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by 뜰에바다

설 연휴를 맞이하여, 인터넷 ‘아시아경제’에서 이이슬 기자가 ‘명절 볼거리’로 가족 참견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연애 남매》를 추천했다. 2024. 3. 1 ~ 6. 14까지 금요일 밤 8시, 16부작으로 JTBC에서 방영한 것이다.

"남매가 연애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다면 어떨까. 발칙한 상상을 담은 웨이브 예능이다. 한 집에 여러 남매가 모여 정체를 숨긴 채 각자의 연인을 찾아간다. 외피는 연애 물이지만 뜨거운 가족애와 성장이 두드러진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남매, 부모를 대신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애틋한 사연이 따뜻하게 펼쳐진다."


마침 연휴 직전에 동생이 다녀갔으므로 '남매' '형제' 혹은 '혈육'이라는 키워드가 새롭게 다가와서 OTT로 시청했다. 미혼 다섯 남매가 얼마 동안 한 공간에 살면서 자신들의 감정에 따라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세 연인 커플이 탄생한다. 요즘 Z세대 청춘들의 이성관과 남매들의 형제애를 들여다볼 기회였다.


차제에, KBS에서 1997. 2. 8에 방영한 윤혁민 극본의 설날 특집극 《兄弟》도 제목에 이끌려, 보았다. 도입 부분부터 드라마에 나오는 농촌 생활 풍경이 영상으로나마 잘 보존되어 있어, 드라마 자체가 귀하게 여겨졌다. 학창 시절 경운기로 형을 절름발이 만든 동생이 대학을 졸업한 후 도시에서 사업하여 성공했지만, 그 과정 중에 사업 자금으로 형을 괴롭히다가 형과 왕래를 끊었다. 10년 후 농사하던 형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듣고 내려가다가 교통사고가 나고, 죽었다가 살아난 후에야 형의 처지와 진심을 알고, 화해한다. 형제애를 잘 보여주었다.


며칠 전, 동생이 전화했다.

"누나네 가려고."

"그래 와. 맛있는 점심, 같이 먹자."

동생이 누나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동생이 혼자 찾아오는 것이 낯설었다. 10대 이후, 각자 학교와 직장과 결혼으로 자기 가정을 꾸리면서 형제들은 약 30년 동안, 늘 그룹으로만 만났다. 주로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기일 등등이었다. 물론 구심점은 엄마였다. 이를테면 형제들이 결혼 이후에는 단둘이만 만날 일이 없었다는 말이다. 더구나 각자 자식들이 두셋씩 늘어나면서 만날 때마다 그룹이 커졌다. 그룹이 작아지기 시작한 것은 엄마의 등이 휘고, 형제들이 중년에 들어서면서다.

명절이 다가오니, 돌아가신 엄마가 그립다는 게 동생의 전화에서 읽혔다. 큰누나는 명절 전부터 자녀들과 사촌들로 북적이니, 매형과 떨어져 단출하게 살되, 자식 없는 작은누나를 생각했을 터였다. 단둘의 만남에서 오히려 엄마를 더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급행 지하철 안내를 잘 못하여, 동생이 예정 시간에서 40분 이상 늦었다.

"지하상가에 있어. 내가 그리로 갈게. 먼저 점심을 먹고 움직이자."

"알았어."

곧 나가니, 동생이 마른 체구로 거기 서 있었다.

"난 이번 독감을 뿌리 뽑고 싶어서 추어탕 먹고 싶은데, 넌 뭐 먹고 싶니?"

"삼겹살."

"삼겹살? 삼겹살집이 어디 있는지 몰라. 삼겹살은 콜레스테롤의 주범이래. 추어탕 먹자. 지난여름 대상포진 걸렸을 때, 한 주간에 씩 추어탕 먹으면서 몸을 추슬렀거든."

"그래, 그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안 먹지는 않으니까."

설악추어탕집은 동네의 가장 뒤편에 있었다. 먹자골목을 지나면서 동생이 못 잊어했다.

"먹을 게 많네. 삼겹살집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겠는걸. 여기를 두고 지난번엔 왜 전철 타고 이동했어?"

"회 사주려고 그랬지."

"여기도 횟집이 있네, 뭘."

"비싸잖아. 그 집은 싸다고 소문났거든."

"내 기억에는 싸지 않았는데. 도미가 양이 적었어."

"그랬어? 그것도 모르고, 회 먹을 때 그 집에만 갔나?"

추어탕은 담백했다. 나는 몹시 탕을 싫어했는데, 점차로 국물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의 뒤를 잇는 셈이요, 연륜이 쌓여가는 증거였다. 동생도 생각보다는 맛이 괜찮은 듯했다.

"먹을 만하네."

"많이 먹자. 너나 나나 살 좀 쪄야 해."

"애들 엄마가 생일 축하금 감사하다고 전해 달래."

"그거, 뭐, 내가 송금했나? 엄마가 하늘에서 사위들과 올케들에게 보내신 거지. 올해는 당신의 자식들에게도 보내실 것 같지 않니?"

"얼마 안 되는 거, 누나가 쓰라니까. 엄마 모시면서 고생했잖아."

"고생한 거 하나도 없어. 엄마하고 10년 살아서 아쉬움이 없으니, 감사할 뿐이야. 그리고 나눠 쓰면 더 좋잖아. 엄마가 재산이 없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재산 있으면 형제 사이에 금이 가는 경우가 많더라."

"그건 맞는 것 같아. 아랫집 살던 상수네도 지금 형제들이 얼굴을 안 본대. '형제의 난'이 재벌가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돈의 속성 때문이야. 재산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세상 떠날 때 사회에 기부하는 게 정답이야."

동생이 바로 큰누나에게 전화했다. 형에게도 전화했다. 딱히 할 얘기가 없음에도 40여 분간 번갈아 바꿔가며 통화했다. 만나면 만날수록 할 말이 있고, 안 만나면 그나마 할 말도 없어지는 사이가 형제들일 것이다.


점심 후, 겨울치고 날씨가 화창해서 잠깐 공원에 올랐다. 공원 산책한 후에는, 택시 타고 10여 분 달려,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 앉았다.

"누나가 엄마 기일 모임을 단톡방에 올려. 꼭 한 달 남았네. 아버지 이장 날짜는 아직 멀었으니, 나중에 올려도 될 것 같고."

"알았어."

평소 꼼꼼하게 집안일을 챙기는 동생이고 보니, 행여 잊을까 걱정하는 것도 동생이었다. 어릴 때는 막내요, 놀기만 해서 걱정했는데, 커서는 역전되었다.

"엄마 기일 때는 11시에 모이면 되지? 어느새 3주기야. 세월이 빨라. 그래도 코로나만 아니면 더 계셨을 텐데."

"엄마의 수한이 거기까지야. 아쉬워하지 마. 엄마 기일 때 D역에서 만나 산에 갔다가 점심 먹지 뭐. 매번 한 대로 요양병원에서 외삼촌도 뵙고."

"그래야지."

"큰외삼촌은 젊은 날에도 혼자서 엄마를 자주 찾아오셨던 것 같지 않니?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집에서 뵈었으니 말이야."

"그랬던 것 같아. 작은외삼촌 돌아가시고는 더 자주 오셨을 걸?"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

"작은외삼촌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어 이모가 돌아가셨어. 그때 엄마가 힘들어하셨다고 큰누나가 말한 적 있어."

"그랬어? 몰랐네. 충분히 이해는 돼. 부모가 가시는 것하고, 형제가 떠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니까."

"엄마가 90세 되시면서 가셨으니, 올해 큰외삼촌은 89세가 되셨어."

"우리는 못 알아보셔도 자식들은 알아보신다니, 다행이셔. 올해 한 번 더 이종들과 점심 먹는 자리를 만들어 볼까? 고종들은 연세들이 있으시고, 작년에 다 뵈었지만, 이종들은 아니잖아."

"큰누나와 형과 의논해 보자고."


형제와의 만남은 가족이지만 다른 색깔이다. 대화도 어릴 적 서사가 대부분이다. 퇴색하였으나 빛깔은 영롱한, 부모와 요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형제가 만나면 엄마 얘기를 따로 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그사이에는 엄마가 있다. 점심은 물론, 카페에서 2시간, 집에 와서 2시간 동생과 더 이야기할 때도 엄마가 함께 있었다. 동생은 전철에서 졸며 자며 2시간가량 집으로 돌아가면서 또 비몽사몽 엄마를 만날 것이다. 나는 동생을 보내고, 형제애를 '복'이라고 명명한 시편 133편을 음미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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