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들의 백합화나 공중의 새처럼 살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 걱정 없이 자유롭게 날갯짓하며, 일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미학을 드러내며,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그러나 사람은 자연과 세상을 위해 일하도록 설계되었다. 물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있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에게 일이 필요악은 아니다. 본분이다. 양식이다. 소명이다. 축복의 일부다. 따라서 일에는 귀천이 없다. 일하지 않는 것보다 일하면서 오히려 무한한 기쁨을 얻는다. 일의 연장선에서 갖는 쉼이 얼마나 큰 행복과 안식을 가져다주는가!
삼성그룹이 10년간 신입사원들에게 추천한 책, 이나모리 가즈오의《왜 일하는가?》(신정길 옮김. 도서출판 서돌, 2010)는 6장으로 구성되었다.
1. 왜 일하는가?
2. 일을 사랑하는가?
3. 어디로 가는가?
4. 무엇을 꿈꾸는가?
5. 일에 만족하는가?
6. 창조적인가?
그중에는 시선이 가는 소제목들이 많다. 21년 개정판으로 단장되면서 더 많이 눈에 띈다.
• 천년을 생각하며 집을 짓듯이.
• 간절한 몰입.
• 신이 손을 내밀어줄 때까지.
• 작은 일에도 크게 감동하라.
• 스스로를 태우는 사람이 되어라.
• 잠재의식에 닿는 순간 기회가 찾아온다.
•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새로운 출발점이다.
• 고난도 행운도 영원하지 않다.
• 99%도 부족하다.
• 최고가 아닌 완벽을 꿈꿔라.
그래서 왜 일하는 가에 대한 작가의 조언들이 한평생 생존과 실존을 위해 일하며 사는 인생들에 도전이 된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보다는 우선 주어진 일을 좋아하려는 마음부터 가져라.", "충실한 오늘을 매일매일 계속해 나가라."는 말은 압권이다.
팀 켈러의《일과 영성》(최종훈 옮김. 두란노서원, 2013)에서는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그는 일하는 사람의 마음을 중시한다. '사람이 일하다가 지치는 것은 일이 탐욕의 수단'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 하되, '성공의 쳇바퀴를 따라 무작정 달리기만 하면' 안 된다. 경쟁 구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되고, 인생이 통째로 일에 빨려 들어가' 망가질 수 있다. 한쪽으로 기울면 생기는 일의 또 다른 이면이요, 파괴성이다. 따라서 작가는 일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선한 수고는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나하나가 영원무궁한 가치를 갖는다."
"일에는 반드시 선물이 있다."
"노동은 신의 사역과 연결된다."
요즘 세대와 세태를 잘 보여주는《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 웅진지식하우스, 2018)는 출간된 후 지금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올해 개정증보판에서는 4부로 구성된 큰 제목들을 더 세련되게 바꾸었다.
1.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나; 열심히 산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2. 한 번쯤은 내 마음대로; ‘더’ 말고 ‘덜’하며 살아보기
3. 먹고사는 게 뭐라고; 남들과 발맞추지 않을 용기
4. 하마터면 불행할 뻔했다; 속도를 줄이면 다르게 보인다.
무민(mean) 세대로서 소확행을 꿈꾸는 작가의 날갯짓이 독수리의 그것처럼 신선하다. 그래서 자신의 속도를 중시하고, 자신에게 맞추어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겠다는 소신으로 읽힌다. 그것이 그의 말이 잘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주에 참여하지 않겠다."
"길은 하나가 아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 찾기"
"느려도 괜찮아."
"나만의 속도로 살아갈 결심"
여러분은 왜 일하는가? 어떻게 일하는가? 금수저가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일하는가? 금수저도 일한다. 금수저여서 더 일 할 수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무조건 생존 때문에 일한다고 말하지 말라. 일은 생존과 실존 사이에서 인생을 값지게 하는 근간이다. 일의 근원은 신으로부터다.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느라고 바빴던 신이 최초의 일꾼이었다. 사람이 신의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것에는 일(노동)이 포함된다. 생존 문제는 그다음이다.
신이 사람의 생존 문제를 책임진 때가 있었다. 기원전 1,446년이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다. 이집트를 탈출한 사람들(sampler)이 광야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다. 그때 하늘에서 쌀과자 같은 양식이 내렸다. 사람의 형편을 아는 신이 한 일이었다. 그것이 40년간 지속되었다. 그들은 평생 동안 생존 문제를 걱정하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무한히 행복하고, 더 없는 만족감이 그들의 삶이어야 했다. 노래와 감사가 그들의 인생이어야 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얼마 안 가서 다른 것으로 불평하기 시작했다. 쌀과자가 맛이 없다. 덥다, 춥다, 힘들다, 먹는 것이 왜 매일 똑같은가...? 낮에는 더위를 구름으로 덮어주고, 밤에는 불기둥을 세워서 온기 가운데 쉬게 해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그들을 사랑하는 신이 그들이 광야에서 다 죽기까지 40년을 기다렸을까!
요즈음, 욜로족에 이어 파이어족이 대세다. 가능하면 많이 놀고 많이 웃자는 인생관이다. 여백을 가지고 자신의 재량과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살겠다는 결심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단 기간 평생 먹을 것을 쌓기 위해 투기에 투신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것은 잘못되었다. 40대 이후에는 일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며 행복하겠다는 생각은 미숙한 착각이다.
일은 실존의 양식이다. 소확행의 중심이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꽃밭을 가꾸듯이 일해야 한다. 다시 팀 켈러의 말을 들어보자.
"일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다."
"일은 목적이 있는 소명이다."
"자신만을 위하지 말고 세상을 위해 땀방울을 흘리라."
"일에 대한 이원론을 배격하라."
"일은 단순히 밥벌이가 아니라 소명이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 지음 받았고, 일할 때 가장 행복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