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곡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나의 사건이 변곡점이 되기도 하고, 서너 개가 몰아쳐 와서 생의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혹은 두세 차례 과정을 거쳐서 점진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성 오거스틴은 방탕과 이단에 빠져 있다가 30세 때 변곡점을 맞이했다. 가장 반항적인 개종자로 알려진 C.S. 루이스도 15세에 상상력의 세례를 받았지만, 철저한 무신론자로 있다가 서서히 유신론자가 되더니 31세 때 완전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학창 시절부터 교회룰 놀이터 삼았던 나의 지인들도 변곡점이 서로 다르다. 그것은 이성과 감정을 제압하는 찐민(mean)을 만나, 서서히 혹은 폭발적으로 나를 투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0대에 찐민을 만나면 80년이 가치 있고 행복하다. 30대에 만나면 70년이 그러하다. 노후에 만나면 행복한 죽음으로 귀결된다.
저녁 어스름에 산책하려고 공원에 나가니, 어김없이 들고양이 맘이 있었다. 잠깐 목례를 했다. 들고양이 맘이 먹이를 준비하면서 큰 소리로 불렀다.
“아가!”
어디선가 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들고양이가 응애, 했다. 잠시 후 다른 곳에서도 응애, 했다.
“거기 있었니?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밥 줄게."
들고양이 맘은 60대 후반이다. 60대 맘이 여름이나 겨울이나 매일 승용차를 타고 와서 들고양이들을 챙기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의 시선으로는 기이하기까지 하다. 애완견을 업고 다니는 맘을 봐도 똑같이 복잡한 생각이 올라온다. 포대기를 예쁘게 매서 업었는데, MZ세대라면 이해가 갈 듯도 하나, 꼰대인 것이 이상하다. 그래도 곧 미소를 짓는다. 겉모양은 무민(mean)으로서 각 양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들고양이 맘이든, 전 세계를 날아다니는 사업가든, 여행자든, 회사원이든 말이다. 다만 그 속에 찐민이 있어 더 행복하기를 희망할 뿐이다.
나의 변곡점은 21세, 12월이다.
“윤 선생 있어요?”
작은 방에 틀어박혀서 어수선하게 흐트러진 책들과 씨름하고 있다가 마지못해 겉옷을 걸치고 나갔다. 반가운 목소리가 아니었으므로 느릿느릿 걸어 나가 대문을 땄다. 벌써 입은 퉁퉁 부었다. 왜 자꾸 오시나? 분명하게 거절하지 않았나? 그때 목사님은 집안으로 들어설 생각도 없이 문간에 선 채로 말했다.
“오늘은 이것 주려고 잠깐 들렀어요. 이게 많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목사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멀리 땅끝을 보고 있던 시선을 옮겨 목사님의 손을 보았다. 한눈에 보였다. 문방구 이름이 찍힌 하얀 비닐봉지에 책이 아니라 새 원고 뭉치, 그것이. 목사님이 새 원고 뭉치 다발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았다. 묵직했다. 그런데 새 원고 뭉치를 받자마자 내 미간이 알 수 없는 울화로 파였다. 파르르 눈이 떨렸다. 눈을 감았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불청객이 눈과 코로 찌릿하게 올라왔다. 그러더니 곧 물줄기가 되어 봇물 터지듯 앙다문 내 입술 위로 우르르 흘렀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시선을 피하여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한마디도 안 했다. 고맙다는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섯 번일까? 여섯 번일까? 어쩌면 일곱 차례 같기도 했다. 목사님은 매번 동네 올라온 길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우리 집에 들렀다. 나는 여고를 졸업했으니 취직해야 한다는 엄마의 당위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벌써 2년 집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글로 한판승 할 것 같았던 꿈마저 빛을 잃었다. 생산적이지 않은 무위도식은 글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불편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타고 시골 동네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와 준 목사님이 고맙지 않았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교회를 새로 세워 단장한 이답게 잊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찾아왔다.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 것은 마음이 여린 것뿐, 다른 여지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목사님이 돌아서자 엉거주춤 서서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하고 대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몇 주일 후, 내가 이끌리듯 교회를 찾았다. 새해 벽두의 한밤중이었다. 무엇도 하지 못하는 자괴감보다는 실제로 글을 써서 나누곤 하던 K가 승려가 되겠다고 산사로 들어간 즈음이었다. 그날은 산사에서 세 번째로 K를 만났다. 귀갓길,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듯 헛헛했다. 걸음도 휘청거렸다. 주일이 아니었다. 여고 때 친구들을 따라 간헐적으로 나가던 C 교회도 아니었다. 그저 불이 켜져 있었으므로 들어갔다. K가 산사에서 법복 입은 것을 확인한 날, 산사가 아니라 동네 교회를 찾는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변곡점이 꼭 불꽃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유명한 어떤 이들의 그것처럼 후손 대대로 읽히는 기적이 아닌, 조용한 일상의 연속지점일 수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면서 맞이하기도 한다. 다만 그것은 나를 제압하는 것이다. 나의 정신과 나의 지성과 나의 감정을 뚫어, 나의 전 인생을 관통하는 것이다. 청춘들이여, 변곡점은 단번에 찾아들기도 하지만, 자신의 행적을 따라서 은밀하게 찾아온다. 무엇이든지, 어디든지 참여하라. 최소한 열 번씩은 최선을 다하라. 기회는 사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림자에 묻혀 어떤 것도 발 딛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