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폭염 속에 깜짝 만남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간혹 만나기도 했지만, 그룹으로는 35년 만에 대학 여자 동기들을 만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수한 세월이 흘렀건만 만났을 때 전연 놀라지 않았다. 20대 처음 만났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이 차이도 있고, 겉모습에 주름살이 생기고, 상당히 노화가 진행되었다. 각종 질병을 안기도 했다. 그럼에도 35년 전의 이미지와 거의 똑같았다. 그때 퍼주기를 잘했던 친구는 지금도 퍼주기를 잘하고 있었다. 그때 예쁘게 꾸몄던 친구는 지금도 세련된 외양을 갖췄다. 그때 귀요미였던 친구는 지금도 귀요미였다. 그때 돈이 모자랐던 친구는 지금도 돈이 모자랐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게 인생이었다. 그게 삶이었다. 사람은 생각하고 사고하는 대로 나아가게 마련이니까.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요, 발견이었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서 한 친구가 점심과 차를 다 담당했다. 수원 갈빗집과 경치 좋은 스카이라운지 카페의 한 공간을 5시간가량 빌려서 노는 경비를 말이다. 거기에 그 친구가 모두에게 용돈까지 두 장씩 내밀었다. 그렇게 친구들을 대접하려면 상당한 출혈일 것이다. 모두가 깜짝 놀라면서도 박수로 환호했다. 그때 그 친구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제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한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만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젊은 날에 그 친구가 돈이 모자라는 것을 간간이 들었으므로 감동이 더 컸다.
2년 전,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절친이 퇴임 후 얼마 지났을 때, 자꾸 용돈 이야기를 했다.
"무슨 용돈이야. 나 책도 있고, 쌀도 있어."
두어 번 그냥 넘겼다. 어느 날, 함께 은사님을 찾아뵙고 밥을 먹을 때 그 친구가 은사님께도, 내 주머니에도 예쁜 봉투 하나를 넣었다.
"무슨 일이야?"
"필요할 때 써."
"?"
헤어져 집에 와서 열어보니, 1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어떤 감동이 목울대 저 깊은 곳에서 천천히 눈시울까지 올라왔다.
《돈 벌어서 남 주자》(양승호. 행복우물, 2015)라는 책이 있다. 부제는 <이타주의 경영의 이론과 실제>이다. 기업의 대표가 기업을 경영하는 목표는 어디까지나 이윤추구이다. 이윤이 생겼을 때 그중의 일부를, 이웃을 위해 내놓는다. 그런데 그 책에서 저자는 이윤의 일부를 나눌 때마저도, '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극화되고, 반목과 질시가 더 심해진다'라는 것을 근거로, '이타주의 경영'을 주장한다. 아무리 경제 대국을 이룬 들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전 세계에서 거의 꼴찌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여 이타주의 경영만이 '경제도 살리고, 행복지수도 높이는 길'이라고 설파한다. 그것은 아브라함 매슬로우(미국, 1908~1970)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작고하기 전 두해 전에 자신의 동기이론에 추가한 제6단계 인간의 욕구, '자기 초월 욕구'와 맞닿았다.
더 자세히 보면, 1장에서 로버트 실러 교수의 '인간의 야성적 충동'을 제시한다. 아울러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 이론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동기 구조를 분석한다. 2장에서는 이타주의 경영 사례를 소개한다. 첫째는, 경주 최부잣집 가문의 '이웃 살리기 정신'이다. 둘째는, 유한양행의 창시자 유일한 박사의 '이타적 기업 운영'이다. 셋째는, 미국 월트 디즈니의 '나눔을 실천한 삶'이다. 이 사례들로 저자는 기업의 이타주의 경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3장에서는 '이타심을 기르는 독서 12선'을 추천한다. 『신약성경』을 비롯하여,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 『명심보감』 추적,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엄마의 말뚝』 박완서, 『바베트의 만찬』 이자크 디네센, 『제인 에어』 살롯 브론테, 『가시고기』 조창인, 『가난한 사람들』 빅토르 위고, 『더버빌가의 테스』 토마스 하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셀 실버스타인, 이다. 이 책들이 이타심을 기른다는 주장이다. 4장에서는 실제로 저자가 자영업자들을 도와서 편의점을 재기하게 한 것과 출판사 성장에 이바지한 것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돈 벌어서 남을 준 사람이 있다. 고 장응복(의사, 1923~2022) 장로이시다. 크리스천 투데이(이대웅 기자, 2023.02.18)의 뉴스에 의하면, 별세한 다음 해에 국민 추천 포상으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고 장응복 장로는 평생 모은 전 재산 113억 원을 인재 양성에 써 달라며 2022년 한동대학교에 기부했다. 그러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며 기부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돈 벌어서 남 주자'는 인생철학으로 자신을 위해서는 무섭게 절약하며 돈을 모았으나, 한동대학교 교육 철학이 '공부해서 남 주자'인 점에 감동해, 기부했다고 한다.
고 장응복 장로는 6.25 전쟁 때 월남한 이후, 의료 인프라가 열악했던 1960년대부터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챙겼다. 한밤중에도 병원문을 두드리는 환자들을 기꺼이 진료했다. 때로는 의료비를 받지 않았다. 자기 소유 자가용 하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가족 모두 검소한 생활을 했다. 세 명의 자녀 또한 흔쾌히 아버지의 뜻을 따라 유산 상속 포기 각서를 썼다고 전해진다.
물론 돈 벌어서 남 주는 사람이 고 장응복 장로 한 분뿐이 아니다. 아주 많기에 이 사회와 나라가 잘 굴러간다. 내 곁에 있는 친구들도 그중의 한 사람들이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돈이 많아서 남 주는 것이 아니다. '남 주자'라는 마음과 철학이 있어서 남 주는 것이다.
젊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이유, 돈 벌어서 남 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다고 이제 젊음을 잃었는데, 은퇴가 가까워져 오는데 돈 못 벌었다가 한탄하지는 말자. 벌은 사람이 남 주면 된다. 나같이 '부'(富)가 낯선 사람은 할 수 없다. 다른 것으로 사회에 이바지하자. 대신 기업가나 재산가들은 돈 벌어서, 혹은 돈 벌었으니 남 주자. 밥 걱정 안 한다면 밥 나누자. 어리석은 부자는 돈 벌어도 자기 배만 위했으므로, 죽었을 때 그 돈이 다 썩었다. 내 목숨이 다하는 날, 어떤 모양으로든 돈은 썩을 것이니, 미리 남 주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