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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뜰에바다 Sep 21. 2024

몸은 부서진다

밤새, 목과 어깨통증으로 얼마나 뒤척였는지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무겁게 짓누르는 오른쪽 어깨통증이 기존의 왼쪽 어깨 석회 통증을 능가했다. 귀뿌리로는 수초마다 화살로 쏘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자세히 보니 목덜미 통증 자리에 도톨도톨한 붉은 반점도 생겼다. 간신히 출근했으나 참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오후 반차를 쓰기 전 점심시간, 가까운 정형외과를 찾았다.

"목 디스크가 생겼는지, 오른쪽 어깨 중심으로 통증이 심합니다."

"사진을 찍어 보지요."

결과, 목 디스크로서 목뼈 5번과 6번 사이에 협착이 있다고 했다. 영상을 보니, 협착이 분명했다. 일단 2일 1회 물리치료 하기로 정하고, 프롤로 주사를 맞았다. 독한 진통소염제도 하루 3회 7일 치 처방받았다. 소용없었다. 그 밤, 폭풍의 전야 같은 이상한 통증에 시달리며 비몽사몽 중, 하얗게 새웠다.


다음날, 기존의 통증에 이어 오른쪽 뒷머리에 1초마다 전기감전 같은 통증이 새로 나타났다. 목덜미에서부터 오른 손목에 이르기까지 팔 전체에 붉은 반점도 솟았다. 대상포진? 중요한 업무가 있어 출근이 불가피했다. 오전 업무를 마치자마자 점심시간, 다시 정형외과를 찾았다. 어제 본 의사는 수술 중이라 다른 의사가 보고, 대번에 말했다.

"대상포진이에요."

"대상포진이 팔에도 오나요?"

"가끔 팔에도 요. 흔하지는 않아요. 통증이 심하니, 진통제 주사 2대 맞고 가세요. 치료 약은 시간 맞춰 드세요. 저녁 5시 이후 한 번 더 오셔서, 신경차단 주사 맞으세요. 조금 수월할 거예요."

점심을 기준으로 항바이러스 치료제를 복약했다. 진통제도 털어 넣었다. 견디기 어려웠다. 퇴근 후 신경차단 주사를 맞지 않을 수 없었다. 밤에 다행히 귀뿌리로 수초마다 이어지던 통증은 멈추었다. 대신 뒷머리를 관통하며 칼로 찌르는 통증이 심해졌다. 어깨와 팔에는 욱신거리는 통증이 전체를 휘감았다. 그 밤, 처치 덕분에 목과 어깨와 팔의 반란에도, 잠깐씩 잠은 잤다.


대상포진 치료 4주가 지났다. 병원을 통증의학과로 바꿔, 신경 주사 네 차례와 진통 수액 처치 세 차례를 더 했음에도 그때뿐이었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통증이 10중 7에서 머물렀다. 가려움이 나타나, 팔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여전히 앗, 전기가 흘렀다. 팔의 신경을 따라 왕 쐐기벌레가 들어있는 듯, 쏘면서 기어 다녔다. 팔에 힘이 빠지고 저려서 수저질할 때 파킨슨처럼 흔들렸다. 목덜미 통증에 매여 72시간 이내에 초기증상을 잡지 못한 결과였다. 20대 초반 1차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 진통제만으로 열흘 후에 회복한 것과는 근본이 달랐다. 그때는 건강해서 회복이 빨랐을 뿐이었다. 큰 병을 앓고 누웠다가도 며칠 쉬고 거뜬하게 일어난 것도 젊기 때문이었다. 나이 들어 몸이 쇠락하니, 통증의 정도가 달랐고, 치료가 쉽지 않았다.

차제에 '몸이 흙'이라는 사실이 저절로 음미되었다. 익히 알고 있는 명제였으나 현재진행형 대형 통증을 앓으면서, 온몸으로 체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몸은 흙이다. 신이 사람을 만들 때, 흙으로 만들었다. 몸이 쇠락하면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백만장자나 가난한 이나 차별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이 몸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듯이, 신이 몸 안에 넣어 준, '영혼'을 위하여도 시간 내자고 하면, 대부분 똑같이 핑계를 댄다.

"바빠요. 지금은 죽을 시간도 없어요."

죽을 시간도 없을 만큼 분주하게 살지만, 무엇을 위한 것인가? 몸을 위한 것이 아닌가? 돈을 위하여, 혹은 몸의 쾌락과 소비를 위한 것이 아닌가? 좋은 음식, 영양 보충제, 쾌락적인 소비, 많은 운동기구, 다이어트 용품... 모두가 몸을 위한 것이다.

몸에 대한 현대인의 지극정성은 끝이 없다. 건강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다. 거의 신봉 차원이다. 문제는 한번 '몸이 신'이 되면 거기에 노예가 다는 것이다. 그것은 '돈에 집착'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전 인생을 불살라도 끝나지 않는다. 몸이 흙이 되어야 겨우 일단락된다. 돈과 물질과 소비에는 상한선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Pew) 리서치센터가 2021년, 세계 선진국 17개국 1만 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다.

"당신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선진국 14개국에서 1순위가 가족(38%), 2순위가 직업(25%)이었다. 물질적 풍요(19%)는 7순위였다. 대한민국은 '물질적 풍요'가 1순위였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올랐지만, 아직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 시선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소확행을 꿈꾸는 이들이여! 2024년, 여러분이 위의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한 가지만 명심하라. 몸은 흙이다. 몸은 부서진다. 물질도 흙이다. 명품도 흙이다. 지금 강인한 힘을 가졌어도 시간이 지나면 쇠락하고 썩을, 부서질 몸, 그것에 인생을 걸말라. 사람이 일생을 걸고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따로 있다. 몸은 소중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몸은 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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