 속은 엉망진창이 됐다.


'그냥 내려가자'


이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거의 나올 뻔했다. 그러나 캠핑을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해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곳을 위해 새로 산 장비가 있었고, 등산을 끝내고 호수를 바라보며 먹을 일용할 양식과 맥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누님은 내려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동생이 사경을 헤매기 직전인데, 괜찮냐고 물어보며 계속 올라가기만 할 뿐 내려가자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아마도 "이 쉑(너무 착한 우리 동생) 데리고 어떻게든 올라가고 만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ㅎ


어퍼 보러 가는 길~ 참 흐리기도 하다~


이동과 휴식을 반복하면서 억지로라도 조금씩 올라갔다. 그러나 너무 무리를 했던 것일까? 코스를 반정도 올라갔을 때, 결국 먹었던 것들을 전부 게워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후로 상태가 갑자기 너무 멀쩡해졌다. 오히려 정상일 때보다 더 좋아졌다. 그전까지는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등산의 상쾌함만이 느껴졌다. 마치 그 한 번으로 모든 것을 내보낸 느낌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태 변화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허무하기도 했다. 그 고생을 하면서 올라갈 거였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비워내고 출발하면 됐을 텐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상황이 해결돼서 기분은 좋았다. 다시 어퍼 조프리 레이크를 향한 의욕이 넘쳐났다. 한 시간 동안 이어졌던, 길고 길었던 문제는 허무하게도 5분 만에 끝이 났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 시간이 많이 지체돼서 속도를 올리기로 했다.




사소한 문제도 있었다. 코스의 초중반을 지났을 무렵, 이번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흐리기만 했던 날씨가 어느샌가 비로 변해있었다. 내부의 문제가 해결되니 이번엔 외부에서 문제가 생겼다. 비가 꽤 많이 쏟아져서 금세 옷과 배낭을 모두 적셨다. 몸은 무거워졌고 속도는 느려졌다.


만약 계속 몸이 안 좋았다면 바로 내려갔을 만한 상황이었다. 참았던 그 한마디도 바로 내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괜찮아진 지금, 비가 오는 지금이 매우 상쾌했다. 몸상태가 좋아져서 홀가분한데, 비가 열기까지 식혀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로 흘러들어오는 빗소리가 너무 편안했다. 비가 내리기 전까지 산은 매우 고요했다. 날이 흐려서 등산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마을도 거리가 멀었다. 소리가 생길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그래서 등산길은 굉장히 적막했다. 오직 우리의 발소리와 가끔씩 오가는 대화가 전부였다. 그런 적막한 산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미들 조프리 레이크에 도착했다.


비가 오는 미들 조프리 레이크


그렇게 도착한 미들 조프리 레이크에는 한가득 비가 내리고 있었다.


쏴아아


빗소리를 표현하는 여러 단어들 중 이 단어가 지금 마주한 호수에 가장 잘 맞는 표현이었다. 무수히 많은 빗방울이 숲과 호수에 쏟아져 내리며 소리를 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빗방울이 떨어지는 호수를 바라봤다. 설산의 눈이 녹아서 만들어진 것인지, 호수는 맑은 옥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 호수에 하나의 빗방울이 떨어지며 작은 파장을 만들어 냈고, 이것들이 모여 호수 전체를 작은 파장들의 집합으로 만들었다. 빗소리와 함께 일렁이는 호수의 모습은 우리가 완전히 자연 속으로 들어온 것을 깨닫게 했다.


멍하니 호수를 바라봤다. 비가 몸을 적셔도, 짐들이 어깨를 눌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걸림돌을 넘어서 이런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우리는 휴식도 할 겸 잠시 호수에서 시간을 보냈다. 비록 날씨가 흐려 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비가 내리는 호수의 모습만으로도 미드 조프리 레이크에 올라올 가치는 충분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길에 올랐다.




등산은 계속된다.


초중반부터 계속해서 내리던 비는 등산의 후반쯤이 돼서 그쳤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비가 오는 조프리 레이크의 풍경도 남겼고, 상쾌함도 남겼다. 하지만 비가 남기고 간 것에는 단점도 있었다. 호수에서 느꼈던 것과는 반대로 우리의 상태는 그냥 거지꼴이었다.


깔끔했던 머리는 땀과 비에 젖어 떡이 됐고, 옷과 신발은 만신창이가 됐다.


땀과 비에 떡이 된 머리... 옷도 원래 좀 더 밝은 색이다. 얼굴을 가려놨지만 그래도 표정은 굉장히 신나 있다.


당시 어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며 만난 곰 조각상과 찍은 사진이다. 머리 빼고는 잘 안 보여도 상태는 꽤나 볼만했다. 나름 고생했다. 비와 자연에 가려져 깜박했지만, 몸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 더 산을 오르자 금방 어퍼 조프리 레이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뻗기 전에 도착했다.


해가 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우선 빠르게 캠핑 준비를 시작했다. 두 명이 간신히 들어갈만한 텐트를 치고, 침낭을 깔았다. 호수가 보이는 방향으로 캠핑용 의자를 설치하고 요리도구를 준비했다. 간단한 준비를 끝내고 빠르게 배를 채웠다. 그 후 마지막으로 요리도구를 정리하고, 짐을 쌓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


이제 모두 끝났다. 캠핑을 위한 준비가... 마침내 어깨를 짓누르던 가방을 내려놓았고, 등산으로 열을 내던 허벅지는 휴식시간을 가졌다. 단지 등산일 뿐인데 하루가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우리는 휘슬러에서 사 온 맥주를 꺼냈다. 그리고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눈앞으로 어두워진 호수의 모습이 들어왔다. 비가 지나가고 잔잔해진 호수. 고요했다.


띵!


짧은 효과음이 고요한 호수를 울렸다. 우리는 맥주를 맞부딪혔다. 조용히 한 모금을 들이켰다.


"하아..."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렇게 길었던 하루가 지나갔다.


등산 후 맥주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지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침낭을 꽁꽁 싸매고 잠에 들었지만, 아래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잠에서 깬 나는 조용히 텐트를 나왔다. 그리고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어퍼 조프리 레이크를 바라봤다.


새벽의 호수는 작은 물결조차 일렁이지 않았다. 호수 바닥이 모두 보일 정도로 맑았고, 산의 모습이 그대로 반사될 만큼 잔잔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고요한 호수는 추위로 인해 서늘하기까지 했다. 들이마시는 숨에서 분위기가 온전히 느껴졌다. 서늘함과 상쾌함 그 어딘가의 느낌.


그런 정지된 호수에서 유일하게 시간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는 안개였다. 호수에서 만들어진 안개는 산의 능선을 따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능선의 끝에 올라 구름뭉치와 이어졌다. 그렇게 흰 백색의 구름과 모든 것이 멈춰버린 맑은 호수가 풍경을 완성했다.


오전 6시. 어퍼 조프리 레이크


그것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캠핑을 마무리했다.


"여기는 너무 완벽한 곳이었다. 그리고 정말...




정말...




정말로...




격하게...




씻고 싶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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