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되고 부패한 마음
(마음을 훔치는 도둑이 누구일까? 연인. 마음이 무거운 사람에게 필요한 운동은 무엇일까? 마음 들기 운동. 마음이 부패하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진심)
지난 몇 주간, 나는 마음에 실금이 갔다. 짜증이 올라오고, 답답하며, 무거운 짐을 진 듯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누구나 겪는 스트레스였는데, 내 마음의 흐름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한 달이 되어서야 겨우 나의 고정된 생각을 읽었다. 몹시 굳은 마음을 보았다. 트라우마 작동도 눈치챘다. 무엇보다 통제받는 것이 낯설어서 유연성이 전연 없었던 것도 발견했다. 불편함의 이름을 알고 나니, 금 간 마음에 햇빛이 들고, 감정이 정화되고, 근육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든 이름을 붙이면 일단락된다. 해결 모드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벨링이 중요하다. 일단 라벨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읽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치유되기 때문이다. 하여 라벨링은 빠를수록 좋다. 길면 길수록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심리학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야 본격화했다. 1879년 빌헬름 분트(독일, 1832~1920)가 라이프치히 대학에 '심리학 실험실'을 설립하면서였다. 실로 인류가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며 그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 게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늦깎이로 출발한 심리학이 21세기에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만들어낸 세상 문명의 이면에는 수많은 상처와 왜곡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견고한 진을 치고 있으므로, 그것은 필수 불가결인 현상이다.
왜 그런가? 심리학에 의하면, 사람의 '자기 보호와 욕심' 때문이다. 철학에 의하면, '도덕적 타락' 탓이다. 하지만 성경은 아주 정확하게 일괄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다." (예레미야 17:9)
그렇다면,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신 안'에서 이미 쉼을 얻은 마음들도 똑같은가? 그렇다. 똑같다. 그것이 바로 2천 년 전, 예수가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예수의 빛으로 '자주 돌이키는 차이'이다.
다시 말하면, 신본주의가 사라지고, 인본주의가 대두한 19세기 이후 세상에서 심리학이 폭발적으로 꽃을 피우게 된 것은 사람의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이 한몫한다는 것이다. 신을 의지하던 시대에는 사람이 '신의 빛'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하지만 인본주의 세상에서 사람의 마음은 갈 곳을 잃었다. 하여 상한 마음이 어디에서도 해결 받지 못한 채, 가정을 넘어 학교로, 사회로, 직장으로 흉측하게 노출되었다. 그러다 보니, 냄새가 나지 않고 색깔이 없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은 인간관계, 사회, 자기 영혼까지 썩게 했다. 그것이 현대에 수많은 정신·심리학자와 상담자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매번 다짐해도 반복하여 거짓을 행하는 '자기'가 증거이다. 큰마음으로 용서했지만, 다시 올라오는 '분노'가 증명한다. 새 출발을 결심해도 며칠 가지 못하는 '심약한 의지' 또한 반증 물이다. 결국 마음의 부패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본성의 문제다. 사람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불치병이다. 죄 문제인 것이다.
차제에, 당신과 내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을 열거해 보자.
첫째, '위선'을 보라.
진실보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마음이 우선한다.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미워하거나 경쟁심을 품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는 '괜찮아요' 하면서도 뒤에서는 아니요, 다. 나아가 표면으로는 칭찬하고 예의를 갖췄지만, 이면에서는 사람을 조종하고 이용할 궁리를 한다.
둘째, '이중기준'을 보라.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변명으로 자기를 포장한다. 자신은 용서받길 바라면서 남은 냉정히 판단한다. 자기 행동이 옳지 않다고 느끼지만, 무시하고 상황을 모면한다. 여러 가지 선택 사이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 자기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한다.
셋째, '비교·욕심'을 보라.
남이 잘되면 불편하고 질투가 생긴다. 남보다 뒤처지면 불안하고 불행하다. 하여 자기 개성을 잃어버리거나 자기혐오에 빠져든다. 또 자기의 가치를 '소유'로 평가한다. 소유하는 기쁨이 일시적인 쾌락을 주니, 더욱더 욕심을 부린다. 남의 것을 슬그머니 빼앗기도 한다.
당신, 1년 365일 부패한 마음에서 나온 수십·수백 가지의 감정에 맞춰 춤출 수밖에 없는가? 작은 인생으로서 어찌 그 어려운 수고와 무거운 짐을 감당하겠는가! 자주 일렁이는 감정을 들여다보아라. 수시로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읽고 라벨링 하여라.
하여 짜증 대신 용서, 미움 대신 사랑, 분노 대신 감사, 절망 대신 희망으로 안내받아라. 예수, 그가 곁에 있으면 한결 그 속도가 빠르다. 당장은 상한 마음이 거부한다 해도 새 마음을 심어주는 그를 만나면 보다 빨리 해결된다.
"내가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가운데 주리니, 내가 너희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 같은 마음을 너희에게 줄 것이다." (에스겔 3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