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 목사님과 사모님이 요양원에 입소했다. 당신의 젊은 제자가 새로 개설한 도심 밖의 한적한 곳이었다. 한 달가량 되었으므로 찾아뵈었다. 사모님이 낙상하여 어깨뼈가 부러지면서 수술 후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옮기셨는데, 목사님은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모님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치시기 전, 지난 3월에는 다 아시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었다. 스물한 살 때부터 제자로서 자주 드나들었음에도 이제 사모님의 기억에서 내가 사라졌다.
"사모님, 목사님 몰래 제게 버스비도 따로 주시곤 하셨잖아요."
소용없었다. 사모님의 뜨락에서 제자인 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음날은 간담회가 있어, 전에 섬겼던 요양원을 방문했다. 회의를 마친 후, 약 4년간 출근할 때마다 하루 2~3회씩 뵈면서 섬겼던 어머니가 불현듯 보고 싶었다. 뵐 수 있도록 간청했다. 얼마 전, 아버지가 별세했다고, '늘 한 번 더 보러 가자고 하셨는데, 갑자기 떠나가시므로 못 보게 되었다'라고, 다른 아버지의 따님이 애틋한 전화를 한 것이 한몫했다. 어머니를 못 뵌 지는 만 3년이 지났다. 1년여 동안은 어머니가 자주 전화를 했다. 하도 못 잊어하시므로 어머니를 위하여 전화를 받지 않았었다.
오늘 모처럼 어머니를 얼굴로 만났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어머니가 무표정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누구세요?"
주위에 함께 있던 이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나의 스승이 나를 잊더니, 이제는 내 살뜰한 섬김을 받았던 어머니도 나를 잊었다.
(고) 이태석 신부(1962~2010)는 의학을 공부하고 군의관으로 복무하다가, 뜻을 세우고 30대에 신학훈련을 받았다. 39세에 신부가 되어, 교육시설과 의료시설이 전연 없는 아프리카 수단의 오지, 톤즈에서 의료선교를 시작했다. 이태석은 7년간 온 힘을 다해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가난한 이들과 한센인들을 찾아다니며 아낌없이 의술을 펼쳤다.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음악으로 기쁨을 선물하고 나누었다.
이태석의 헌신은 7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7년간 가난하고 척박한 산골에 심은 이태석의 사랑은 감수성이 예민한 십 대 이국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10년 만에 다른 이에게서 '이태석' 이름 석 자를 듣자마자, 모두 펑펑 울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신부님처럼 살고 싶어요."
이태석을 세상에 소개한 사람은 구수환(1959~ ) PD다. 구수환은 생전에 이태석을 만난 적이 없다. 구수환은 KBS 추적 60분 PD로서, 30년 가까이 세상의 부조리와 비리를 파헤친 장본인이다. 그즈음 이태석의 짧고 굵은 생애가 그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는 고발 전문 PD로서 '세상의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하여 이태석을 닮으려는 이태석의 제자에게서 구수환은 이태석의 '섬김 리더십'을 보았다. 또한 이태석의 다큐를 보고 감동하여 후원하는 현대인들이, 문명의 혜택 속에서 모두 이기의 삶을 살지만, 내면에는 사랑과 섬김과 이타적인 삶을 살고 싶은, '숨은 이태석'이 있는 것을 읽었다.
하여 대장암으로 이태석이 죽던 그해, 이태석의 짧고 굵은 생애를, 《울지 마 톤즈》라는 이름으로 제작해, 세상에 내놓았다. 결과, 다큐 영화로 역대 네 번째 많은 관객을 모았다. 종교영화로는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이태석 10주기인 2020년에는 두 번째 이야기 《부활》을 만들어, 이태석에게서 배운 제자들을 세상에 알렸다. 이태석의 제자들은 70여 명 중 40여 명이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기자, 의사, 약사, 공무원이 되어 있었다. 그중 의대생이 가장 많았다.
그것이 전환점이 되어 구수환은 현재 '이태석 재단'을 만들어 이태석의 사랑과 헌신을 알리는 데 온 정열을 쏟고 있다. 이태석의 고향 부산에는 어느새 이태석의 생가와 기념관까지 생겼다. 그가 부조리와 비리를 고발하던 것에서 물러나, 이제는 사랑을 고발하며, 이태석의 정신을 담은 저작물들을 다수 퍼 올리는 것이다. 《울지 마 톤즈, 그 후 선물》 (비아북, 2012), 《우리는 이태석입니다》 (북루덴스, 2022), 《울지 마 톤즈 학교》 ( 북루덴스, 2024).
이 세상에는 이태석은 아니지만, 그만큼 혹은 더 오랜 시간 누군가의 꽃으로 사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아니 많다. 부지기수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여기, 우리의 업무나 봉사 현장에도 얼마나 제2 이태석이 많은가! 그럼에도 왠지 이태석을 보면서, 여러분은 기가 죽는다. 그렇게 살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남의 눈에 띄든 안 띠든 여러분은 신이 심어놓은 사람의 본분 '사랑'으로 살아왔다. 지금도 누군가의 꽃으로서, 사랑하고 섬기며 살고 있다. 그림자만 밟아도, 손수건이나 옷깃만 스쳐도 사랑이 닿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이태석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한 직종에서 혹은 한 봉사 현장에서 같은 업무와 모양으로 평생을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여러분이니까 하는 것이다.
한 발짝 뒤에 서서 자기를 바라보라. 동료를 바라보라. 또 다른 이를 보라. 나의 헌신, 동료의 섬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구수환 PD가 아닌, 이 세상이 아닌, 하늘의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지금처럼 사랑하라. 어제처럼 섬겨라. 다만 무뎌지지는 말라. 한 번씩 처음 사랑을 곱씹어라. 여러분은 누군가의 꽃이다. 여러분은 그들의 전부이다. 대상자가 십 대의 감수성이 아닌, 많은 것을 잊어가는 어른들일지라도 말이다. 하늘의 그분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