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둘째 탄생 비화
‘사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장사꾼 남편의 안하무인 태도가 이어지던 어느 날, 유독 메스꺼움이 심했던 그날, 나는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돼. 부부 사이가 안 좋아도 생명의 신비는 위대하지? 하하. 그런데 말이야, 첫 아이는 분명 계획 임신으로 찾아왔지만 둘째는 아니었어. 무슨 말이냐 하면, 술에 취한 남편이 새벽에 들어와 화난 나의 감정을 풀어준다며 막 들이댔던 그날의 이슈였다는 얘기지.
여하튼 둘째 임신 기간은 첫 아이 때와 경제적인 상황이 달랐던 때야. 그래서 태교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좋은 곳을 찾아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했지만 내 마음은 너무나 우울했어. 둘째가 생겼는데도 여전히 집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 남편, 이제는 전화도 잘하지 않는 남편, 집에 와도 별 말이 없는 남편,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물어보지 않는 남편이 그렇게 밉더라고.
그러던 11월의 어느 날이었어. 남편이 환절기 감기에 걸려 2주 넘게 콜록거렸지. 임신 3개월에 접어든 나는 온통 신경이 예민해 있었어. 집에 임산부가 있는데 감기에 걸려도 나으려 하지 않는 남편의 생활 태도에 너무 화가 나 있었어. 감기약을 처방받아도 매일 술을 마셔대니 낫지 않았어. 컨디션이 안 좋으면 집에 일찍 들어와서 쉬어야 하는데 여전히 외박이 잦았어. 정말 나는 화가 너무 났어.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 임신인데 이렇게 배려받지 못하나, 내가 남의 남자아이를 임신했나,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다 감정이 폭발했지. 무지 서러웠어. 아이가, 내가 소중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그래서 그날은 퇴근 한 남편에게 막 화를 냈어. 한 일주일 아플 때에는 안타까웠는데, 행동을 보면 전혀 나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같지가 않다고. 혼자 사는 집도 아니고 임신한 마누라와 어린 딸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인지 모르겠다고 몰아붙이고 펑펑 울었어. 그랬는데 참 가관인 남편은 나에게 나가라며 짐 가방을 던졌어.
장사하며 부부싸움을 할 때에도 늘 화가 나면 자신이 먼저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하루 이틀 후에 돌아오던 남편이었거든. 횟수는 손가락 발가락을 합쳐도 셀 수 없지만 말이야. 그동안은 그렇게 하루 이틀 머리를 식히고 오면 미안한지 별말 없이 가만히 있던 남편이었어. 그럼 나는 인상 좀 쓰다가 밥 차려주면서 감정을 풀곤 했는데 그날은 달랐어. 나보고 나가라고 한 거지. 그러면서 나에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랑 딸에게 ‘사업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너네들 때문에 내가 밖에 나가서 힘들게 돈 벌어야 한다, 너네들만 아니면 돈 조금 벌어도 충분히 먹고 산다.’라고 했어. 마치 나와 딸이 인생의 걸림돌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들리고 너무너무 억장이 무너졌던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을 나왔어. 더 싸울 힘이 없더라고.
임신 3개월의 임산부는 21개월 아장아장 걷는 딸내미를 데리고 집을 나왔어. 등에는 배낭을, 한쪽에는 짐 가방을, 한쪽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말이야. 갈 곳이 없어 서울 친정집으로 향했고, 그렇게 별거에 들어갔지.
별거 두 달 동안 나는 친정엄마의 보호 아래 태교를 했지만 정말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먹고살 걱정을 하며 지냈어. 심리적인 불안감을 꾹꾹 누른 채 미래를 대비한다며 공예 지도자 관련 공부와 실습을 게을리하지 않았어. 이때 글도 많이 썼어. 감정을 분출하는 글도 썼지만 이성적으로 미래를 생각하고 현실을 직시하려는 글도 썼던 것 같아. 그러면서 ‘이혼해도 괜찮아, 나 아직 젊어. 충분히 잘 될 수 있어’라며 홀로서기를 생각했어.
그러면서도 남편 걱정을 놓을 수 없는 나였어. 무엇이 그리 그를 힘들게 할까? 근본적인 원인이 뭘까? 별거 기간 동안 생각 해 봤어.
기억을 거슬러 생각하다 보니 우리가 장사를 시작한 처음으로 귀결되더라. 자기 자본금 1도 없이 시작한 것, 2009년 당시 여자친구였던 나의 신용을 당겨 빚으로 사업을 한 것이 돈으로 인한 괴로움의 1차적 원인이었어. 월급쟁이보다는 많이 버니까, 시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 눈치 볼 사람 없으니까, 이렇게 아주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한 장사였기에 먹고사는 데 있어 힘들었던 거야.
또, 우리 부부는 금융 문맹이나 다름없었는데 이것이 2차적 원인이었지. 돈을 벌기만 하면 뭐 해, 줄줄 새어 나가는 것이 많은데. 가계 재무 구조 파악, 이런 거 전혀 몰랐고, 장사하면서도 생활비 통장과 매장 통장을 구별하지 않았어. 그렇기에 장사 6-7년 차였어도 세금을 납부할 시기만 되면 매번 더 싸웠어. 장사에는 성수기와 비(非) 성수기가 있는데 많이 벌면 많이 쓰고 적게 벌면 빚내서 쓰고 그랬던 거지. 더구나 남편은 주식과 부동산을 하면 다 사기꾼이라고 늘 나에게 말을 했고, 나 역시 그런 그의 생각에 세뇌가 되어 있었던 터라 관련해서는 1도 모르고 살았어. 그러다 아파트 입주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부동산에 눈을 뜬 것인데 남편 눈에는 내가 헛바람이 든 것처럼 보였 던 거고.
남의 돈으로 시작하는 장사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고, 남의 돈으로 시작하는 만큼 번듯하게 성공하려면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몰랐어. 돈의 무서움을 모른 채 쉽게 진 빚, 하루라도 빨리 갚으려 발악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편 주변의 한탕주의 빠진 사람들, 결혼을 하고도 가정적이지 못한 사람들,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남편의 인성, 통찰력 없이 잔소리만 해 댔던 나, 배우자에게 심리적 안식처를 제공하지 못했던 나, 현명하게 내조를 했어야 했는데 무조건 기대고만 싶어 했던 나 … 이러한 요소들이 차곡차곡 서로의 마음속에 쌓여 상처를 만들어 내 누적이 되다 보니 작은 갈등에도 크게 반응하게 되고 결국은 이렇게 임신 중에도 별거를 하게 됐건 것 같아.
‘내가 너무 내 입장만 생각한 것이 아닐까? 남편은 장사꾼으로 살며 나랑 먹고 살 생각을 하는데, 나는 장사꾼의 아내로 살며 뒷바라지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은 모습이었나? 남편 눈에는 나만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아,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그래서 외로웠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남편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기 시작했어. 그러다 보니 그동안 안 보이던 것이 보이더라. 망망대해에 통통배 같은 삶을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무서워하는 장사꾼 남편의 모습이.
7살이나 어린 철부지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하며 사업한다고 빚잔치를 벌였음에도 ‘돈이야 벌면 그만이지!’ 큰소리 땅땅 쳤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났을 거야. 가방끈도 짧고 남들처럼 부모님의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장사로 고비가 올 때마다 헤쳐 나가는 방법을 잘 몰랐을 거야. 그도 인간인지라 의지하고 싶었을 테지만 나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었을 거야.
이러한 내면의 성찰은 분노를 잠재우고 끈기를 드러나게 했어. 여기에, 친정엄마의 노력으로 남편 역시 마음의 문을 열었고 말이야. 그렇게 나는 아이와 함께 ‘우리 집’으로 돌아갔어.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 장사꾼 부부는 딸 하나, 아들 하나 키우며 알콩달콩 잘 살았대요 …라고 동화처럼 끝나는 결말 …. 은 아직 아닌 거 알지? 하하. 다음 연재에 이어 갈 게.