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1970~)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아시아 여성 최초, 21세기 최연소로 제124차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애국자다. 많은 이들이 각종 상으로 조국의 위상을 높이지만,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날아온 소식만큼 우리가 압도적으로 열광하고, 전 세계가 놀란 것은 처음일 것이다.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대로 매년 인류를 위해 독창적으로 헌신한 사람을 선정하여, 노벨의 사망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상한다.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세계 최고 권위 있는 상이요, 평화·문학·화학·물리학·생리학 또는 의학·경제 등 6개 분야에서 1901년 처음 시작했다. (경제상은 1969년 추가)
대한민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니, 같은 국민으로서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하다. 아울러 큰 상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상은 영광이다. 명예이다. 기쁨이다. 또한 성취이다. 그 흠모할 만한 상이 경쟁심과 승리욕이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일까? 경쟁심이나 승리욕이 없는 사람에게는 요원한 것인가? 그들에게는 평생에 단 한 번도 상 받을 기회가 없는 것일까?
'상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성과로 인정받는 일에 전력 투신한다. '성실'과는 결이 다르다. 장점은 잘 살고, 명예를 얻는다. 기업의 CEO에게는 최고이다. 문제가 있다면 거기에는 소시오패스(sociopath)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상과 무관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구하지 않으니, 상이 따라올 리 없다. 오다가도 옆으로 샌다. 꾸준하고 성실하여 믿을 만하지만, 어딘가 한구석은 모자라 보인다. 셈을 잘 못하니 맞는 말이다. 나처럼 말이다.
나는 경쟁지수가 제로(0)이다. 승리욕도 없다. 이유는 모른다. 그렇게 키움 받지 않아서인가? 병인가? 생각한 때가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상을 받을 텐데, 어느 정도 하면 그 이상은 안 한다. 누가 뭐래도 한두 번 한 것으로 끝낸다. 그러다 보니 승리를 목표로 운동하는 것도 질색한다. 게으름이기도 하다. 또 게으름이라고만 단정할 수도 없다. 그 시간에 테스트와는 상관없는 다른 책을 읽거나 일을 하니까 말이다.
공부를 안 해도 성적이 나오던 어릴 때는 이것저것 상을 단골로 받았다. 그것이 못된 버릇을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이후에는 상을 구경하지 못했다. 상에 목말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과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애당초 나는 상을 받아서 애국한다거나 기업에 공헌한다는 것은 사전에 없는 셈이다.
<예스 24>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서 '경쟁'이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3,933개의 책이 나왔다. 경쟁이란 말이 현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듯했다. 그중에 반가운 제목이 눈에 띄었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김누리. 해냄, 2024)
"학벌은 한국의 평등 지향적 사회 안에서 일종의 새로운 신분, 계급, 특권을 만드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살인적인 경쟁이 생겨난 것입니다."
《경쟁에 반대한다》(알피 콘 저/이영노 역. 민들레, 2019)
"경쟁이 인간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생산성에도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친다. 협력은 효율성 측면에서도 더 나을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상호작용으로 인간관계를 회복시키고 자존감을 높여준다."
그렇다면, 상을 받기 위하여 치열하게 싸우는 경쟁심과 승리욕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야만적인 교육 탓일까? 또 그 반대 성향은 도피인가? 단지 투지력이 부족한 심약함일까?
서울대학교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보니, 2023년 8월 11일, 치의학 대학원 이성중 교수 연구팀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우월 행동을 하는 생쥐의 뇌를 관찰했다. 결과, '전전두엽 성상교세포가 우월 행동 조절의 핵심 세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뇌신경과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인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Nature Neuroscience)지’에 발표했다.
"생쥐들 간의 경쟁 과정 중 성상교세포의 세포 내 칼슘 활동성이 증가하며, 특히 사회적 서열이 낮은 생쥐에 비해 서열이 높은 생쥐의 성상교세포 활동성이 더욱 크다. 또한 서열이 가장 낮은 생쥐 전전두엽 성상교세포의 활동성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면 서열이 올라가고, 반대로 서열이 가장 높은 생쥐의 성상교세포 활동성을 억제하면 이 생쥐의 서열이 감소한다." (www.snu.ac.kr 연구 성과 발췌)
이성중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삶의 여러 지점에서 상을 받고자 우월 행동을 일으키는 경쟁심이나 승리욕이, 어떤 개인이 욕심이 많아서 강한 것이 아니다. 야만적인 경쟁 교육을 받아서도 아니다. 그 사람이 가진 뇌세포 때문이다.
한강 작가가 얼마만큼 전력 질주해서 한림원이 놀랄 독창적인 주제와 문체를 퍼 올렸는지는 모른다. 작가에게 경쟁심이나 승리욕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뉴스나 SNS에서 볼 수 있는 작가의 모습은 차분하다. 오히려 겸허하기까지 하다. 타고난 작가요, 오롯이 문학 한 곳에만 집중하는 외길 인생이 보인다. 그러한 작가의 30년 응축된 삶이 글로 발현되어, 상주는 이들, 한림원의 눈에 띄었다. 물론 그 뒤에는 작가의 독창성을 알고, 세계에 알리고자 힘쓴 번역자들의 수고도 있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쟁심이나 승리욕이 없거나 약하고, 아예 그런 자리 자체를 피하는 것도 뇌세포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의 무경쟁이나 무 승리욕에 대해서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신이 그렇게 창조했다. 감사한 것은, 신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니, 더 바랄 것도 없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 11:6)
지구에는 노벨상이 가장 크지만, 지구 너머에는 다른 큰 상이 있다. 지구에서도 큰 상을 받고, 지구 너머에서도 큰 상을 받으면 좋을 것이다. 작가 한강 같이 특별한 사람은 가능하다. 평범한 우리는 노벨상 못지않은, 노벨상보다 더 크고 영광스러운, 지구 너머의 그, 큰 상을 기대한다.
평범한 여러분이여! 지금 가진 것으로 소확행 하자. 여기 이 자리가 상 받는 자리다. 거기 그 자리가 상 받는 자리다. 신과 함께라면 여러분은 이미 큰 상을 받았다! 또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