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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영토

by 뜰에바다

'주류'가 아니라 '주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비움'과 '내려놓음'을 연습하는 것일까? '하늘 영토'에 한 발 내딛는 과정일까? 두 가지 다다. 하여 시행착오를 겪고, 때로 낯선 감정에 휘둘리기도 한다. 섬기는 재단에 중요한 평가가 있었다. 평가 날짜가 나왔지만, 전면에 나설 필요 없는 직책이므로 한 주간 동안 눈치껏 돕는 일만 했다. 당일은 평소보다 1시간가량 일찍 출근했다. 도착하니, 이미 근무자들이 다 모여 미팅 중이었다. 조금 일찍 출발해야 했구나, 싶어 엉거주춤 뒷자리에 가 앉았다. 그때 교육 중에 대표가 말했다.

"오늘 하루 쉬셔도 될 것 같아요. 주말에 근무했으니."

"그래요? 와우, 이 좋은 소식을 진즉 알려주시지요! 저도 직원 면담에서 표적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중이었습니다. 당장 오늘 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내일로 바꿔놓고, 조용히 사라지겠습니다."


당일 평가 중에 해야 할 프로그램은 꼼꼼하게 시연해 놓았었다. 프로그램실이 아닌, 쉼터에서 진행할 것과 시간과 순서까지 말이다. 미팅이 진행되는 동안 얼른 월정 표를 바꿔서 게시하고, 미팅이 끝났을 때 1시간가량 나름 전체적인 환경을 살펴봐 준 후, 09시 3분 전에 재단을 되돌아 나왔다. 그런데 건물을 벗어나면서 걸음이 느려졌다. 이것저것 고민 탓에 전달이 늦었을까? 사람의 감량이 안 돼 보여, 포기한 것인가? 마음은 부담에서 벗어났지만, 이 중요한 날에 돌아서는 걸음이 몹시 생소해서 서걱거렸다. 하여 양념처럼 곁들여지는 생각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내가 주변인으로 산 지 3년 차다. 그때 무겁게 짓누르던 짐이 없어지니, 얼마나 기뻤던가! 1년가량은 매일 환호하고 춤추었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주류가 아니라 주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몇 번은 주류가 아니라는 슬픔의 강을 건너야 했다. 또 몇 번은 늙음을 인정하고,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경계선에 서 있음을 발견한다.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인 것이 자연스럽고, 나그네 인생이 몸으로 체득될 때, 비로소 하늘의 영토가 넓어질 것이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모든 인생의 공통분모일 것이다. 젊을 때부터 하늘 영토를 가졌다고 하면서도 '말로만 나그네'였지 않은가? 그래서 생로병사가 있다. 신은 인간을 늙게 하고, 주류에서 떠나 주변인으로 살게 하다가, 나그네임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주류인 줄 알고 이 세상의 것들을 놓지 않으니까. 내려놓는 방법도 모르니까.


이용규 선교사(전 몽골 국제대학교 부총장, 현 자카르타 국제대학교 설립 운영자)의 《내려놓음》(규장, 2006)을 읽어보면,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래가 보장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바로 몽골 선교사로 들어간다. 공부하면서 2년간 선교사로 헌신하겠다는 약속부터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신은 몽골에서 그에게 뜻하지 않은 많은 일들을 맡겼다. 그 과정이 책에 담겼다.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니라 맡김이다. 내 삶의 주도권을 신께 양도하는 것이다."

《더 내려놓음》(규장, 2011)에는, 자신이 계획한 일이 아닌, 신이 허락한 사역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나 내려놓을 때, 또 다른 길로 인도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담았다. 아울러 자기애와 인정욕구마저 내려놓을 때의 무한한 평화와 자유로움을 피력했다.

"내려놓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일의 선택이다."

《같이 걷기》(규장, 2013)에는, 신은 '일'이 아닌, 그저 '동행'을 바람을 간증했다. 그의 삶과 사역 속에서 생생하게 뿜어내는 말들이어서, 호소력이 컸다.

"주님과 같이 걸으면 하나님을 누리는 기쁨을 맛본다."


영화 《인턴》(미국 낸시 마이어스 감독, 2015)의 주인공 밴은 은퇴자로서 70세에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의류 쇼핑몰에 인턴으로 들어간다. 처음에 CEO 줄스의 비서 역할을 배정받는다. 하지만 CEO는 탐탁지 않게 여겨 며칠 동안 일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밴은 미소를 잃지 않고 진중한 자세를 취하며, 눈치껏 일하고, 따뜻함으로 회사 직원들과 소통했다. 결국은 CEO의 비서로서 제대로 일하게 되고, 회사와 가정사를 상담하는 친구가 된다. 남편의 외도로 1년 반 만에 성공 신화를 이룬 회사 경영마저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는 CEO로 하여금 다시 회사 경영에 뜻을 두게 한다. 보는 내내 미소 짓게 하는, 인생 영화다.


'이용규'나 '밴' 같은 사람이라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미 충분히 내려놓아, 하늘 영토에 발 딛지 않았는가. 하여 유쾌하게 남을 돕는 이들이 아닌가. 여러분이여, 익숙하지 않은 것은 지나쳐서다. 경계선에 있는 것은 모자라서다. 남은 삶 동안 주류로서도 살아야 하지만, 그 후에는 주변 사람으로서, 나아가 나그네로서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처음부터 주변 사람이요 나그네인 것을 알고, 실제 하늘 영토에 마음 두는 삶은 값지다. 진실한 하늘 영토 소유자니까. 이 세상을 초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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